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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방 나그네 Oct 05. 2024

전세사기 가정에 볕 들 날은 올까(2)

축복이는 축복이니까!


아가야, 성남시 청약에 처절하게 실패한 그 이후로도 엄마와 아빠는 아파트 청약에 줄줄이 낙방했어. 매번 청약 캘린더를 확인하면서 관심 있는 '매물'들에게 열심히 '구애'를 날렸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어느 날 경기도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 청약을 넣었고, 당첨자 발표일에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어. 


"자기, 나 BB 아파트 청약 예비당첨이 되었어요. 예비번호가 268번이래요."


"이번엔 200번대? 그래도 지난번 예비당첨 400번대보다는 낫네요! 너무 기대는 하지 맙시다. 실망도 클 테니까요."


"그래야죠... 100번대 이하인 분들이 부럽네요. 그 사람들은 사실상 당첨자들일 텐데.... 우린 언제 축복이와 함께 살 '우리 집'을 구할까요?"


엄마는 희망 따윈 보이지 않는 예비청약 추첨을 위해 열심히 서류 준비를 했어. 만삭의 몸에도 불구하고 너를 위한 집을 구하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녔지. 아빠는 지원하는 것까진 좋은데 사소한 서류를 떼더라도 제발 택시를 타고 다니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기어코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어. 그거 아껴서 너 좋은 거 사줘야 한다나.


예비당첨자 서류를 내러 가는 날에 엄마와 아빠는 기대를 완전히 접었어. 서류 접수를 받는 견본주택에는 우리와 같은 예비당첨자들로 '득실득실' 했었거든. 200번대가 '명함'을 내밀만한 그림은 아니었어. '이 번 집도 이렇게 날아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아빠는 엄마한테 푸념하며 얘기했어.


"여보, 우리 그냥 장인장모님 집에 들어가는 게 어때요? 그게 자기한테도 좋고, 우리 아기한테도 좋을 것 같은데요. 장모님이 밥을 해주시면 자기도 조금 편할 거잖아요. 가끔 아기 봐주시면 부족한 잠도 자구요."


"하하 자기 우리 집에 은근히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우리 엄마 은근히 깐깐하고, 잔소리 많아요. 난 거기 들어갔다간 스트레스받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렇지만 장인장모님이라고 쉬우시겠어요? 아무래도 지금은 집을 구하기가 또 너무 어렵다 보니, 차라리 처갓집에 가서 살면서 우리 같이 돈을 조금 모아두는 게 어떨까 해서요. '전세사기' 소나기도 좀 지나가야 하고요"


"그러게요. 우리 천천히 생각해 봐요. 혹시 또 모르잖아요. 계속 시도하고 또 집 찾다 보면 좋은 보금자리를 찾을 수도요?"


엄마는 희망찬 말을 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겼어. 대한민국에서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게 쉽지 않다고 익히 들었지만 집 문제부터 막힐 거라는 생각은 못 했을 거야. 집만 해결되어도 우리가 평소에 하는 고민의 70%는 줄어들 것 같은데 말이지.


하루는 엄마랑 너의 초점책을 사기 위해 운동도 할 겸 중고거래를 하러 근처 대형 아파트 단지에 들어갔어. 그 아파트는 소위 '브랜드 아파트'라고 불리는 곳이었고, 출입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벨을 눌러서 집주인의 확인을 받아야 했고 판매자의 아파트 동까지 찾아가는 데도 한참을 걸었어. 빌라에 사는 우리가 보기엔 정말 '대감집'이었어.


아빠의 눈엔 그 모든 것이 좋아 보였어. 그 단지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부모와 함께 걷는 어린이들, 부부끼리 만나 서로 인사하고, 또 상대방의 아기들에게 따뜻하게 인사해 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웠어. 그렇게 꿈같은 장면들을 보며 판매자의 집 현관에 도착했어.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하는 순간 집 문이 열렸고 얼떨결에 판매자의 집 안을 들여다보았어. 드넓은 집에 아이가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었고 엄마는 한쪽에는 다른 아기를 든 채 놀아주고 있었지. 


판매자 부부는 흠칫 놀라더니 곧 우릴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주었어. 그리고 물건 잘 쓰고 순산하라는 좋은 덕담도 주셨지.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착잡했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왔으면 엄마가 구태여 몇 만 원도 안 하는 물품을 중고거래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누구는 저렇게 좋은 집에서 육아를 하는데 아빠는 집하나 못 구해다 줘서 엄마를 고생시킨다는 생각. 이 모든 생각이 아빠의 마음을 후벼 팠어. 그런 마음이 보였는지 엄마가 아빠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얘기했어.


"어머 당신, 왜 갑자기 말이 없어졌어요? 저 집 보니까 생각이 많아졌어요?"


