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케인을 통해 돌아본 나의 요즘
2년 전 즈음 나보다 연배가 높은 지인과 어떻게 하면 나 답게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눴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는 프로젝트로 한참 바빴던 때기도 했고, 직업적인 변곡점에서 계속 길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 했던 시간 속에 빠져 살았다. 그 때 그분께서 당신의 하루를 영화처럼 살아보라는 인상적인 조언을 해줬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미팅들, 모두 당신의 상대역이고 영화의 한 장면이라 생각하면 하루가 달라 보일 거라 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캐릭터로 한 번 연기해보라는 팁까지. 진짜 시도를 해봤었다. 한 두시간 신경을 쓰고 지내다 밀려드는 하루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곧 나로 돌아왔지만, 자기 객관화를 통해 주변 환경에서 한 걸음 물러남으로써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며 넘겼던 것 같다.
그 때 이분이 '마이클 케인의 연기수업'이란 책을 추천 해주셨다. 예전부터 마이클 케인이란 배우가 좋았다. 1933년생 케인의 젊은 시절을 잘 몰랐지만, 중년의 케인과 다크나이트의 알프레드로 알려진 노년의 케인도 좋았다. 그런 그가 이런 책을 썼다니 말이다. 책은 약간의 스킬을 포함해, 배우로서의 몸가짐과 태도로 마무리가 되는데 지금 다시 이 책을 펴보니 특히 나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 부문에 밑줄을 많이 남겨 놨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듯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나 보다. 분명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에서 베어 나오는 생각과 함께 당시의 밑줄을 확인하니 그 때 와는 다른 울림이 있다. 그 중의 일부다.
"좋은 연기는 상대방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
"연기는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현장의 모든 것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함이지, 그렇지 않으면 다 함께 공멸하게 됩니다. 따라서 당신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랬을 때와 똑같은 집중력으로 연기해야 합니다."
"경쟁적인 사람은 승자의 입장에 서 있지 못하면 매우 괴로울 것입니다. 저는 연기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완전히 초월해 있습니다."
"신뢰, 유머감각, 시간엄수 등은 영화 촬영장을 벗어나서도 계속해서 지켜야 할 의무사항들인 것이죠."
"우리 인생은 코미디도, 비극도, 드라마도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이 셋 모두를 합쳐놓은 혼합물이자 연금술이자 현실입니다."
- 마이클 케인의 연기수업
지금은 사라졌지만 여의도 담배골목 (Smoke Valley)이란 명소가 있었다. 우리 사무실 뒷 편에서 시작해 한화투자증권 건물까지 이어지는 골목이었는데, 주구장창 담배만 피워대서 언론의 뭇매를 많이 맞기도 한 곳이다.
'그 때 담배골목에서 밀려오는 아침 햇살 아래 연기를 뿜어내던 멋진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아마 다 제네시스 안에 있어서 우리가 못 보는 거야' 란 농과 함께 동료들과 잠깐의 반가움을 뒤로하고 일터로 돌아갔다. 그것도 몇 년 전이네.
선배들 보다는 후배가 많아지는 시기다. 아직도 한창이란 생각을 하고 그게 맞긴 하지만, 조금씩 정규분포의 중간에서 멀어지는 느낌은 사실이다. 이게 나쁘다는 소회보다는 무감각하게 느껴진다가 맞는 표현 같다. 투자를 위한 프로젝트를 할 때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보람은 해당 시기의 자산이다.
업계에서 늘어가는 후배들을 보며, 또 그들의 활약을 보며 마이클 케인이 문득 떠올랐다. 그도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조연에서 단역으로 역할을 바꿔가며 상대 배우의 대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며 좋은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의 책에 내가 남긴 처음의 밑줄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의 업業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비록 내 역할이 작더라도 항상 똑같은 집중력을 유지하고, 상대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해 신뢰, 유머감각, 시간엄수를 하는 동료로서 조화로운 삶을 선택해야 겠다. 그래, 그리고 그의 말처럼 코미디도, 비극도, 드라마도 아닌 모두를 합쳐 놓은 연금술 같은 인생을 힘껏 즐겨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