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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Mar 23. 2024

아내의 의심, 심장소리, 그리고 눈물

환자분, 괜찮으세요?

아가야,

이 글을 보는 너의 '지금'이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결혼 초기 엄마와 아빠의 생활은 '평범함' 그 자체였어. 남들과 똑같이 출퇴근했고 남들처럼 '꽁냥'거렸어. 맞벌이 부부다 보니 저녁이나 주말에만 서로의 웃음을 공유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큰 굴곡 없는 평화로운 일상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단다.


그런 행복에 빠져있던 아빠도 최근 엄마의 무기력함과 피곤함이 점차 신경 쓰였어. 그렇지만, 여전히 엄마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 생각은 하지 못했지. 아니, 하지 않았지. 감기 기운이 있는 거겠거니 하고 대충 넘겼던 것 같아. 조금 더 예민하게 대처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아. 어느 날, 아빠가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때 안방에서 믿을 수 없는 들려왔어. 


"우웩! 콜록콜록..."


입덧. 아빠는 그걸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았어. 여배우들이 우아하게 입을 가린 채 작은 소리로 '우웁' 하며 소리 내는 모습 말이지. 그런데, 아빠가 그날 들은 건 정말 당장이라도 모든 걸 게워냈을 법한 큰 소리였단다.  엄마의 위장이 얼마나 조여들고 있는지 듣기만 해도 잘 느껴졌어. 아빠는 허겁지겁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어. 안방까지 세 걸음이면 도착하지만, 그 짧은 와중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


'혹시 무슨 병에 걸린 건 아닌가? 이 근처의 병원은 어디지? 구역질을 하는 것 보면 위장에 문제가 있는 건가? 내가 맹장염에 걸렸을 때도 비슷했는데 혹시? 아니야. 그러기엔 배가 아프다거나 체했다는 얘기도 없었는걸' 고민하는 아빠의 뇌리에 한 단어가 강하게 스쳐 지나갔지. 임신.


"당신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아... 놀랬죠? 미안해요. 당신 신문 읽는 걸 방해하려던 건 아닌데... 나 몸이 조금 이상하긴 해요. 뭐랄까. 이상하리만치 허기가 져요. 어제는 자려고 누웠는데 배가 너무 고픈 거예요, 밥 먹을 시간도 아니었는데. 또 그 배고픔이 평소에 밥을 안 먹었을 때 느꼈던 배고픔과는 전혀 달라요. 속이 울렁거린다고 할까?


“그러게요. 요새 당신 몸이 조금 다르다는 건 느끼긴 했는데... 혹시 당신, 아이가 생긴 걸까요?"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요새 어느 정도로 이상하냐면,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에도 입이 가질 않아요. 당신이랑 매일 저녁 한두 잔씩 마셨던 커피도 요새 거의 안 먹고 있어요. 커피 머신 위에 먼지가 쌓였어요."


엄마와 아빠는 당장 임신할 계획은 없었어. 연애기간이 1년도 안 될 정도로 짧았기도 했고, 아기가 생기면 남 부럽지 않게 키울 돈도, 자신도 없었지. '신혼생활'을 더 보내고 싶었던 엄마는 엄마는 아빠의 무관심 속에 '혹여 임신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홀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어. 


아빠는 그날 엄마가 잠들고 엄마가 말했던 증상들을 인터넷에 검색해 봤어. 그 증상들은 너무나 명확하게도 '임신'을 가리키고 있었어.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든 아빠는 다음날 출근해서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단다.


'자기, 출근 잘했어요? 오늘은 몸이 어떤가요? 나 어젯밤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당신 '임테기(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혹시나 해서 오늘 오전에 당신 출근하고 임테기 하나 사놓은 걸로 써봤어요. 그런데 바보같이 내가 잘 못 사용하다 보니 결과가 안 나왔어요. 혹시 몰라서 예비로 사 둔 게 있는데 오후에 다시 해볼까 해요.'


'응? 벌써 임테기를 샀다고? 언제? 어디서요?'


'고민하다가 어제 집에 오면서 다이소에 들러서 임테기를 샀었어요.'


'임테기를 다이소에서요? 약국에서 사야 하는 거 아닌가?' 다이소 임테기가 효과가 있을까요?'


'약국에 임테기를 팔아요? 나도 잘 몰라서... 일단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사긴 했는데... 처음이라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간단한 임테기 사용을 가지고도 엄마와 아빠는 또 우왕좌왕했어. 그날 오후 엄마는 재차 임테기를 사용해 보았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희미해서 확신이 서지 않았어. 이튿날 오전에 또 한 번 시도했는데 비슷했지. 확실한 '물증'을 잡으러 엄마와 아빠는 다음날 산부인과에 예약을 했단다. 


이튿날, 약속시간이 되고 먼저 와서 기다리던 아빠의 눈에 엄마가 보였어. 횡단보도 반대편에 있는 엄마를 향해 갈수록 엄마의 힘들고 초췌한 얼굴은 더욱 뚜렷해졌어. 매번 아빠를 보면 멀리서 아이처럼 쪼르르 뛰어와서 안기던 엄마는 없었지. 