"나 정말 뼈가 갈릴 정도로 돈 벌 거야. 당신과 우리 아기, 꼭 저런 집에 살게 해 줄게. "


"에이, 괜찮아요. 우리도 천천히 돈 모으다 보면 좋은 집에서 살겠죠. 자기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우리 아기는 돈 잘 버는 아빠도 좋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줄 아빠가 더 필요할 거예요. 집은 부차적인 거예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아빠는 콧등이 시큰해졌어. 엄마가 저렇게 말했지만, 엄마도 얼마나 그 집이 부러웠을까, 그리고 얼마나 속상했을까. 


대망의 BB아파트 예비당첨자 추첨일이 다가왔어. 엄마의 몸은 이미 무거울 대로 무거워져 있어서 아빠는 추첨일 전날 엄마에게 몸도 안 좋고 앞 번호 사람들 들러리만 서주다 올 테니 가지 말자고 했어. 그런데도  엄마는 기어코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어. 스스로도 청약 추첨 절차를 경험도 해봐야 되고, 기왕 서류도 뽑았으니 아깝다고 얘기했지. 아빠는 그런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어. 


그날은 아빠가 업무 때문에 새벽 골프약속이 있는 날이었어. 잠든 엄마를 뒤로하고 골프가방을 챙겨서 나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해서 양해를 구한 뒤 다시 돌아왔지. 엄마는 택시를 타고 견본주택에 들어갔고, 아빠도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는데 주차 공간이 없어 견본주택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어. 엄마는 추첨장에서, 아빠는 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상황을 지켜봤어.


"잔여물량은 79개입니다."


사회자의 발표로 한 톨의 기대마저 사라져 버렸어. 오늘도 헛걸음했구나라는 생각이었지. 아빠는 엄마에게 당장 나와서 집으로 가자고 졸랐지만, 엄마는 기왕 온 거 끝까지 버티겠다고 했어. 


엄마의 집념일까? 아니면 네가 준 선물일까? 그 아파트는 청약 포기자가 많았어. 호명번호가 1번, 13번, 15번, 20번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갑자기 무언가 알 수 없는 희망이 보였어. 엄마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손길도 빨라졌어. 번호가 200번대로 넘어가면서 아빠는 다급해졌어.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기에 당첨되면 송금해야 할 계약금조차 알아보지 않고 왔었거든.


"여보, 잘하면 우리 될 것 같은데? 이 아파트 계약금이 얼마인지 확인했어요?"


"아뇨, 나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택시 타고 와서 확인을 못했어요. 자기야 나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 확인해 봤는데 거의 7천만 원인데요? 여보 지금 수중에 얼마 있어요?"


엄마는 동/호수를 추첨하느라 대답이 끊겼고, 아빠는 돈을 빌리기 위해 다급하게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어. '마이너스 통장'에서 상당 부분 돈을 인출하여 엄마에게 송금했어. 엄마는 생각지도 못한 아파트 당첨에 얼떨떨하며 계약금을 지불했고, 향후 계약 진행절차에 대해 설명을 들었어. 아빠는 뒤늦게 주차공간을 찾아 차를 세우고 견본주택에 올라가서 엄마를 보았어. 아빠를 본 엄마의 얼굴은 일순간 크게 일그러졌고 크게 나온 배를 움켜잡고 아빠에게 달려와 안겨 펑펑 울었어.


서러웠대. 너에게 남들과 같은 집도 해주고 싶었는데, 현실은 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그런 상황에 전세사기로 인해서 더 막막해진 느낌이었었대. 수억의 빚을 떠 앉고 시작하는 느낌이었으니 망연자실했을 거야. 비록 지금 분양받은 집은 서울과는 멀긴 하지만, 그래도 네 또래 친구들이 많은 집에서 너를 여유롭게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을 거야. 아빠는 그저 말없이 엄마를 끌어안고 토닥였어. 


엄마와 아빠는 다음날 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엄마 아빠의 청약 분투기(?)를 자랑스럽게 무용담 마냥 늘어놓았어. 두 어르신들은 우리에게 집 구하기 어려운 이때에 너무 고생했고 잘됐다고 해주셨어. 한 여름밤에 웃음꽃이 가득했던 그날, 우리 모두 네 생각을 했단다. 네가 아니었으면 꿈에도 못 꿀 집이었으니까. 


디저트까지 말끔하게 끝낸 후 쉬고 있던 엄마에게 외할머니가 다가왔어. 외할머니는 가득 부풀어 오른 엄마의 배를 쓰다듬고 웃으면서 말했어.  

“아이고~ 우리 축복이가 진짜 축복이네! 엄마아빠 집도 구해다 주고...”     


아가야, 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일을 겪었지만, 한 편으로 전세사기를 향한 엄마, 아빠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야. 어쩌면 네가 태어나고도 한 참 뒤에나 끝나지 않을까 싶어. 그렇지만, 너와 함께하는 이 즐거움, 어쩌면 그 힘든 일도 쉽게 이겨내지 않을까? 너의 외할머니의 말처럼, 축복이가 축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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