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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Mar 16. 2024

문제를 느낀 아내, 가볍게 넘긴 남편

회사에서나 잘난 사람


"여보, 나... 아무래도 몸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우리 부부의 신혼의 시작을 알리는 1월의 어느 평온한 주말, 엄마가 다소 께름칙하다는 표정으로 아빠한테 얘기했어. 엄마의 얼굴은 조금 찡그린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도 않아서 아빠는 크게 아픈 건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단다. 그래도 엄마는 잘 아프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걱정이 되긴 했지. 아빠는 엄마 곁으로 다가가며 물어봤어.


"응? 어떻게 이상해요? 어디 아파요?"


"요새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피곤해요. 긴 설 연휴를 앞두고 부쩍 회사일도 많아지긴 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햇볕도 안 드는 도서관 지하 서고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20분씩 교대로 근무하는데, 쉬는 타임에는 아무것도 못해요."


"당신, 그 정도로 육체노동이 심한 편이에요? 도서관 사서는 가만히 앉아서 근무하는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지만은 않나 보네요. 참! 그러고 보니 요즘 직장에서 무거운 책을 옮기는 프로젝트 같은 거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몸을 많이 써서 그런가..."


"그건 업체 분이 옮겨주시긴 해서 아닌 것 같아요. 이제 우리도 돈을 모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쉴 때 재테크 도서를 보려고 빌려둔 거 있는데, 한 페이지도 못 보고 거의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쓰러져 있어요.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걱정해 주는데 미안해 죽겠어요. 또 업무 시간에 엎드려 있는 게 너무 민폐기도 하고....."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얘기했어. 


"아이고, 피곤하면 잠시 엎드려있을 수도 있죠. 당신 근무지가 지하라서 그런가. 왜, 햇볕을 못 보면 비타민D가 부족하고, 쉽게 피로해진다고 하잖아요. 나도 근무지가 지하라서 자기랑 비슷하게 피로를 많이 느끼거든요. 아니면, 운동을 조금 해보는 건 어떨까요? 필라테스도 좋고 요가도 좋으니까... 물론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요."


아빠는 낮은 강도로 매일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왔었지만,  엄마의 성향은 아빠와는 다르게 정적인 스타일이라 특별히 운동을 즐기지도 않았어. 그렇기에 아빠는 엄마의 무기력함이 그저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아무튼 엄마는 아빠의 대답이 시원찮게 느껴졌나 봐. 여전히 불편함은 가시지 않은 기색이었지.


"운동이요? 흠... 맞아요. 결혼식 전후로 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돌린다고 너무 먹기만 한 것 같기도 해요. 운동을 꾸준히 하긴 해야 하는데... 한 번 생각해 볼게요."


말을 하려다 잠시 생각에 빠진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 쉰 후 조금 고민해 본다고 얘기하고 다시 쓰러지듯 침대 위 이불속으로 들어갔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현재의 몸 상태가 버거워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였어.



엄마는 매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서 씻고 출근 준비를 했어. 우리가 결혼을 하겠다고 살림을 합쳤을 당시에 엄마의 기상시간은 더욱 빨랐어. 아침 7시 정각에도 곧 잘 일어났었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7시 10분, 15분, 25분 이렇게 기상시간을 늦춰가더니, 최근에는 기상 시간의 마지노선인 7시 30분이 되어서도 못 일어났지. 이불 밖을 나서는 것조차도 힘겨워 보였어.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는 엄마의 그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결혼 3개월 차니 긴장이 풀려서 '본모습'을 보여주는 건가?'라며 속으로 생각하고 웃어넘겼지.


2월 추운 겨울의 어느 날이었어. 회사 근처 고깃집에서 아빠는 직장 사람들과 회식을 하고 있었지. 불판 위의 삼겹살은 맛있는 냄새를 풍겨가며 익어갔고, 사람들 잔에 있는 술은 끊임없이 찰랑댔어. 두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은 반쯤 취했어. 그러다 보니 다들 짓궂게 굴기도, 또 서로가 서로에게 덕담을 해주었어. 아빠는 직장에서 업무량이 다른 동료들보다 많았기에 직장 사람들이 아빠에게 고맙다는 말과, 그리고 아빠의 변변치 못한 업무능력을 칭찬하기도 했어. "어떻게 그렇게 보고서를 빨리 써요?", "업무 눈치도 빠르고, 정무적인 감각도 있어", "진짜 우리 부서 떠나지 말고 오래 있어요." 술자리의 분위기에 취해 으레 나오는 얘기였겠지만, 칭찬이니 기분은 좋았지.


"저도 제가 잘 난 거 압니다. 그런데 뭐 어쩌겠습니까? 잘 나게 태어난걸. 하하하. 자 건배하시죠. 짠~!"


술자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잘난 체를 거하게 하고 사람들과 웃으며 잔을 기울였지.


"자자.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뵐게요~!"


한 껏 술에 취한 채, 그리고 사람들의 칭찬에 들뜬 채 헤어졌어. 한 겨울의 '불금' 회식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지. 찬 바람을 맞으면서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그제야 집에 있는 엄마가 생각이 나더라. 엄마는 아빠가 없을 때 종종 혼자서 끙끙대며 집안일을 했었는데, 그날도 엄마가 혼자서 갖은 고생을 할 생각이 드니 발걸음이 빨라졌어. 허겁지겁 집에 들어와 현관에 신발을 대충 훌러덩 벗어던진 채 거실로 들어갔는데 집이 너무 조용했어. 그리고 안방을 보는 순간 아빠의 가슴은 철렁했지. 엄마가 침대 헤드쿠션에 앉아서 잠들어 있는 거야. 얼굴의 화장은 지우지 않은 채 그대로였고, 옷도 밖에서 입던 옷이었어.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잠든 것 같았어. 아빠는 잠에 든 엄마를 조심스럽게 안고 똑바로 눕혔어. 


"아, 당신 언제 왔어요? 나 잠들었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엄마는 아빠의 손길을 느끼더니 살짝 잠에서 깬 듯했지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비몽사몽인 상태로 아빠에게 중얼중얼 인사를 하더니 곧바로 다시 스르륵 잠에 들었어. 아빠는 왠지 모르게 머리가 멍해졌고 침대 옆에 서서 엄마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지. 


'무엇을 놓치고 있던 것일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 직장 동료들이 칭찬했던 아빠의 능력이 왜 집에서는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발 빠르고 일도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이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엄마가 화장실을 자주 갈 때 단순히 '차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보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혹시 '건강에 변화가 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고, 매일 집에서만 두 잔 가까이 마시던 커피를 입에도 안 댈 때는 '혹시 몸에 변화가 온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했어야 했어.

아빠는 그저 '회사에서나 잘난 사람'이었어. 집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날, 아빠는 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했어. 불안함,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아빠는 책장 앞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를 반복했어. 아빠는 엄마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예민해지기로 마음먹고 '집에서도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매일 밤 엄마가 잠에 든 후 그날 엄마에게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시작했단다.




주석 

1) 임신 초기 증상 : 피로나, 졸림, 잦은 소변, 메스꺼움, 변비, 소화불량, 감정기복과 두통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른 증상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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