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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May 12. 2024

전세사기의 확인, 그리고 소송

아가야,

이 책은 아빠의 '엄마 관찰기'지만, 오늘은 스토리 전개상 아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


지난번에 얘기했듯 엄마와 아빠는 살고 있는 전셋집 등기부등본에서 발견한 '가압류' 문구를 보고 집주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줄 것을 요구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아빠의 휴대전화로 집주인의 연락이 왔어.


"여보세요"


"예~ 사장님, 저 201호 집주인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제가 사장님께서 보내주신 등기부 등본 사진을 보니까 허그(HUG,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가압류를 한 것 같아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허그에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받지를 않네요. 그래서 제가 직접 가보려고 했는데 허그 사무실이 여의도에 있더라고요? 제가 사는 인천이랑 또 멀리 있기도 하고..."


"그래서요?"


"혹시 세입자 분께서 여의도에서 일하시니 혹시 괜찮으시면 직접 가서 알아봐 주실 수 없으실까 해서..."


하마터면 실소가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애써 참은 채 말했어. 이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어. 사안이 심각한 만큼 아빠는 집주인에게 단호하게 대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딱 잘라서 말했어


"지금 장난해요?"


"네?"


"당신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지금 이 모든 일이 누구 때문에 벌어졌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왜 제가 제 시간과 돈을 들여서 그걸 알아봐야 하죠?"


"아... 그게"


"두 번 말 안 하겠습니다. 당장 가서 알아보시고 무슨 일인지 소상히 알려주세요. 본인이 가압류 걸려놓은 것을 보고 세입자한테 가서 알아보라는 게, 지금 제정신으로 할 말이에요?!"


"빨리 이 가압류 기록을 말소시켜야 저희가 보증보험이라도 가입하니까 얼른 처리해 주세요"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한 번 가서 알아볼게요"


아빠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회사 로비 소파에 등을 기대어서 눈을 감았어. 가슴 아래로부터 답답하고 암울함이 밀려 올라왔어. 귓가엔 동료 직장인들의 바쁜 발자국 소리와 업무와 사적인 얘기들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이 모든 것이 함께 섞이면서 오히려 공허한 느낌을 자아냈어.


아빠로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최악을 생각했어. '이 집이 경매에 팔려나가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우리에겐 얼마가 있지? 몇 달 후면 네가 세상에 나오는데, 집에서 '쫓겨나서'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면 어쩌지? 이 대책 없는 집주인의 상태를 엄마에게 알렸을 때 충격을 받으면 어쩌지? 엄마가 속상해하면 네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텐데...'


너무나 머리가 아팠어. 그렇지만 아빠는 엄마에게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을 알려줘야 했어. 절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가 혼자서 계속 불안해할 수도 있으니 꾸준히 달래주면서 충격을 줄여야만 했지. 늦은 오후 집주인은 다시 아빠에게 연락이 왔어.


"네"


"집주인입니다. 그... 허그를 왔는데, 가압류 말소를 못해준다네요"


"그래서요?"


"아, 그래서 이게 참..."


"아니 그래서요? 뭔 대책을 말씀해 주셔야지, 전화로 한탄만 하면 저희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죠?"


"아 사장님께서 빨리 보증보험을 가입해 주셨으면 이런 일이..."


"지금 뭐라고 하신 겁니까? 저희 탓하는 거예요? 본인이 대책 없이 일 벌여서 우리 돈 못주게 생겼으면서 저희가 보증보험을 가입 안 한 탓이라고요? 기가 차네요. 이것 보세요!"


"예..."


"저희가 지난번에 허그에 갔다가 '퇴짜' 맞았어요. 이 집은 안된다고요. 좋아요! 당신 말대로 우리가 HF라도 빨리 가입했다고 쳐요. 그런데 90%만 보증을 해주기에 10%는 못 받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 돈은 안 돌려줘도 되는 거예요? '90%라도 돌려받았으니 다행이죠?'라고 말하려고 했었나요?


"아니 사장님 그게 아니고..."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죠. 일단 끊으시고, 얼른 해결할 방법을 알아서 가져오세요."


"예... 그런데 제가 다른 집도 지금 경매에 넘어가고 팔리지도 않아서..."


"그 사정은 내가 알 필요도 없는 사정이니, 등기부등본 상태나 원상복구 해 놓으라고요!"


-뚝-


아빠는 고개를 떨구고 머리를 쥐어뜯었어. 역시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어. 일단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려줘야 했지. 최대한 뱃속에 있는 네가 영향을 받지 않게. 전화를 거는 상황에서도 혹시 아빠의 콜을 보고 엄마가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


"여보세요"


"여보, 집주인한테 연락이 왔어요"


"네. 우리가 우려하던 상황이 생긴 것 같긴 해요. 집주인이 가지고 있는 다른 빌라가 몇 채가 있는데, 그것도 경매에 넘겨졌나 봐요. 그래서 현재로서는 현금이 막힌 것 같아서 쉽지 않다고 하네요"


"아, 어떡해요. 여보 미안해요. 내가 빨리 가입했어야 했는데, 너무 미루었나 봐요"


엄마는 울먹거리며 얘기했어.


"그건 자신 탓할 건 아니에요. 집주인이 나쁜 거지 왜 당신이 못했다는 탓을 해요? 1년 안에만 가입하라고 집주인도 그렇게 말을 했잖아요. 돈을 못 갚는 사람이 문제지"


"그렇긴 한데..."


"당신은 이 일에서 손을 떼세요. 아기 건강을 위해서도. 집 생각은 하지 말아요. 진행상황은 내가 간간히 공유해 줄게요. 아마 긴 싸움이 될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일단 머릿속에 조금 정리를 해봐야겠지만, 법적으로 대응을 하는 수밖에요.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이 사안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아기와 본인 건강만 신경 써요"


"알겠어요"


"그래요. 대충 정리되면 자기한테 알려줄게요. 오늘 조금 늦을 수도 있으니 먼저 밥 먹고 집에서 푹 쉬고 있어요"


아빠는 전화를 끊고, 다시 사무실 의자에 기대어서 한숨을 쉬었어. 사무실은 모두가 퇴근을 해서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 그러다 보니 머릿속 정리도 빨리 되는 것 같았어. 몸을 다시 컴퓨터 쪽으로 일으키고 의자를 당겨 앉았어. 어쨌든 이 집주인은 우리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건 분명했으니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지.


아빠는 인터넷 검색엔진을 켜고 키보드를 쳤어.


'전세사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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