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떠날 '대리', 우리와는 다른 '선생님'
차라리 그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샐러던트는 두 개의 다른 세계에서 각기 다른 얼굴로 힘겹게 살아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쪽에서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진짜 우리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는 몸을 갈아서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수년간 일해온 회사에서 내 나름대로의 '짬밥'을 쌓았기에 신입이나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 온 친구들이 질문하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즉시 '정답'이 떠오른다. 이들이 쓴 기획안이나 보고서도 나를 거쳐야 팀장에게 보고되기 일쑤다. 자기 자랑이라기보다는 '폐급'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 무얼 하나. 나를 신뢰하는 팀장조차 가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한 대리, 회사에서 아주 모범적이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말이야. 나중에 좋은 기회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려는 거지? 어디 생각해 둔 곳은 있고?"
"아... 아니에요. 저는 그저, 공부와 연구가 좋아서 하는 거라서요. 제가 배우는 전공이 인문사회계열이라 이직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에이 뭐야, 무슨 사람이 재미없게 그런 걸 좋아해. 그리고 아주 돈이 많은가 보구먼? 빨리 좋은 짝 만나서 결혼해야겠어! 그래야 돈을 허튼 곳에 안 쓰지."
손사래를 치며 변명해 봐야 시큰둥한 반응이다. 팀장은 속으로 '과연 네가 우리 회사에서 진짜 안 옮기고 버틸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물론 악의는 없다.
직장 상사뿐만이 아니다. 동기들이나 나를 보는 다른 부서의 동료도 비슷한 시각이다.
"와! 한 대리님, 대학원 다니세요? 그 바쁜 스케줄에 학교는 또 어떻게 다니세요? 전공은요? 나중에 이직 생각하시는 곳 있으세요? 나중에 잘 되시면 한 턱 쏘세요!"
대략 이런 반응이다. 나는 그저 웃음으로 때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회사 이외에 다른 것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내가 회사와의 '이별준비'를 한다고 여긴다. 내가 대학원을 다닌다는 것을 회사사람들에게 오픈했을 때 난 이미 '떠날 사람'이었다.
나는 이들의 시선이나 생각을 미워하진 않는다. 그게 샐러던트를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니까. '순진한 거야? 이렇게 될 걸 몰랐어?'라고 물어봐도 할 말은 없다. 다만, 아쉬운 건 내 인사평가다. 이러한 이미지가 굳어진다면 내 평가 결과가 좋을 리 만무하다. 회사에서의 내 실적은 남들보다도 좋은 편이지만, 딱딱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깨부수기는 쉽지 않다.
학교는 어떠한가? 나는 학생들과 동일한 곳에서 똑같이 졸업시험과 논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들은 나를 받아주는가? 안타깝게도 답은 'No'다. 교수들은 나를 이미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파트 학생'으로 분류했다. 회사를 다니며 개인휴가까지 써서 주간 수업을 나오는데도 마찬가지다. 재밌는 것은 학생들, 특히 박사 과정생들은 간혹 수 학기를 풀타임으로 알바나 연구소에 취직이 되어 일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파트 학생'이 아닌 '전업 학생'으로 분류된다.
"자네는 아무래도 파트타임이니까, 교수들과 유대관계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네. 학점을 다 들었어도 교수님들 수업을 청강이라도 해서 스킨십을 늘려야 하네"
내 돈을 내고 수업을 다 듣고 졸업시험에 통과해도 교수들과의 '스킨십'을 위해 계속 수업을 들으라는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저 말은 분명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라는 것은 잘 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파트 학생'에게는 특별히 관심이 없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코스워크를 함께 듣고, 논문으로 고통받는 사람' 정도로 인식을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샐러던트를 '현업에 있는 (혹은 있다 온)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전업 학생과 공유하는 기억이 달라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간혹 말투의 기저에 '그런 생각'이 묻어 나올 때는 조금 섭섭하긴 하다.
"우와, 이런 건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학교 홈페이지에는 없던데"
"응? 선생님, 이 자료 없으세요? 아 맞다. 이건 저희 연구팀 사람들만 공유했나 보네요.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내드릴게요."
"연구팀이라는 게 있어요? 그건 가입해야 하는 건가요?"
"아하하, 연구팀이라는 게 별도로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교수님이랑 같이 밥 먹고, 가끔 과제도 도와주고 하다 보니까 저희끼리는 편하게 연구팀이라고 불러요. 선생님은 일 하시니까 아마 잘 못 오시고 또 돈도 필요 없으니 사실 저희가 부럽죠."
그럴 리가. 난 더 부럽다. 어린 나이도, 그리고 성과평가 없이 함께 웃고, 밥도 먹을 수 있는 '연구팀'이 있는 저 친구들이.
회사와 학교에서 모두 나의 '자리'가 없을 때 가장 마음이 공허하다. 직장에서 나는 좋은 실적과 평가에도, 결국엔 언젠가는 떠날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고, 이론과 방법론을 열심히 공부하고, 최신 논문의 트렌드를 바짝 쫓아가도 결국은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치부된다. 속상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괜한 반발심도 생긴다.
'그래! 차라리 그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나는 샐러던트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