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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Oct 20. 2023

우리는 예술을 하고 있다#3

유한했기 때문에 영원한 찰나

"하루 사이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가을인가. 바닷 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사뭇 차가워지고.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2023년 9월 22일,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선생님의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인스타그램 메시지다. 지난 프리즈에 함께 방문한 지인과 동경 갤리리 사람과 친분이 있어 옆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박서보 선생님이 휠체어를 타고 갤러리 전시장에 들어오셨었다. 얼떨떨한 마음에 간단한 목례만 하고 자리를 비켜드렸는데,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그 때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그의 죽음 이후 몇몇 군데서 그를 추억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박서보란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거의 노인이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해외 전시를 나가게 되면 꼭 국내 후배 작가를 해외 갤러리에 소개를 하고 함께 전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항상 생각하셨어요."


얼마전 조찬 모임에서 가나아트센터 분이 하셨던 이야기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이런 박서보의 모습이 영원으로 남았으리라. 나에게는 프리즈 동경갤러리 부스에서의 간단한 목례가 영원한 찰나로 남았다.  


박서보 선생님은 죽음과 함께 그의 세계를 영원으로 남겼다. 그의 세계는 현재 시간 안에 머무를 거고, 이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들은 그의 세계를 재해석하고 그 때의 우리를 투영할 것이다.  


Park Seo-Bo Ecriture No.080507 (2008), Tokyo gallery


언론에서는 영원으로 남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조명을 쏟아내고 있지만, 나의 시선은 그의 유한한 삶에 있다.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예술이 영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의 오늘이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 행동의 잔여물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오늘,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순간은 지금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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