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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May 04. 2024

등기부등본에 있는 섬뜩한 글자

등기부등본에 있는 섬뜩한 글자

아가야.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결코 좋지 않은 습관이야. 설령 그날 내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말이지.  

이번 편에는 엄마와 아빠 결혼 초기 생활에 있었던, 조금 어려웠던 일들을 중심으로 얘기해보려고 해. 그리고 부동산 용어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으니 조금은 집중해서 읽어주길 바랄게.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결혼식 4개월 전에 서울 외곽에 있는 작은 빌라에 전세를 들어왔어. 당시에 부동산을 통해서 거래를 했었는데, 집주인이 참 친절한 사람이라고 느꼈지. 계약서 작성을 할 때 우리 보고 꼭 1년 안에 전세보증보험부터 가입하라고 하면서,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을 다 들어주기도 했었거든. 우리는 좋은 주인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입주를 했지.


전셋집은 사람들이 전세금을 내고 2년 동안 그 집에 거주할 수 있어. 엄마와 아빠도 2년 동안 현재의 집에 거주하게 될 테고, 향후 나가야 할 때 집주인은 우리에게 전세금을 돌려줘야 해. 그렇지만 집주인들은 그 돈을 이곳저곳 투자(혹은 빚 돌려 막기를) 하다 보니 그 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지. 최근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세사기 스캔들'이 대개 이런 경우들을 얘기해.


그렇기에 나라에서는 HUG(주택도시보증공사)나 HF(한국주금융공사)와 같은 곳에서 전세금보증보험 상품을 내놓고 세입자들에게 가입하게 하지. 그 덕에 많은 세입자들이 전세금 피해를 받지 않게 되고. 다만, 그럼에도 이 제도를 교묘히 회피해서 사기를 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현재 뉴스에서 보는 많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발생하기도 해.


엄마와 아빠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다소 늦었어. 출근하랴 결혼식 준비하랴 정신없었고, 신혼여행 갔다 오고는 잦은 출장에 격무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지. 너를 가진 후 임산부 배지를 받아야 했는데 '그 김에'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 1년이 지나기 전에 말이야. 


구청에 있는 법원 무인민원기에서 등기부등본을 발급받고 점심을 먹으러 향했어 그날따라 왜 그 등본을 펼쳐보고 싶었는지. 아빠가 손에 있는 등본을 펼치고 하나하나 읽어 나갈 때, 순간 두려움을 자아내게 하는 글자를 발견했었어. 


'가압류 2023년 11월 15일 제1 xxxxx호... 채권자 주택도시보증공사'


옆에 있는 엄마에게 물어봤어. 아니, 알려줬다는 게 맞는 표현 같아.


"여보 이거 가압류 뭐예요? 주택도시보증공사? 11월이면 우리 신혼여행 갔을 때 같은데? 3개월 전이네."


"가압류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청구 금액이 꽤 커요. 5억 가량되는데, 우리 전세금보다 훨씬 많아요."


"아... 무슨 일이죠? 나 잘 모르겠는데..."


"우리가 없을 때 가압류 걸렸었나 봐요. 이러면 보증보험 가입도 안 될 텐데..."


"그럼 어떡해요?"


"일단 자기 입덧이 너무 심하니 빨리 밥부터 먹으러 갑시다. 그리고 내가 집주인한테 전화를 걸어볼게요."


밥 먹는 내내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어. 밥이 제대로 들어갈 리가 없었겠지. 대충 밥을 먹은 후 아빠가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어. 다행히 집주인은 아빠의 전화를 받더라고. 


"저 선생님, 202호입니다. 저희가 방금 전세보증보험 가입하려고 등기부등본을 떼어봤는데 가압류가 걸려있는데요? 이거 무슨 일이죠?"


"예? 가압류요? 무슨 가압류죠? (주택도시보증공사가 5억 정도 잡아놓았네요.) 아... 제가 잘 모르는 건데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이거 당장 알아보고 연락 주세요. 이런 거 생기기 전에 세입자한테 상의하는 거, 계약에 있었던 거 기억하시죠? 당장 내일 아침에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 쳐다봤어. 아빠는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한 후 주의를 환기시켰어. 그리고 '전세사기'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고 미리 얘기를 해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뱃속의 아기를 위해 그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나쁜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지. 전세금이 큰 금액이긴 했지만, 네가 더 중요했으니까. 


집주인이 정말 가압류에 걸렸는지 몰랐을까?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우린 순진하게 그를 믿어보기로 했어. 왜냐면 우리가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없었거든. 집주인은 다음날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왔어. 


그리고, 긴 싸움이 시작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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