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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Mar 09. 2024

프롤로그 : 만남

눈치 없는 남자의 소개팅 참사

저는 아들보다는 딸이 좋아요.

처음 보는 남자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여자는 일순간 말을 잃었다.



아가야,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지 않니?

여의도역 근처의 한 지하 레스토랑 앞에서 오트밀색 정장을 입은 한 남자, 그리고 검은색 꽃무늬 블라우스에 바바리를 걸친 한 여자가 만났어. 가을의 색을 입은 남녀는 서로 두리번거리며 그날의 소개팅 만남의 대상을 찾고 있었어. 둘은 서로 사진을 주고받은 적이 없기에 상대의 얼굴을 몰랐어. 다행히 레스토랑 앞에 젊은 남녀라고는 둘 뿐이었지.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아, 이 사람이 소개팅 대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첫 만남에서의 예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남자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어. 그 웃음은, 지금 생각해도 아빠의 심장이 철렁할 만큼 아름다웠단다. 아빠와 엄마는 그렇게 처음 만났어.


당시 소개팅의 장면을 AI 툴(MS Copilot)을 활용하여 그려보았다. 기술의 발전이 놀랍긴 하다.


식당은 제법 큰 레스토랑이었고, 밝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였어. 홀 중앙에는 동그란 전등이 비 오듯 쏟아지는 형상을 한 아름다운 조명이 멋들어지게 장식되어 있었어. 전체적으로 모던한 느낌의 식당이었지. 식당 안에는 퇴근 후 짬을 내어 데이트하는 젊은 청춘들도 있었지만, 아빠와 엄마처럼 소개팅을 계기로 처음 만난 사람들도 많이 보였단다. 우린 종업원에게 감자뇨끼와 오일파스타를 주문하고 서로에 대한 탐색전을 이어갔어.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일을 하신다고요?" 


"네. 식당 근처에서 멀지 않은 도서관이에요. 저도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일이 꽤나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오늘 오시는 데 어렵지 않으셨어요?"


"아니에요. 좋은 분 만나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을 내야죠, 진영씨야말로 바쁘지 않으세요?"


"아유, 제가 무슨 중요한 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괜찮아요."


탐색전이 끝나고, 아빠는 대화 소재가 떨어질까 봐 무진장 노력했단다. 그런 노력을 당시에 엄마는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지.


"진영 씨, 저기 저 사람들 보여요? 저 사람들 딱 봐도 소개팅하는 남녀 같지 않아요?"


"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데이트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잘 봐요, 그러기엔 남자의 자세가 너무 불편하게 있잖아요. 보통 남자들은 여자친구와 식사를 할 때 의자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있지 저렇게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진 않거든요"


사실 누구나 다 알만한 얘기였지만 엄마는 세상 놀라운 것을 발견한 것 마냥 눈이 휘둥그레지며 '리액션'을 해줬어. 그러다 하마터면 손으로 엄마 앞에 놓여있던 포크를 쳐서 떨어뜨릴 뻔했어.


"어머! 깜짝이야. 죄송해요. 그런데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여자분 웃음도 너무 부자연스러운걸요?"


지금 돌이켜보면, 아빠가 엄마에게 푹 빠졌던 건 엄마의 환한 미소와 그리고 적극적인 맞장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아빠는 혼자 신나서 남자가 여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군대 시절 얘기도 하고, 궁상맞게 쥐꼬리만 한 월급 얘기로 한탄하기까지 했어. 그런 아빠의 말을 엄마는 귀담아듣고 공감해 줬어. 


문제는 이거야. 아빠는 아빠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여주는 엄마를 너무나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그렇지만 너무 방심했던 걸까? 아빠는 결혼을 재촉하는 집안과 사회의 압박을 얘기하다가 소개팅 첫 만남에서 절대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말을 해버렸어.


"아기를 생각하면 또 결혼을 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돈 문제를 생각 안 할 수도 없죠. 요즘 사회에 정말 힘든 고민이에요. 아, 그건 그렇고 저는 아들보다는 딸이 더 좋더라고요."


"아...?"


아찔하지? 엄마는 어찌 대답할 바를 모르는 듯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어. 마치 그 어색함을 모면하려는 듯이 말이야. 결혼해서 딸아이를 낳아달라는 말로 들렸을까? 눈치 없는 아빠는 친구나 동료의 딸의 예시를 들어가며 그 아기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어. 딸이면 매일 가슴에 품고 살 거라고 하면서 '딸 예찬론'을 펴댔지.


"하하, 정말 딸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저는 여자로 살아온 게 쉽지는 않았거든요. 저희 집이 조금, 아니 많이 보수적이라 너무나 힘들었어요. 나이가 30대 중반을 향해가는데 지금도 제가 자취하겠다면 저희 부모님은 아마 쓰러지실 거예요. 나중에 태어날 여자 아이들도 저처럼, 아니 저보다 더 힘든 세상을 살아갈까 봐 마음이 아파요. 아무래도 안전문제도 있고, 또 한국에서는 육아에 드는 비용이나 교육비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엄마는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고, 아빠는 또 변화되는 화제에 맞게 열변을 토했단다.


"식사 다하셨으면, 차나 맥주라도 한 잔 하실까요?"


아빠가 엄마에게 조심스레 청했고 엄마는 따스하게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는 본인이 '2차' 장소로 안내하겠다며 앞장섰지.


"차보다는 맥주 한 잔해요. 여기 근처에 제가 알고 있는 분위기 좋은 맥주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는 게 어때요? 제가 살게요."


아빠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마시지도 않지만 엄마와 조금 더 있고 싶었기에 흔쾌히 맥주집으로 향했어. 아빠는 모르겠어. 엄마가 그날 소개팅 첫 만남에 "나는 딸이 좋다"라고 하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이야. 그렇게 2차로 간 맥주집에서 엄마와 아빠는 또 다른 이야기 꽃을 피웠지. 여의도의 어느 한 가을밤은 그렇게 흘러갔어. 그리고 아빠와 엄마는 이듬해 다시 찾아온 가을, 결혼식을 올렸단다. '속전속결'로 말이야.

행복한 신혼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했어. 엄마의 그 따스한 웃음을 매일 볼 수 있었고, 우리만의 '둥지'에서 사랑을 속삭였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 엄마와 아빠의 일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일이 생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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