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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Apr 01. 2023

선의가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순간

나를 가꾸며 베푸는 선의

여성복 브랜드 I를 운영하는 J대표님이 얼마전 가회동에 한옥 오피스를 오픈하셔서 인사차 방문을 했다. 패션 매거진을 운영하시는 대표님,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스타트업 CFO분과 함께 저녁식사도 겸하기로 했는데 간만에 J대표님의 소식을 그간 잔뜩 업데이트 된 기업소개를 통해 들어봤다.




브랜드 I는 40-50대 여성복을 판매하는 18년차 회사로, 넓진 않아도 탄탄한 수요층을 가졌다. 여성복만으로 연매출 400억원을 넘긴다는건 대단한 일이다. J대표님은 잡지사에서 우리나라 지역 여행콘텐츠 담당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국내 왠만한 명소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자연스럽게 지역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의류브랜드를 운영하지만 '카디, 잠다니, 누비 등 전통기법'을 깊이 이해하는 소재에 강한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전통방식에 대한 관심이 친환경으로 이어져, 브랜드 I의 정체성이 곧, J대표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의류만으로 관심사를 다 담을 수 없어 추가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S를 론칭하여, 제주옹기, 장수곱돌 등 한국의 소재로 생활용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끄떡끄떡할 일이었다. 이분을 워낙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신선한 충격은 새로 론칭 한 브랜드 U였다. J대표님 삶의 방식과 달리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나 현대적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브랜드 U는 한국의 과거와 현대를 연결함으로써 동시대의 룩을 선보이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한다. 디자인은 세련되었지만,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친환경 원단을 사용한다. 론칭 과정에 대해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브랜드  U도 대표님이 직접 기획/디자인 하세요?"     


전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디자인에 소질이 없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재에 집중한 것도 있고요. 힘들게 채용한 저희  CD(Creative director)가 있어요.



브랜드 I의 고객은 중년 여성들이다. 브랜드 이미지도 그렇다. 그런데 브랜드 U의 CD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이 회사에 입사했을까?


"브랜드 U의 CD는 어떤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고, 어떤 생각으로 채용을 하시게 된거 예요?"     


사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지켜보던 친구예요. 브랜드 I는 가맹점도 있어요. 어느 날 한 가맹점을 방문했는데 상품 진열이며, 조명이며, 매장 내부 구성이 너무 좋은 거예요. 사장님이 직접 했을 것 같진 않았고. 그래서 이 매장을 누가 이렇게 꾸몄는지 물어봤죠. 그랬더니 자기 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들이 인테리어나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고. 의류 디자이너가 꿈이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 아들이 내가 졸업한 학교, 같은 과 후배가 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런 우연도 없죠. 그때부터 교류하면서 지켜봤어요. 졸업 즈음 한국에서만 있지 말고 유학을 다녀오라 조언도 했어요. 근데 진짜 가더라고요. 영국왕립예술대학에서 디자인 전공을 하게 되었는데, 돈으로 지원하기는 좀 그랬고 그 친구한테 필요한게 뭐냐, 어떤걸 도와주면 되겠냐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원하는 소재를 원 없이 공급해달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이 친구 졸업전시 때 사용한 한국의 전통 소재를 사용한 옷들이 꽤 반응이 좋았는데, 교수들이 탐이 나서 졸업하면서 놔두고 가라고 했다네요. 그리고 이미 졸업 전에 본인의 브랜드를 론칭해서 막 성장하기 시작했죠.


그때 저도 젊은 층을 타게팅한 브랜드에 대한 고민이 있던 시기였어요. 설득 끝에 함께하게 됐죠.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 U예요.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 U는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고, 입점하기 힘든 럭셔리 브랜드, 트렌디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ssense.com에 입점했다. 긴 서사였던 J대표의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요약해봤다.

     

1) 전통 소재, 기법에 대한 본인만의 콘텐츠가 있었다

2) 이런 특징들이 브랜드 이미지가 되었다. 즉, 브랜드에 대표의 자기다움이 스며들었다

3) 본인의 한계(디자인)를 잘 알고 있었다

4) 디테일(가맹점의 점포 내부 구성에 대한, 사람에 대한)한 관찰이 있었다

5) 선善의가 있었다

6)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브랜드 U늬 CD영입 스토리는, '선의가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 같다. 그 선의로 인해 한 고등학생이 한국의 과거와 현대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브랜드 I가 세컨 브랜드로 인해 젊어질 수 있었다. 브랜드 I의 가회동 사옥에는 중용 23장이 액자에 걸려져 있다. 돌아보니 이 역시 J대표의 철학이 아닐까 싶다.


중용23장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으로 배어 나오면

겉에 드러나고

겉에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 시키고

남을 감동 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생육한다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자기기만을 경계하며 내 업業에 대해, 사람에 대해 지극히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 자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런 다짐이 가회동에서 맞이한 봄을 잊기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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