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청약은 아기가 있어도 안되는데 도대체 누가 '특공'이 깡패라고 한 거예요?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청약 결과를 본 엄마가 씩씩댔어.
"그러게나 말이에요. 이게 도대체 몇 번째 낙방인지 모르겠네요."
엄마와 아빠는 비록 전세사기로 고통받고 있었지만, 그래도 네가 뛰어놀 집을 사주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이곳저곳 청약을 넣기도 하고, 부동산을 통해 오래된 아파트를 물건을 알아보기도 했지. 아빠는 아빠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단칸방'에서도 아기를 키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느긋하게 여유 부렸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어. 아기들에게 모든 걸 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모든 엄마들의 하나 된 마음 아닐까?
문제는 집 값이 너무 비싸다는 거였어. 네가 나와도 뛰어다니기는커녕 당장 기어 다니지도 못하기에 우리에겐 1년 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 1년의 시간은 우리를 영원히 기다려주지는 않으니까. 그렇기에 미리 서울 내 지역들을 보며 구축 아파트를 구경하러 다녔지만, 30년 넘은 아파트의 가격이 6억, 7억을 넘는 것을 보면서 구축 아파트를 구매하겠다는 생각은 점점 움츠러들었어.
새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아파트 완공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우리의 전세사기 문제도 조금은 해결이 되었을 테고 중도금은 집단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당장 구축을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었어. 문제는 청약 당첨이 너무나도 어려웠던 거지. 우리는 청약을 넣는 족족 떨어졌고 아예 예비순번에 끼지도 못했지. 서울 외곽도 떨어지는 걸 보고 이젠 신축 분양까지 포기해야 하는 건가 싶었어.
아파트 청약은 특별공급(특공)과 일반공급으로 나뉘었는데 특공에는 신혼부부, 생애최초, 한부모 등 다양한 특공이 있는데 특공별로 지정된 공급 물량이 있고 해당자끼리 경쟁하기에 일반공급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지. 신혼부부 특공에도 자녀와 소득에 따라서 우선공급 여부가 결정되었는데, 우리는 아기까지 가졌으니 청약이 쉬울 거라고 믿었지.
아주 큰 착각이었어. 아기를 가진 집이 많았나 봐.
"요즘에 아기 안 낳는다더니, 다들 열심히 낳고 있나 봐요. 하나는 안 되고 둘은 되어야 할 텐데, 집 가지려고 애를 둘이나 낳아야 하나 참..."
아빠도 계속된 청약 탈락에 지쳐가다 보니 이렇게 푸념만 늘어갔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님, 성남 AA 아파트에 예비당첨되었습니다. (청약home>당첨조회)'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길에 아파트 청약 예비당첨 소식을 받았어. 이런 메시지를 처음 받았기에 너무나 기뻤어.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예비순번이 무려 '460번'. 물론 그때는 그 예비순번대가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했어. 아빠는 엄마한테 이 소식을 알려주었고, 일단 예비당첨자 추첨에도 참여하겠다고 했지.
우리는 예비 순번을 처음 받아 보았기에 모든 것이 새로웠어. 주민등록초본, 가족관계증명서, 무주택 확인 등 제출해야 할 서류만 10여 종이었어. 휴직 중인 엄마는 회사까지 출근해서 서류들을 발급받았지. 그리고 예비당첨된 아파트 견본주택이 성남시에 있어서 이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서 1시간 30분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했어. 무더운 여름날 서류제출로 한 바탕 실랑이를 벌였더니 기진맥진하더라.
"당신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어지럽거나 그러진 않고?"
아빠는 차에 타서 엄마 상태를 체크했어.
"네. 단지 조금 허기가 많이 지고 체력적으로 지치네요. 우리 여기 당첨되어도 직장까지 왔다 갔다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매일 편도 1시간이 되는 거리를 왕복해야 하다니..."
"음, 지금과 같은 청약대란에 왕복 두 시간 걸리는 곳이라도 감사하면서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하"
"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그리고 다가온 대망의 추첨날. 아빠와 엄마는 또 한 번 1시간 반을 달려 예비당첨자 추첨 행사에 참여했어. 견본주택이 작아서 한 명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해서 아빠만 올라갔고 엄마는 밖에서 기다렸어. 추첨 행사를 위한 사회자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어. 흡사 회사 OT에서 경품추첨 행사 같은 분위기였지. 잔여 물량이 70개라고 발표되고, 곧바로 추첨이 시작되었지. 그리고 아빠의 얼굴은 굳어졌어.
처음 해보는 예비당첨자 추첨이라 아빠와 엄마는 추첨 방식을 몰라서 그저 무작위 추첨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사회자가 1번부터 부르기 시작하는 거야. 예비당첨자 1번, 2번, 3번... 사람들이 하나둘씩 당첨될 때마다 사람은 박수를 쳤어. 아빠는 너무 속상했고, 또 허탈했어.
'무작위 추첨이 아니라 1번부터 부른다고? 잔여 물량이 고작 70개인데, 460번까지 기회가 올턱이 있나'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엄마는 박수소리만 듣고 카카오톡 메시지로 무슨 일인지 물었어. 아빠는 그저 숙이고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답장을 할 수가 없었어. 번호가 호명된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동호수 추점 상자에 손을 넣고 쪽지를 뽑아 들었어. 부럽고, 또 부러웠지.
엄마한테 미안했어. 내가 조금 더 능력이 있었다면 엄마를 이렇게, 이런 식으로 고생시키진 않았을 텐데. 비참하게 앞번호 사람들 들러리만 선다는 생각에 참지 못해 도중에 일어서서 나갔어. 계단을 내려가면서 엄마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어.
"여보 덥지?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요."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고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