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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Jan 29. 2023

기업 생애주기에 따른 투자자와 경영진의 필요역량

스토리와 숫자는 결국 연결되어야 한다

"금융기관은 왜 1년 단위 성장을 요구하는 거죠? 10년 단위 성장도 있지 않습니까."


한 의류 브랜드 대표가 식사자리에서 내 게 해준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10년 20년을 바라보고 내 브랜드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려는 계획인데 자꾸 투자자가 이번 달 매출액과 다음달 예상매출액에 대해 물어본다. 브랜드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초기기업에게 연 단위 성과를 요구하는 게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투자한 포트폴리오 기업에게 월 단위, 분기단위, 연단위로 성과측정을 요구한다. 때로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스토리텔링과 숫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람도 라이프사이클이 있듯, 기업도 생애주기가 있다. 대략 아래의 그래프로 표현될 수 있다.


그래프 1 기업의 생애주기 곡선


기업의 성장주기에 따라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투자를 한다. 주로 스타트업 단계에서는 엑셀러레이터 및 벤처캐피탈(이하 VC) 이 참여하게 되고, 초기 성장 및 고성장 단계에서는 VC 들이 주로 투자를 한다. 현행 기준의 기관전용사모펀드, 즉 이하 PEF는 주로 고성장 단계에서 성숙기로 들어가는 기업을 인수(Buy-out)하거나 성장자본투자(Growth Capital)를 한다. 성숙기가 끝난 쇠락단계의 기업은 재무구조개선, 사업구조조정 등을 통해 턴어라운드를 시키거나 정상화를 통해 또 다른 미래를 도모한다. 


PEF의 운용사이클은 앞선 글에서 언급한 '투자-가치제고-회수' 관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나는 '기관전용(경영참여형)' 사모펀드 매니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치제고' 과정에서 회사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일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펀드 매니저의 직접적인 참여 보다는 CFO, CEO 등 경영진 파견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PE업무의 5할 이상은 HR업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다)


사실 기업의 성장주기에 있어 VC 와 PEF 가 참여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법으로 엄격히 정해진 것은 없다. 그리고 최근 몇 년은 VC 와 PEF의 경계가 모호해진 점도 많이 느낀다. PEF 가 극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고성장 단계에 있는 기업에 대한 투자검토 시 종종 미팅 때 VC를 만나기도 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조금 일반화시키자면, VC 와 PEF의 질문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VC/PEF가 참여하는 기업의 생애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주로

·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  제품이나 서비스 시장이 존재하는가?

·  짐작이 되는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  생존할 수 있는가?

·  사람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것인가?


성숙단계 기업에는

·  제품이나 서비스로 이익을 낼 수 있는가?

·  경쟁이 심해져도 어느정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  현재 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한 시스템 및 전략이 있는가? 


Source: 내러티즈&넘버스, 애드워스 다모다란, 자체 편집


쉽게 추측이 될거다. 주로 VC 질문에 대한 답변은 주로 스토리텔링, 내러티브 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다. 반대로 PEF 질문은 숫자 위주의 답변이 적절하다. 하지만 잊지 말자.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숫자의 연결이다. 양 극단은 없다. 초기 스타트업 경영자의 사업 전략에 대한 멋진 스토리텔링도 기업이 성장할수록 사업화 과정을 거쳐 숫자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가치평가에 대한 세계적 석학인 애스워드 다모다란(Aswath Damodaran) 뉴욕대 교수의 '내러티브 앤 넘버스' 란 책을 참고하여 설명하겠다. 


그래프 2 기업의 생애주기에 따른 투자자의 핵심질문 및 CEO의 유형



위의 표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요약해 놓은 장표인데, 기업의 생애주기에 따른 최고경영진의 과제, 투자자의 핵심질문, 그리고 적합한 경영자의 유형이다. 투자자는 기업의 성장 단계에 알맞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고, 이에 따른 경영자의 역량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역사적 숫자나 제품 및 서비스가 부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영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중요하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언젠가는 실적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오기 때문에 스토리를 전하는 경영자의 신뢰성, 팀의 실행력 등이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 


이 시기는 상대적으로 원대한 스토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시장을 정의하고 그 시장 속에서 본인들이 해결할 문제와 포지셔닝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성숙기 단계에 실적이 충분히 나오지 않는 기업이 계속 미래 목표 시장 이야기만 한다면 신뢰를 얻기 힘든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성숙기 단계에 있는 기업이 목표로 하는 시장을 이야기할 때 좁더라도 최대한 구체적이라면 이해하기 쉽게 들린다.


성장 단계에 들어서면 투자자들은 스토리를 뒷받침할 만한 실적이나 성과를 기대하게 된다. 이 시기 이후부터 숫자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는데, 스토리텔링 역량이 상대적으로 강한 경영자라면 CFO 든 사업에 대한 목표설정, 성과측정 등을 실행할 파트너 혹은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숙단계에 들어선 사업 모델이 안정화되고, 조직이 어느정도 갖춰져 있기 때문에 경영자의 개인적인 유형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해지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관리능력이 뛰어난 CEO 가 필요하다. 같은 맥락으로 PEF 가 기업을 인수 후 향 후 사업 전략에 맞게 경영진을 교체하는 일은 있어도, VC 가 투자 후 회사의 대표를 교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투자자들은 회사의 역사적 숫자나 현재 시장에서의 우위, 그리고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리고 가치평가 시 매출 추정 또한 초기기업의 경우 시장 규모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Top-Down 방식), 성숙단계 기업의 경우 역사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금 더 구체적인 가정을 넣어 추정을 한다.





경영자라면 본인의 기업의 성장주기 상에서 내가 어떤 자질이 필요하겠구나 또는 어떤 사람이 필요하겠구나 가늠해볼 수 있어야 하고, 투자자는 해당 기업에 맞는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요즘 같이 투자가, 경기가 어려운 때에는 경영자의 자질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그 자질 중 7할 이상은 태도가 아닐까 싶다. 투자를 받는 것의 의미, 주주를 대하는 방법, 의사소통하는 방식 등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종종 보인다. 반대로 나도 풍부한 유동성 시기의 관성으로 투자 검토에 있어 나태한 접근을 하는지 반성도 많이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초기 의류 브랜드 기업에 대한 너무 잦은 빈도의 성과측정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고, 또 성숙 단계에 있는 인수 대상 기업에게 원대한 스토리를 요구하는 것 보다는 성과측정이 가능한 구체적인 전략을 함께 고민해보는 점이 서로에게 좋을 수 있다. 


독자 여러분도 기업의 생애주기 흐름 안에서 VC 와 PEF의 역할을 이해해보시길 바란다. 회사의 경영진과 마찬가지로 PEF든 VC의 펀드매니저도 스토리텔링 및 숫자를 보고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은 둘 다 있어야 한다. 최소한 경영자의 눈높이에 있거나,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다른 관점에서 대화가 되어야 서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스토리텔링과 숫자, 양 극단으로 빠지는 경우를 경계하는 편이다. 종종 술자리에서 여의도와 테헤란로는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숫자가 없는 스토리는 동화에 불과하고, 스토리가 받쳐주지 않는 숫자는 금융 모델을 연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 내러티브 넘버스, 에드워드 다모다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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