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EU Weekl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 Sep 17. 2023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환기(Whanki)

나 답게 잘 사는 것

답답한 한 주를 보냈을 때 이따금 일요일 오전 부암동에 있는 환기 미술관에 간다. 환기 미술관은 화가 김환기 사망 후 환기재단법인에 의해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정리하고 소개하고자 1992년에 설립했다. 일단 부담스럽지 않은 규모라 포근하다. 관람료가 있어서 그런지 오픈시간은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작품수가 많지 않아 매번 갈 때마다 한 작품의 다른 느낌을 음미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느낌은 한 주간의 축적된 내 감정들 때문일 가능성이 크지만.  


Source: Womansense, 환기미술관

본관에서 수향산방을 산책하듯 거닐다 들어간 별관에서 걸음을 멈췄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cho Scape: 수화의 정원' 이란 프로젝트였는데 환기의 작품을 소리로 들어보는 체험이었다. 아이패드로 준비된 캔버스 위에 점과 선을 그려 나간다. 점과 선의 선택지는 김환기의 전면점화 패턴을 모티브로 삼은 듯하다. 점과 선을 입력하고 재생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더해져 그림을 들어볼 수 있다.  제출하기 버튼을 누르면 나무로 변신한 작품을 디지털 수화의 정원에 심을 수 있다. 


작품이 된 점과 선, 그리고 소리



아이들의 작품이 나무가 되어 디지털 수화의 정원으로 보내진다


작품에서 소리를 느낄 수 있었던 김환기의 '봄의 소리'는 1966년 작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기 고국의 밤하늘의 별들을 표현했다고 한다. 당시 관람객들은 소리를 상상했을 것이다. 지금 이 아이들에게 김환기는 디지털이다. 전면점화의 패턴을 디지털화 했고, 상상했던 소리까지는 아니겠지만 점과 선, 그리고 소리를 선택할 수 있다.  


1960년대 사람들의 환기와, 나의 환기와, 아이들의 환기는 다르다. 아무리 나의 경험과 느낌을 설명해도 이 아이들이 경험한 환기는 다르다. 수년이 흘러 김환기에 관심을 갖은 아이들은 이 경험을 기반으로 환기의 작품세계를 다시 경험할 것이다.   


봄의 소리, 캔버스에 유채, 1966


부암동 클럽에스프레소에서 수화의 정원을 다시 떠올려봤다. 2023년 9월 우리 팀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워킹그룹이 꾸려졌고 여전히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나에 대한 이들의 기억은 과거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로 부터 시작될 것이다. 아무리 내가 나를 설명해도 이들이 경험한 지금의 나 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듯하다. 과거에 취할 필요도, 그렇다고 나를 싫어할 필요도 없다. 신규 프로젝트를 앞두고 나 답게 잘 사는 것의 중요성을 수화의 정원을 통해 돌이켜본 묘한 한주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가꾸는 두 가지 관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