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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May 06. 2024

무엇이 나를 궁핍하게 만들었나?

샐러던트로 이끈 동기

사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다. 

하늘에서 돈이랑 음식들이 (나에게만) 원하는 대로 떨어지면 내가 이 길을 택했을까? 절대 아니다.


나는 학자가 되고 싶었다. 정치외교학과 학부생일 때는 과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성적이 꽤 좋았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들이 '애정'하는 제자가 되었고, 대학원 진학에 대한 권유도 많이 받았었다. 같은 과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났고, 우수한 학생이라는 이미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한 번 좋은 이미지가 쌓이다 보니, 그것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감시 아닌 감시 속에서 나는 대부분의 캠퍼스 라이프를 책, 그리고 논문을 읽느라 보냈고, 발표 수업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거의 반쯤 미쳐있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논문을 읽어야 했다. 리포트에서 그들의 논문을 흉내 내다보니 마치 내가 '전문가'가 된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지금 보면 가소롭기 짝이 없지만.


그렇지만 우리 집은 그렇게 풍족한 집안은 아니었다. 특히, 주로 우리 집 수입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가세(家勢)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희망하던 미국 유학을 버리고 구직을 시작했다. 나의 첫 직장도 하필이면 연구기관이었다. 내가 논문의 이름만 알고 있던 사람들 밑에서 '인턴'으로서 일을 했는데, 나도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같은 연구실에 있는 박사님께 상담을 신청했다.


"박사님, 저 대학원 가고 싶어요."


"왜?"


"저 예전부터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박사님들 보니까 그 꿈이 더 간절해졌어요"


"한 연구원, 혹시 돈 많아?"


"예?"


"아니면, 물려받을 재산이라도 조금 있나?"


"그건 아닌데요. 왜 그러시나요?"


"공부를 하는 사람은 말이야. 두 가지가 필요해. 하나는 집에 돈이 많거나, 다른 하나는 할 줄 아는 게 없거나. 그런데 자네는 할 줄 아는 건 많아 보이고, 그렇다면 돈이 많아야 하거든."


"에이 농담하지 마세요. 저 진짜 진지한데요?"


"응 나도 진지해. 공부라는 건, 지난한 과정이야. 그리고 매우 지루해. 그러다 보니 다른 걸 할 수 있다? 그럼 옆길로 새기가 쉬워. 특히 돈이 없는 사람은 더더욱."


"제가 투잡을 뛰어서라도 벌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논문 쓰기만 해도 바쁠걸? 그리고 교수들은 학생들이 일하고 그러는 거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말이야. 자네가 운 좋게 박사학위를 빨리 땄어. 그러면 이 연구기관으로 오는 게 쉬울까? 절대 아니야. 여기 온 사람들 억세게 운 좋은 사람들이야."


"그런가요? 조금 더 고민해 볼게요." 


"그래. 뭐 정 공부하겠다고 하면 내가 말릴 순 없는데, 잘 생각해봐야 할 거야. 그저 장밋빛 미래만 상상하지 말라는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박사님(지금 모 대학 교수로 재직중)은 정말 나를 진심으로 생각했기에 이런 조언을 해주셨던 것 같다. 당시에는 조금 시무룩하게 대화를 끝내긴 했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의 것이었다. 나는 과거의 꿈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잘 다니던 연구소를 박차고 나왔다.


문제는 너무 급하게 박차고 나왔다고 해야 할까? 인턴으로 일하면서 모아둔 돈도 없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등록금과 영어 성적 준비를 핑계로 다시 직장의 문을 두드렸다. 바쁜 회사생활은 나에게 그 어떤 것도 준비도, 희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훗날 '병행'을 선택했지만)


결론을 말하면 두려움이었다. 내가 쌓은 좋은 평판을 잃을까 봐 시작했던 공부였고, 지금은 내 인생에 있어서 그때 과거와 같은 '영광'이 없을까봐 두려워했다. 이 모든 것이 그 때의 나를 괴롭혔고, 지금도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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