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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Apr 06. 2024

임산부에게 보급된 전투물자

아가야. 

임신을 하게 되면 엄청난 선물들이 온단다. 주변 사람들로부터가 아니라, 산부인과와 나라가 주는 선물이지. 그런데, 그 선물들은 흡사 전투물자와 같은 느낌이야. 


"임신이요? 축하드려요! 얼마나 기쁘시겠어요? 여기 선물을 줄게요. 아이 잘 키워봐요~"


이런 식으로 말하며 선물을 주긴 했는데, 엄마가 느낀 건 이랬을 거야.


"김 일병, 이 험난한 임무에 지원해 주다니 영광일세. 자! 이 소총과 수류탄, 그리고 저기 보이는 산더미 같은 물자가 다 자네 것 일세. 이제 당장 적진으로 뛰어가게!"


[에피소드 1 : 산부인과에서의 물자보급]


엄마가 산부인과에서 첫 임신확인을 한 그날, 아빠 품에 안겨서 펑펑 울었지. 그리고 울음을 그친 후 힘겹게 로비로 향했어.


"김진영 산모님, 이쪽에서 수납 도와드리겠습니다."


산부인과 직원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를 보며 손짓하며 말했어. 아빠는 마치 만삭인 엄마를 데리고 가는 것 마냥 한 손으로는 엄마의 손,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엄마의 허리를 둘러 안은채 수납창구로 갔어.

"산모님, 임신 축하드립니다. 오늘 의사 선생님께서 고농도 엽산과 입덧약을 처방해 주셨으니 꾸준히 드셔야 하고요. 나중에 산모님 상태 보시고 필요하면 비타민D도 함께 구매해서 드시는 게 좋아요."


엄마의 호칭은 환자분이 아니라 산모님으로 바뀌었어. 간호사는 간단한 설명을 끝낸 후 엄마가 무장해야 할 전투물자를 쏟아내기 시작했어.


이건 오늘 보신 아기 초음파 사진 세 장이에요. 그리고 이건 산모수첩인데 태아랑 산모 건강을 기록할 수도 있고요. 임신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 그리고 주의사항도 다 적혀있습니다. 아까 드린 초음파 사진을 이곳 빈칸에 부착해 주시면 되고요... 그리고... 이건 산모수첩에 붙일 스티커고..."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었지.


"그리고 앱스토어에서 마미톡 어플을 다운로드하셔서 로그인하시면 산부인과에서 검사받은 기록과 아기 초음파 영상들을 보실 수 있으세요. 거기에 커뮤니티 게시판도 있는데, 그곳에서 다른 산모님들과 소통할 수 있고요. 여러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들 강의도 있으니 한 번 들어보시면 좋으세요."

“아... 네"

엄마가 나지막한 소리로 힘없이 대답했어.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생각해보지도 못한 전혀 다른 세상의 물건들이었지. 이름 자체도 익숙하지도 않았고,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엄마는 이미 넋이 나간 표정이었어. 아마 '이걸 언제 다 공부하나' 싶었을 거야. 남자들도 훈련소에 입대한 후 수많은 보급품들을 받게 되는데, 그것들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었지. 비슷했어.


"아 그리고 이거 중요한 건데요, 임신확인서를 보건소 가지고 가시면 보건소에서 임산부 배지를 주실 거예요. 그거 가방 같은 곳에 달고 다니시면 되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와 아빠는 수납을 마치고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왔어. 엄마는 지친 심심으로 입덧이 더욱 심해져서 계속 헛구역질을 했어. 무언가라도 먹여야 했지. 둘은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소고기 집으로 갔고, 사람들과 적당하게 거리를 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어. 그리고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봤어. 엄마의 눈빛은 '나 너무 힘들어요.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곧 한숨을 쉬며 얘기했지.


"아니, 나이 많으면 임신 어렵다며..."


[에피소드 2 : 보건소에서의 물자보급]

엄마와 아빠는 며칠 후 지역 보건소의 모자건강센터를 찾아갔어. 임산부 배지를 준다고 해서 갔었지. 저출산이 확실히 실감 났어. 모자건강센터는 너무 한산했었는데, 처음엔 아예 문이 닫혀있는 줄만 알았어. 직원도 보이지 않았거든. 그런데 곧 보건소 직원이 저 멀리서 오더라고.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엄마는 쭈뼛거리며 대답했어.

“아... 저... 임신을 해서, 확인증을 들고 왔는데요. 그... 분홍색 배지받으려고"

보건소 직원은 갑자기 활짝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영업용 웃음'이지 않을까 생각되긴 하는데, 뭐 영업용이면 어때? 반갑게 웃어주니 엄마도 편안해하는 것 같더라.

 
“어머! 아기 가지셨어요? 우선 너무 축하드리고요. 저희 보건소에서는 산전검사를 진행하실 수 있고요. 그리고 2차 기형아 검사(쿼드검사)도 여기서 하실 수 있으세요. 필요하시면 이 쪽에 오셔서 검사하셔도 되는데, 오시는 택시비는 앞으로 10회 정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으니, 그 설명서도 여기 산모님께 드릴게요"


직원은 보건소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또 다른 전투물자들을 지급했어.


"그리고 이건 산모님께서 꼭 필요하신, 임산부 핑크 배지입니다." 대중교통 타실 때 유용하실 거예요. 그리고 이건 우리 산모님 손 트지 말라고 핸드크림이고, 태아의 건강을 위한 엽산도 같이 드릴게요. 철분제 처방받으셨어요? 나중에 철분 많이 드셔야 해서 저희가 철분제를, 이 비타민과 함께 드릴게요. "


"와, 이렇게나 많이... 감사합니다. 이거 어떻게 들고 가지?"


엄마는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짓고, 핑크 배지를 가방에 야무지게 맸어. 그리곤 두 손 한가득 선물을 들고 아빠와 집으로 향했지. 


이 것뿐일까? 지자체에서 주는 금전적 지원도 있었고 보험사에서는 네가 태어나면 입을 옷도 선물해 줬어. 아이가 귀하긴 한가 봐. 


아직 엄마는 자신이 '엄마'가 될 것이라는 것에 적응하지도 못했는데 막상 이렇게 선물 폭탄을 받고 나니 얼떨떨한 기분이었나 봐. 집에 와서는 선물들을 테이블 위에 쌓아놓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어. 먹어야 할 약도,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았어. 새삼 출산을 한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지.



"하... 준 약만 다 먹어도 한 끼는 덜 먹겠네요. 날 잡고 공부해야겠어요.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엄마는 체념한 듯 말하고 지쳤는지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갔어. 아빠는 그런 엄마를 따라가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당신이 최대한 덜 힘들도록 열심히 도와줄게요. 같이 잘해봐요."라고 얘기했지. 엄마의 표정은 그제야 환해졌어. 그냥 말뿐이었어도, 큰 안심이 되었나 봐.


그렇게 전투 물자를 보급받은 엄마와 아빠는, 너의 출산까지 대장정의 준비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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