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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Apr 15. 2024

샐러던트의 처세술

두 세계 사람들과의 이상적인 관계

직장과 학교의 양 갈래 삶 속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생긴다. 두 세계에서의 인간관계를 어설프게 처리할 경우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100점짜리 인간관계의 샐러던트가 되고 싶은가? 아래 선택지를 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1. 나의 정체성과 소속을 한쪽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한쪽으로 기운 세계의 그것이 중심이 될 테니.


만약 당신이 회사를 선택한다면, 캠퍼스 라이프는 단순히 취미 활동이라고 못을 박아야 한다. 회사와 학교 스케줄이 겹친다면 과감히 회사를 선택하고, 학교의 스케줄은 당연히 잊어야 한다. 간혹 수업도 빠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수님, 학생과의 친분관계는 소원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단, 대학원생이라면 코스웍이 끝나고 졸업까지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 특히 박사의 경우 7년 이상 논문 주제도 잡지 못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다. 교수들은 그들의 이름을 서류상에서나 보았을 것이고, 학생들은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아... 예전에 여기서 공부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두 번째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사표를 던질 용기가 있는 자 만이 가능하다. 학과 행사와 교수님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당신이 언제든지 취업 재도전을 할 수 있는 20대라면 상관없지만 결혼을 준비하거나 생각하는 30대라면 이 선택이 쉽지 않다.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대학원은 학자, 즉 전업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전업 학생들은 직장인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타이트한 스케줄을 보낸다. 이 선택을 하겠다는 당신이라면, 당신이 가진 모든 연차를 학교에 쏟아부어야 한다. 그리고 학과 연구실에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학교 부설 연구소의 행사에 훌륭한 자원봉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학교와 직장 모두를 버리든지 혹은 모두 가져가는 방법이다. 인간관계도 둘 다 버리거나 둘 다 취하거나.


번째 방법은 가장 추천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이것저것 해보는 '이상한 사람'이자 '떠날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반면, 학교에서는 '저 나이에' 아직도 갈팡질팡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매년 수 백만원의 등록금을 쓰고선 말이다. 새로운 것을 꿈꾸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는 있을까. 글쎄. 


두 번째는 커리어와 공부 모두 들고 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샐러던트'라고 본다. 다만, 이때부터는 인생이 고달파진다. 제일 좋은 선택지는 내 안에 있는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꺼내는 것이다. 회사의 세계, 학교의 세계로 번갈아가며 이동할 때 한 쪽을 완전히 로그오프 시켜버려야 한다. 회사에서는 '한 대리'로만, 학교에서는 '학생' 또는 '쌤'이라는 호칭으로만 살아가는 것이다. 회사에는 학교 관련 언급을 절대 하지 말고, 학교에 회사와 관련된 물품조차도 들고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아바타를 섞어버렸고, 오히려 그 사이에서 애매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가령 학교 갈 때 회사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간다거나, 회사 개인 책꽂이에 학교 관련 서적을 놓아두기도 했다. 오직 각자의 세계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두 곳 모두에게서 '우리 사람'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직장 상사에게 '학교 공부가 향후 회사 업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절대 이런 '어설픈 거짓말'은 하지 않길 바란다. 흐리멍덩해 보이는 상사일지라도 바보는 아니니까.


두 세계를 완전히 분리시키지 못한 나는 100점짜리 샐러던트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들인 돈이 아까워서 만은 아니다. 비록 '애매한 존재'지만 나를 진심으로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회사에서 소논문 쓰느라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고 허우적거리고, 학교 수업 때 조용히 강의실 뒷문으로 나가 회사 전화를 받는 나를 토닥여준다. 어느 한 쪽의 퍼포먼스가 저조해도 그들은 내가 '샐러던트'이기 때문이라고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단순히 소속과 직함 따위로 규정하지도 않고 나에게 무엇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나의 발걸음을 높이 평가해 주며, 마라톤 레이스에서 뒤처진 나에게 '완주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준다. 내가 용기가 없어, 혹은 욕심이 많아 두 세계를 힘겹게 잡고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저 먼 곳에서 밝은 빛을 흩뿌리며 손을 내밀어 준다. 


글의 말미에 고백하지만, 샐러던트에게 만능 처세술이나 인간관계술 따윈 없다. 샐러던트라면 이러한 '완주 페이스 메이커'를 믿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두 세계의 '미생(未生)'을 '완생(完生)'으로 거듭나게 해 줄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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