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가치에 대해
CFA Institute 이란 금융전문인력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에서 인터뷰를 했다. 1947년에 미국에서 설립한 이 단체는 업계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높다. 난 이 단체에서 주관하는 CFA (Chartered Financial Analyst) 자격시험을 10년 전에 합격했다. 이들이 나에게 궁금해 했던 인터뷰의 요지는 3차에 걸친 시험을 통과 해야 하는 국제 자격증인 CFA 시험을 왜 시작했고, 지금 하는 사모펀드 업무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답변이었다. 영어로 진행해야 하기에, 그리고 영상으로 박제가 되어서 꽤 공을 들여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준비를 했다.
난 항상 시작이 늦었다. 그리고 자격 시험이든 뭐든 한 번에 통과하는 경우도 적었다. 심지어 운전면허도. 금융회사 취업준비를 다른 동료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운 좋게 취업을 했지만 조금만 더 일찍 영어점수나 자격증 시험 준비를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나를 증명해줄 가장 어려운 관문을 가장 일찍 시작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신입사원 때부터 준비했던 것이 CFA 시험이었다.
결국 나는 7년을 이 시험에 투자했고, 1차 시험을 1번, 2차 시험을 2번, 3차 시험을 3번 떨어지고 합격을 했다. 20대 후반에 시작했던 시험을 30대 중반이 되어 마무리했다. 3차 시험을 계속 떨어졌을 때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내가 나를 불신하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을 때였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이 시험이 내게 남긴 것들을 하나 둘 적어보니 딱 한 가지로 귀결이 되더라.
'그냥 계속 해보는 것'의 가치. 좀 멋들어지게 표현하면 목표달성을 위한 루틴을 만들어 꾸준히 유지하는 일. 시험을 포기하지 않았었기에, 내가 만든 이 스터디 루틴 안에서 꿈을 꿀 수 있었고 회사생활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자격시험 하나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시험은 변호사, 회계사 같은 인증시험도 아니다. 그러나 합격 후 CFA Society Korea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좋은 인연들과 함께 지금까지 성장해올 수 있었다. 이 감사함을 나는 이사회 멤버로서 9년째 이어오는 자원봉사를 통해 표현 중이다.
왜 나는 항상 남들보다 느릴까, 조금 더 일찍 시작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오늘의 바쁨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고 지냈다. 시험합격 후 9년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면서, 나의 느림을 꾸준함이라는 단어로 바꿔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느낌을 덤덤히 인터뷰 스크립트에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나만의 타이밍, 나만의 리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쉽지 않을 것 같다는 24년 우리의 業업, 나의 느린 리듬 안에서 편안함을 찾고 인연도 일도 쉼도 멈추지 말자. 그리고 최소한 포기는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