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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Apr 13. 2024

상상속 아기가 '우리 아기'로

둥둥이와 산모의 심리적 변화

세상 참 좋아졌지 않아요? 예전엔 아기를 어떻게 키웠는지 몰라.


아가야. 


임신 후 불안에 떨었던 엄마는 시간이 흐르며 너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네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있단다. 처음에 너의 존재는 엄마에게 '불확실한 미래'만을 그려주었다면, 지금은 엄마의 삶의 일부가 되었어.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너를 자신의 일부로 느끼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 


엄마가 산부인과에서 첫 임신 진단을 받았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 많은 선물을 주었다고 했지? 그중에 산부인과와 연동된 '마미톡'이라는 임신.육아 어플이 있어. 어플은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어서 아빠와 엄마 둘 중 누구 휴대전화에 설치를 할까 고민했었어. 엄마의 심리를 보니 다른 부담을 짊어지기 너무 힘들어 보였거든. 그래도 아빠는 엄마가 너를 직접 품고 있으니 엄마 폰에 설치해서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해 보는 것이 어떻냐고 권했어.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어요'라고 대답했지. 지금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인 것 같아. 산모의 심신 안정에 매우 도움이 되었거든.


앞서 말했듯이 '마미톡'이라는 어플은 엄마가 진료를 받는 산부인과와 연동이 돼. 그래서 산부인과에서 찍은 초음파 영상을 언제든지 어플로 확인할 수가 있지. 엄마들은 아기들을 뱃속에 오래 품고 있지만, 자신의 뱃속 사정을 훤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매주마다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로 자신의 아기 상태를 확인하지 않기에 아기가 보고 싶을 때는 자주 어플을 켜서 초음파 영상들을 보곤 해. 


마미톡 화면 캡처. 캐릭터 '둥둥이'는 엄마(산모)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보낸다. 화면 하단에 '커뮤니티', '쇼핑', '클래스(일부 유료)' 등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마미톡에는 '둥둥이'라는 아기 캐릭터가 있어. 정말 귀엽지 않니? 이 '둥둥이'를 클릭하면 마치 정말 아기의 생각을 전해주듯 엄마에게 하는 말을 말풍선에 담아서 보여줘. 엄마도 너를 가지고 난 뒤 불안에 휩싸인 '걱정머신'이었지만, '둥둥이'가 해주는 따뜻한 말 덕분에 불안했던 마음을 놓고, 차츰차츰 너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 '둥둥이'는 임신 주수에 따라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자세와 표정을 바꾸기도 하는데, 엄마는 그것이 너무 귀엽고 신기한지 가끔 밤마다 흐뭇한 얼굴로 둥둥이를 보면서 너를 상상하곤 한단다. 


엄마와 아빠는 밤마다 종종 마미톡 어플에 접속해서 산부인과에서 올려준 초음파 영상을 계속 보고, 또 너의 크기를 짐작하며, 캐릭터 '둥둥이'가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말을 들으며 행복해했지. 그리고 그 어플에는 '커뮤니티'라는 공간을 통해 다른 수많은 아기 엄마들의 고민과 꿀팁을 받아 적기도 했어. 그리고, 산부인과 전문의나 육아 전문가가 제공해 주는 유료 수업이 있는데, 엄마와 아빠는 매주 2회 영상을 들으며 함께 공부했단다. 엄마는 그런 어플이 너무 신기한가 봐. 어플에 빠진 채 아빠에게 이렇게 얘기하더라고 "세상 참 좋아졌지 않아요? 이렇게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데, 예전에는 아기를 어떻게 키웠는지 몰라."


물론, 지금까지의 과정이 모두 아름답고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야. 8주 차에 접어들었을 때 엄마는 산부인과에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갔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아기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빠르네요. 산모의 컨디션 때문일 수도 있으니 수액을 맞고 다시 한번 검사해 봐요."라고 말했어. 한 시간 뒤 다시 검사했지만, 심박수는 여전히 180-190 언저리를 왔다 갔다 했었지.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저은 후 2주 뒤 다시 검사를 해봐야 된다라는 말을 했고, 엄마는 힘 없이 집으로 돌아왔어. 무서웠지. 엄마는 저녁에 잘 때마다 스스로의 배를 쓰다듬으며 얘기했어. "아가, 다 괜찮을 거야. 우리 아기 아무 문제없을 거야." 


아빠도 재검을 하는 그날까지 잠을 잘 이루지 못했어. 아빠가 불안해하면 엄마의 심리상태에 영향을 줄까 봐 겉으로는 괜찮은 척 웃고 있었지만, 혹시나 네가 잘 못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단다. 엄마가 잠든 틈을 타서 임신 중 태아 이상상태에 대해 검색하기도 했고, 아이를 잃은 다른 엄마 아빠의 글을 접하기도 했어. 그런 무서운 글들을 보면서 아빠는 아빠의 불안을 계속 키워만 갔었단다.


재검의 그날은 하필 아빠가 당직이었어. 엄마에게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회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소식을 기다렸지. "다행이네요. 심박수가 조금 내렸어요. 여전히 높은 편이긴 하지만, 일단은 조금 지켜보시고 다음 달에 검사한 번 더 해봐요." 검사 결과 차트를 본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이렇게 얘기했어.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병원을 나오자마자 곧장 당직을 서고 있던 아빠에게 그 소식을 알렸지. 엄마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어.


우리 아기, 잘 버텨줘서 너무 대단하요. 너무 기특해요. 그렇죠?

아빠는 남몰래 밤늦게 회사에서 눈물을 훔쳤고, 신에게 감사했어. 물론 아기를 키워본 부모 입장에서는 '그게 뭐 별 일이라고 유난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아이를 낳고 키우기까지 더 큰 일들이 많이 생길 테니.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우리 둘 만의 삶을 살아가는 데 익숙해. 우리 삶에 우리가 책임져야 할 또 다른 생명과의 동행은 처음이었지. 그래서 느끼는 공포가 더 컸고, 혹시라도 우리가 잘 케어하지 못해서 네가 아플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었지. 그런 사건들이 우리를 조금씩 '예비 부모'로 만들어 주고 있었어.


엄마와 아빠도 이런 심리적 변화가 참 신기했어. 엄마와 아빠는 너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잖아. 엄만 아직 임신 초기라 배도 많이 나오지 않아서 사실 너는 '상상 속의 아기'로만 존재하고 있었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마치 네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고, 그런 너를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휩쓸었었어. 특히 엄마는 이 계기로 조금 더 가슴 깊이 너를 받아들였던 것 같아. 최근 배를 쓰다듬으며 너에게 얘기하는 빈도도 늘었거든.


아가야,

내일이면 제2차 기형아 검사를 해. 엄마와 아빠는 혹시나 네가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것은 아닐까 또 한 번 걱정 스위치를 켜고 있단다. 혹시 엄마가 회사일을 무리했거나, 혹은 안 좋은 음식을 먹었거나 해서 너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지. 그렇지만, 좋은 생각만 하기로 했어. 너는 엄마와 아빠보다 훌륭하고 강하니까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믿고 예쁜 상상을 하며 잘 거야. 초음파 영상 속의 네가 아무런 탈 없이 엄마에게 힘찬 몸짓을 보여주는 상상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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