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던트는 직장인과 학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사람이다. 나는 두 세계에서 뛰노는 이 둘을 당연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페이스를 잘 유지해 왔다. 그렇지만, 어느새 피로가 누적되어 번아웃이 왔고, 결국은 건강악화로 이어졌다. 소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중간고사 기간이나, 발표과제를 앞두고는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업무도 당연히 삐걱거림이 있었다. 한창 바쁠 때는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한 대리, 지난번에 얘기한 기획안, 그거 재추진해봅시다. 기획안 다시 한번 보여줘요."
'어휴... 어디 뒀더라, 분명 여기 있었는데'
짧게 답변하고 열심히 컴퓨터를 뒤져도 파일이 보이지가 않았다. 상사의 눈초리가 느껴졌다. 업무도, 공부도 땜질식이다 보니 파일 정리는 당연히 뒷전이었다. 그러니 내가 작성한 문서가 어디에 있는지, 상사가 찾는 문서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기억 못 할 수밖에.
"뭐야? 프로젝트 안 한다고 파일 지운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곧 찾아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맞다! 기획안을 이 폴더로 옮겨놨었지'
내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의 한계를 벗어난 걸까. 바쁜 시즌이면 종종 이렇게 '아 맞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해내지 못했어도, 타인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세계를 완전히 분절시킨 채 사는 사람, 분명 존재한다. 오늘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을 조금 상세히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마음의 여유도 먼저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따라온다. 샐러던트를 도전한다면 대부분의 업무가 정규근무 시간대(9-6 또는 10-7)에만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이 시간대에만 이루어져도 벅차다. 학위과정을 등록한다면 매주 과제가 있다. 학과 논문을 읽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최소 2-3시간은 할애해야 하는데, 종종 연장근로가 있다면 코스워크 이수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코스워크가 '부실'했었는데, 종합시험 면접을 볼 때 매우 큰 '지적사항'으로 돌아왔다.
"자네는 정치철학, 비교정치, 국제정치 세 가지 전공 중에 국제정치만 몰아들었네. 비교정치도 몇 개 안 들었고.... 정치철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는데 졸업하고는 어떻게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라고 할 수 있겠나?"
"제가 일과 병행하다 보니 수강신청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으로라도 공부해서 갭을 매워보려고 합니다."
"학위 논문 쓰는 시간도 있으니, 그 계기에 정치사상 수업 일부를 청강이라도 하게"
"네..."
두 번째는 절대 미루지 않는 성격이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자주 미루는 자세는 금물이다. 하루 두 시간 학교 공부에 써야 할 시간을 미룬다면 다음엔 네 시간이라는 엄청난 폭탄을 안게 된다. 네 시간이면 퇴근 후 저녁식사를 즐길 여유도 없이 꼬박 공부에만 시간을 써야 한다. 솔직히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줄 나의 '침대'의 유혹은 너무 달콤하다. 그렇기에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다음날 출퇴근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될 거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 다음날 또 여러 가지 핑계로 미룰 것이 분명하다.
세 번째는 친교활동을 줄여야 한다. 시쳇말로 집돌이/집순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요즘 사람들은 MBTI로 많이들 얘기하던데 I성향(내향형/Introversion)이 확실히 유리해 보인다. 그렇다고 폭넓게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E성향(외향형/Extraversion)의 사람이 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과제가 주어지면 본인만의 '사교성'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외부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조금도 줄이지 못하면 이 또한 미봉책에 그칠 공산이 크다.
자 어떠한가? 이 조건만 보아도 '완벽한 샐러던트'가 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많은 샐러던트들이 나처럼 이 중에서 하나를 포기하거나, 둘 다 포기하거나 하는 것이다. 강도 높은 절제 생활을 통해 목표하는 길 끝에 다다르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을 가진 자들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고생 끝에 얻는 영광이 얼마나 크고, 달콤할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나와 같은 샐러던트들은 우리가 걷는 이 길을 끝까지 가다 보면 더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에 젖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