고객은 이제 AI에게 묻는다

검색에서 질문으로, 달라진 구매 여정

by 정진

본 글은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진행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세번째 칼럼이다.


AI를 나를 위해 쓰는 법을 이야기했다면,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차례다. 이렇게 정교해진 사고와 시스템은 결국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다시 고객이다.




패션 산업에서 고객은 언제나 중요했지만, 고객을 이해하는 방식은 늘 제한적이었다. 설문조사, 판매 데이터, 인터뷰 같은 방법들은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늘 시간차가 존재했고 실제 행동과 감정의 미묘한 차이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이 지점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고객을 이해하는 속도와 깊이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고객의 행동에서 먼저 나타난다. 과거의 고객은 정보를 검색했다. 브랜드 이름을 입력하고, 상품을 비교하고, 리뷰를 읽고, 가격을 확인한 뒤 구매를 결정했다. 지금의 고객은 점점 질문하는 소비자로 이동하고 있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대신, AI에게 묻는다. “이런 취향에 맞는 브랜드가 뭐야?”, “요즘 미니멀한 무드의 여성복 브랜드를 추천해줘”, “출퇴근용으로 편하지만 너무 캐주얼하지 않은 옷은 어디가 좋아?”와 같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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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Accenture가 2025년에 발표한 Consumer Pulse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14개국, 18,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생성형 AI는 이미 주요 구매 추천 채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오프라인 매장이 19%로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생성형 AI는 18%로 그 바로 뒤를 잇는다. 소셜미디어,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검색엔진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고객이 생성형 AI를 단순한 정보 탐색 도구가 아니라, 구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추천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수치가 ‘AI를 실제로 사용하는 활성 사용자(active users)’를 기준으로 한 결과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AI를 쓰는 고객 집단에서는 이미 생성형 AI가 매장 직원이나 지인 추천에 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생성형 AI가 구매 추천 채널로 자리 잡았다는 건 확인했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AI를 정확히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까. Accenture의 「Me, my brand and AI」 리포트는 이 질문에 대해 흥미로운 프레임을 제시한다. 소비자에게 AI는 단일한 도구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역할이 확장되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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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계에서 AI는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My trusted guide)’로 인식된다. 소비자는 AI를 항상 곁에 있으면서 필요한 정보를 제안해주는 친구처럼 활용한다.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할 때, AI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정리해주고, 현재 상황에 맞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 단계에서 AI는 이미 인플루언서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생성형 AI는 구매 관련 정보와 추천을 얻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소스로 자리 잡고 있으며, 소비자는 AI의 조언을 구매 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다음 단계에서 AI는 ‘충성스러운 동반자(My loyal companion)’로 이동한다. 이 단계의 AI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의 취향과 요구를 이해하고 이를 우선순위로 고려한다. 소비자는 AI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감정적으로도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브랜드 입장에서 보면,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 AI가 감성적으로 지능화될수록, 브랜드는 AI를 통해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단기적인 추천을 넘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맥락에 맞는 경험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AI는 ‘또 다른 나(My second self)’로 진화한다. 이 단계에서 AI는 사용자를 대신해 행동하는 존재가 된다. 단순히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기준과 취향에 따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이른바, '에이전틱 AI(Agentic AI)', 즉 사용자를 대신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AI의 영역이다. 커머스 환경은 이 단계에서 근본적으로 재편된다. 소비자가 직접 비교하고 선택하던 구조에서, AI가 소비자를 대신해 판단하고 실행하는 구조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 세 단계는 AI가 소비자 경험에 미치는 영향이 ‘조언’에서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율적 대행’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이 변화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소비자는 여전히 AI를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AI를 신뢰하고, 의존하고, 점점 더 많은 판단을 위임하고 있다.


이 흐름은 패션 브랜드에게 분명한 과제를 던진다. 브랜드가 LLM 생태계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고객의 구매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될 위험이 커진다. 고객은 AI에게 묻고, AI는 자신이 이해한 브랜드만을 추천한다. 브랜드가 AI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고객의 선택지에서 사라질 수 있다.


BONNARD_03_Cecile-de-France_Vincent-Macaigne_©PalaceFilms-1-scaled-e1726028812958.jpg 영화《피에르 보나르, 마르타 보나르》, 피에르 보나르가 뮤즈이자 아내인 마르트를 그리는 장면, 출처: Palace Cinemas


결국 AI를 고객을 이해하는 데 쓴다는 것은, 고객을 더 빨리 설득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니다. 고객이 어떤 맥락에서 고민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며, 어떤 순간에 신뢰를 느끼는지를 더 정확하게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AI는 그 과정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보지 못했던 패턴과 신호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줄 뿐이다.


이제 브랜드는 고객에게 말을 거는 동시에, 고객이 질문하는 방식에도 대응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고객은 점점 더 AI를 통해 정보를 얻고, 추천을 받고, 선택의 근거를 마련한다. 그 과정에서 브랜드가 어떻게 설명되고,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변화의 연장선에서, 브랜드가 AI 생태계 안에서 어떻게 발견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검색 중심의 시대에서 생성형 AI 중심의 환경으로 이동하면서 브랜드 전략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다뤄보려 한다. AI를 이해하는 단계에서, AI에게 이해받는 단계로 넘어가는 이야기다.


*피에르 보나르(1867-1947)는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일상의 친밀한 순간을 독특한 색채와 빛으로 포착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나르가 50년영화《피에르 보나르, 마르타 보나르》는 50년간 마르트를 반복해서 그린 이야기를 다룬다. 같은 사람이지만 매번 다른 빛과 감정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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