아빠는 간단하게 엄마의 몸 상태를 묻고 함께 손을 잡은 채 병원 안으로 들어갔어. 들어가자마자 'ㄷ'자 형태의 의자에 조금씩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커플들이 보였고, 혼자 온 여성들도 있었어. 얼굴이 굳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어. 특히 기억나는 건 두 번째 임신을 한 커플이었는데, 초음파 사진을 확인하는 모습부터 아주 능숙해 보였어. 작디작은 병원의 가습기는 쉴 새 없이 하얀 수증기를 허공에 뿜어댔고, 간호사와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어. 그 속에서 엄마는 입덧을 참아내느라 고개를 떨구고 있었지. 


"축하합니다. 임신이네요. 수치가 이 정도면 초음파로도 보이겠는데요?" 여성분만 잠깐 초음파실로 들어오실게요. 보호자는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엄마의 혈액검사 차트 결과를 보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 엄마와 의사 선생님은 문 대신 커튼으로만 가려진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고, 약 5분 뒤 아빠를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어. 의사와 간호사 사이에 불안하게 누워있는 엄마, 그리고 그 옆에는 복잡하게 생긴 기계와 모니터가 있었어. 


"자, 여기 화면에 아기집이 잘 보이죠? 그리고 여기 보시면 이렇게 쪼그만한게 우리 아기예요. 지금 1센티미터도 안 될 정도로 작지만 건강하게 아주 잘 있는 것 같아요. 아기 소리도 한 번 들어볼까요?"


의사 선생님이 간단히 기계를 조작하더니 갑자기 방을 가득 메울 정도의 소리가 들렸어. 바로 너의 심장소리였어.


'쿠쿵. 쿵쿵. 쿵쿵. 쿵쿵. 쿵쿵'


너무나 힘 있고 빠르게 뛰는 너의 심장 소리에 아빠는 멍했어. 경이로움 그 자체였지. 그런 역동적인 움직임이 엄마의 작은 뱃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고 아름다웠어.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알지 못할 거야. 너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의사 선생님이 아빠에게 뭐라고 얘길 하긴 했는데, 잘 들리지도 않았고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도 안 나. 아빠는 엄마 손을 잡고 엄마를 바라보았는데, 입을 굳게 다문 채 눈시울은 붉어져있었어.


엄마는 초음파실에서 나와서 조심스럽게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봤어.


"저... 선생님, 제가 지난달 초에 맥주를 한 잔 정도 마셨고요. 그리고 지난주에는 감기약을 먹긴 했는데, 혹시 아기에게 문제가 있으면 어떡하죠?"


"아직은 5주 차 또는 6주 차라서 괜찮아요. 문제가 있으면 아기가 뱃속에 들어서지도 않아요. 지금부터 조심하시면 되고요. 앞으로 음식 같은 거 조심해서 드셔야 해요. 자세한 건 저희 병원에서 안내서를 드릴 텐데 천천히 읽어보시면 됩니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힘겹게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고, 손은 긴장으로 인한 땀에 흠뻑 젖어있었어. 


진료실을 나온 엄마는,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어. 아빠한테 안겨서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서럽게 울었어.  TV나 영화에서 보던 행복한 장면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생각지 못한 엄마의 행동에 아빠도 일순간 당황했어. 그리고는 말없이 엄마를 안아줬지.



우리가 진료실에서 나오는 걸 보고 다가오던 간호사도 엄마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것 같았어. 그리고 다가오는 걸 멈춘 채 말했지.


 "저... 환자분 괜찮으세요? 어... 일단 진료실 옆방으로 가시고요. 조금 진정되시면 나오실게요."


엄마와 아빠는 진료실 옆 빈 방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엄마는 아빠품에서 한참을 울었어. 


얼마나 두려울까? 앞으로 수개월 동안 한 소중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임신으로 그 무게를 져야 하는 엄마는 앞으로의 여정이 너무 무섭고 두려웠을 거야. 임신과 출산은 많은 부분 여성이 혼자서 감당을 해야 하니까. 아빠라는 존재는 그저 옆에서 거들뿐이겠지. 네가 건강하게 세상 빛을 보기까지 엄마는 홀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해.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을 짊어지고 말이야. 


그렇게 병원 빈 방에서 한참을 운 엄마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눈을 감은 채 말했어.


'이제... 가요.'





주석 

1) 입덧이란 임신 중에 느끼는 구역 및 구토 증상으로, 주로 임신 초기에 발생하는 소화기 계통의 증세를 말한다. 이른 아침 공복 때의 구역질이나 가벼운 구토 외에 식욕부진과 음식물에 대한 기호의 변화 등이 나타난다. 전체 임신부의 70~85%에서 나타나며, 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생리적인 현상이다. 보통 임신 9주 내에 시작되고 임신 11~13주에 가장 심하며 대부분 14~16주면 사라지지만 20~22주 이후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출처 : 서울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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