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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Sep 29. 2024

전세사기와 변호사

전세사기를 이겨내려는 몸부림

아가야, 부디 너는 살면서 ‘변호사’를 찾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변호사는 누군가와 분쟁이 있거나, 혹은 네가 억울한 일이 있거나 잘못을 해서 찾는 사람들이거든. 너는 우리와는 다르게 평탄하고 무난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빠와 엄마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경찰서나 법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데, 전세사기라 때문에 우리가 변호사를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TV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다니. 너무나 참담했지. 


엄마의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아빠는 이 일 때문에 엄마가 큰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가 너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무서웠어. 우리가 이 전세사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싶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렇기에 전문가인 변호사를 고용해야만 했지.


인터넷에 ‘전세사기 변호사’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로펌이나 변호사사무소는 정말 많았어. 이 중 몇 군데에 우리의 사정을 얘기했고, 그중에 적극적으로 응대해 주는 한 곳을 골랐어. 아무래도 친절하면 잘해 줄 것이라고 생각이 되더라. 그리고 서초동 로펌의 한 변호사와 상담 날짜를 잡았어. 


그날은 너무나도 화창한 봄날이었어. 아빠는 상담을 가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했지. 엄마는 임신 초기라 매일 졸음과 싸우고 있었어. 그날도 침대 위에 기절한 채 말이지.


‘나, 다녀올게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잠에 든 엄마를 바라보며, 아빠는 속으로 말했어. 그리고 변호사가 참고할 수 있게 그간에 있었던 사실관계를 정리한 서류를 들고 서초동으로 향했어. 지하철이 한강 철교를 넘을 때 지하철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은 지독하게 아름다웠어.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말이지.


아빠는 서초역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왔어. 서초동 법조타운의 하늘을 찌를듯하게 높은 고층 빌딩 아래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어. 마치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처럼. 주말아침 법조타운의 공기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고 고요했어.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쭈뼛쭈뼛하며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 담당 변호사님이 기다리고 계셨어. 아빠는 변호사님과 간단하게 명함을 주고받았고, 사실관계를 적은 종이를 포함해 가지고 왔던 서류더미들을 내밀었어. 변호사님은 그 서류더미를 찬찬히 읽어보시고, 본인이 궁금한 건 추가로 더 물어보셨어.


“음, 등기부 등본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으니 이 조항을 근거로 해서 계약해지를 요구하고 전세금 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소송으로 가시는 게 제일 현실적인 선택 같네요.”


변호사님의 말투는 무척이나 적극적이었지만 또 사무적이었어.


“변호사님, 아마 물어보는 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 찌만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이런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만..."


변호사님이 말을 이어갔어.


"이 집주인이 작심하고 가족이나 친척 명의로 재산을 숨길 가능성이 높고요. 우리가 승소한다면, 그 판결에 기해서 집주인의 재산을 명시토록 하고, 거기에 나온 재산을 압류하여 경매로 넘겨 처리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님은 잠시 희망에 찬 아빠의  눈을 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어.


"다만 이 경우엔 이미 다른 세입자들이 선생님과 비슷한 처지일 것 같아요. 집주인이 돈을 줄 능력이 전혀 없어 보이거든요. 최악의 경우 자신이 살던 곳을 셀프 경매받기도 하죠."


아빠는 얘기를 할수록 속상해졌어. 뭐랄까, ‘당신이 차려놓은 밥상을 누군가 몰래 다 먹었어요. 아마 음식을 돌려받을 수는 없고, 남은 음식이라도 가져가야죠’라고 하는 느낌이었어. 


“그럼 변호사님, 사기꾼을 형사처벌 할 수는 없는 건가요?”


“소를 제기할 수는 있는데요. 다만, 계약을 할 당시에 작정하고 속이려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사실 이 경우에는 그런 걸 증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세금 반환청구 소송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 외로 암울한 결과가 그려지니 아빠의 어깨는 한없이 움츠러들었어. 사기 친 놈을 처벌하지는 못하고, 정작 피해자인 우리는 왜 우리 돈을 돌려받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걸까. 우리 돈을 돌려받는 것이 이렇게 힘들 일일까.


“변호사님, 그럼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그건 전세 가격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그게...”


너무나 비싼 변호사 비용에 ‘헉’ 소리가 나왔어. 법원에 낼 돈까지 합치면 초기 비용만 500만 원 정도였지. 아빠와 엄마 한 달 월급보다도 많은 돈이었어. 너무나 속상했어. 앞으로 너한테 들어야 할 돈도 많은데 말이야. 그렇다고 셀프 소송하겠다며 모든 시간을 써가며 이 지루한 싸움에 매여있을 수도 없었어. 앞으로 네가 태어날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잖아. 네가 안전하게 찬란한 세상 빛을 보도록 정성껏 돌봐야 하고, 또 너와 함께 살아야 할 집도 구해야 하니까. 물론 전세사기를 당한 상태에서는 너무나 어렵겠지만 말이야.


“어쩔 수 없죠. 소송 진행해 주세요.”


카드 결제기로 수백만 원을 결제하는데 아빠의 심장을 송곳으로 쿡쿡 쑤시는 것 같았어. 전세사기의 형국에서 돈은 사기범과 변호사가 버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아빠랑 엄마는 입고 먹는 돈을 아껴가며 힘들게 만 원, 2만 원 저축해 왔는데 이렇게 수백만 원이 허망하게 날아가다니. 그간 우리가 쏟아부은 노력이 바보 같아 보였어.   


"감사합니다. 소송 서류 관련해서 몇 가지 서류를 요청드릴 건데, 그건 따로 선생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변호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님께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아빠는 생각이 많아졌어. 오늘 변호사님과 한 얘기를 엄마에게 한다면 매우 속상하겠지. 엄마는 바보같이 아마 또 보증보험을 늦게 알아본 자신 탓을 할 테니까. 그렇기에 바로 집에 들어갈 수 없더라고. 터벅터벅 걸어 서초동의 한 김밥집에 가서 라면과 김밥을 시켰어. 



평생 잘 마시지도 않던 라면 국물을 남김없이 들이켰어.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들어가면서 아빠의 배를 따뜻하게 만들었어. 창가에서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 모든 힘듦을 이겨내고 우리 집에 웃음을 찾아오리라 다짐했어.


“얼마예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결제를 할 때와 사뭇 다른 모습으로 카드 결제를 하고 식당을 나왔어. 


‘이겨내자. 난 남편이자 가장이고, 또 아빠니까.’


아가야, 아빠에게 힘을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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