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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Apr 28. 2024

아이가 클 집이라도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집 값


내가 욕심이 많은 건 아니잖아요

아가야.


이번 챕터에서는 우리 집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해. 집은 아기를 가진 예비 엄마 아빠가 거의 반드시 하는 고민이라고 봐.


엄마와 아빠는 연애 초반에 결혼을 빠르게 결정하고 추진했어. 그렇지만 2세 고민은 하지 않았지. 둘 다 나이가 많아서 가능성이 낮아보였고, 엄마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었기에 당연히 임신이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신혼집도 큰 곳이 아닌 작은 곳으로 구했어. 직장에서 멀지 않은 14평짜리 작은 빌라가 둘 만의 작은 보금자리가 되었지.


결혼식 4개월 전, 양가의 동의하에 엄마와 아빠는 신혼집으로 이사를 왔어. 엄마는 결혼식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매일 늦은 밤까지 우리 집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며 하나하나 물건들을 채워나갔어. 우리 집 침실에는 킹사이즈 침대와 화장대, 매거진과 장식품들을 놓는 전시대가 있고, 거실엔 하얀색의 예쁜 사각 테이블과 책으로 빼곡히 차있는 책장, 그 옆엔 고풍스러운 느낌의 스피커 스탠드와 조명이 예쁘게 놓여있지. 작은 방에는 시스템 옷걸이가 방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어. 집 구석구석에는 예쁜 꽃병과 같은 오브제를 놓았는데, 덕분에 집이 참 아늑한 기분을 내었지. 


신혼생활 3개월 남짓한 시점에 우리는 임신을 확인받았고, 엄마는 고민에 빠졌어. 


"여보, 우리 지금 이 집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요? 아기 낳은 사람들은 다들 넓은 집으로 간다던데..."


아빠는 의아했어. 아기 낳는 것과 집이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었지.


"갑자기 집이요? 에이, 그냥 여기서 키우면 되지 않나요? 애기가 커봤자 얼마나 크다고"


엄마는 아빠를 세상물정 모른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어.


"애기가 크면 기어 다닐 텐데, 이 좁은 집에 애기가 기어 다닐 곳도 없어요. 그리고 애기 짐 놔둘 곳은 말할 필요도 없구요. 작은 방을 봐요. 이미 우리 짐으로 가득차서 창고가 될 지경이잖아요."


"음... 애가 뭘 알겠어요. 대충 침대 위에서 키우다가 거실에서 키우면 되죠. 거실 물건 좀 처분하고. 나 때는..."


아빠는 어릴 때 풍족하게 자라진 못했어. 아빠의 여동생인 네 고모와 함께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단칸방에서, 고학년부터는 13평 남짓한 지방의 주공아파트에서 컸었는데 집이 좁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거든. '라떼' 얘기를 하는 아빠가 엄마로서는 무지 답답했나 봐. 


"여보 우리 때랑은 달라요. 애기가 나오면 애기 침대도 있어야 하는데 둘 곳도 없어요. "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한 번 알아는 봐요. 그런데 이 집 전세가 아직 1년 넘게 남았는데..."


"맞아요. 그러니까 여보, 이거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부터 천천히 고민해야 해요. "


엄마는 본인이 너무 억척스럽게 보였는지, 아니면 아빠의 감정을 상하게 했는지 걱정이 되었나봐. 


"여보, 내가 욕심이 많은 건 아니잖아요. 애기한테 좋은 집이 아닌 애기가 클 집이 필요하다는 건데..."


"아니에요. 내가 집을 구하는 데 반대하는 건 아니니 오해마시고, 일단 같이 찾아봅시다!"


그날밤 엄마와 아빠는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한 새 터전을 찾아나가자는 데 합의했어. 엄마는 곧장 방으로 들어간 후 휴대전화에 부동산 어플을 설치하고 열심히 아파트 시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지. 몇 시간이 지났을 까. 거실에서 글을 쓰던 아빠는 방에 있는 엄마를 흘긋 쳐다보았어. 밝은 휴대폰 조명이 엄마의 사뭇 진지하고 어두운 표정을 비추고 있었어.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있었어. 월급쟁이 신혼부부가 새 집을 사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 새 집은 얼추 10억이라는 엄청난 돈이 들고, 시중 대출로는 이자조차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야. 정부에서 2024년부터 '신생아 특례대출'이라는 저금리 대출을 풀었는데, 이자를 감당할 있다손 치더라도 대출한도가 5억밖에 되지 않았어. 서울에서 5억짜리 집이 어딨겠니. 당연히 20-30년 된 오래된 아파트에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상이 되는 교외지역의 아파트를 찾아봐야했어. 이런 현실적인 조건들에 타협해야 하다 보니 엄마 표정이 좋아질 수밖에.


'그럼 조금 넓은 빌라를 사도 되지 않아?'


실제로 아빠주변에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어. 이건 정말 세상물정 모르고 하는 얘기야. 빌라는 집을 나오는 순간 도로변이라 아기 안전에 좋지도 않고, 외부 소음에도 취약하지. 주변에 편의시설도 없어서 살기도 어려울뿐만 아니라 넓은 평수의 빌라는 찾기도 힘들어. 더군다나 나중에 학교때문에 이사를 간다고 하더라도 살 사람이 없기에 신혼 초기 목돈을 빌라에 묶어놓는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지. 빌라에서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여건이 쉽지 않거든.


엄마는 체념한 듯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는 잠에 들었어. 이 모든 제약조건들을 확인하고 그 압박감에 너무 힘들었을테지. 아빠는 조금 미안해졌어. 내가 돈을 조금 많이 버는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저렇게 고민하지는 않았을텐데라는 생각말이야. 물론 엄마가 박봉인 아빠를 탓하진 않았어. 우리 소득 수준이 아주 낮은 건 아니었거든. 그러니 그저 너무 높은 서울 집값을 탓해야 할뿐.


'내가 욕심이 많은 건 아니잖아요'라는 엄마 말은, 아기를 위한 작은 바람이 자칫 자신의 욕심으로 비춰질까봐 하는 걱정과도 같은 말인 것 같아. 생각컨대 아기를 위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옮기자는 것이 대단한 물욕은 아니잖아? 그러기에 아빠는 씁쓸했어. 정상적인 생각도 욕심으로 보여지는 이 사회가 조금 미워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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