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수없이 거짓말을 해봤다.
사기 치지 않았지만 때때로 내 기분에 따라 이익에 따라 거짓말을 활용했다. 나만 이랬던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직감적으로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상대를 알아챌 수 있는 건 적어도 한 번은 나도 둘러댄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도 속아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단, 선의의 거짓말이거나 크게 해가 될 것 같지 않은 경우들에 한해서다.
나 자신도 부득이하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상황들과 흡사할 때 말이다. 이처럼 타인의 거짓말의 윤리성을 구분할 근거는 개인의 경험 유무다.
내가 해봤고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면 허용 가능한 변명으로 대체되는 게 거짓말이지만 심각한 이익의 저해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마땅히 지탄받아야 한다.
이익에는 반드시 금전적 요인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도 충분히 이익을 침범당하는 하나의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애국심, 팬심, 평정심, 기대감, 희망 등 고작 감정이 상했을 뿐이라며 쿨하게 넘길 수 없는 거짓말도 수두룩하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거짓말의 속성을 꼽자면 거짓말은 개인으로부터만 양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념이나 단체, 혹은 계획과 다르게 복잡하게 꼬여가는 상황들이 거짓말처럼 거짓말이 되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거짓말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동체나 대중이 분출하는 공분이다. 공분은 효율적으로 거짓말을 응징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시위나 집회가 그 형태일 수 있다. 쉽게 말해, 거짓말은 상대의 공감을 불러올 수 없으면 저격 대상인 셈이다.
조지오웰 -출처 두산백과-
거짓말에 속아 인생 전체를 몰수당한 인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윈스턴이 생각난다.
윈스턴이 빅브라더가 지켜보는 세상의 진실을 깨닫게 된 때는 사랑에 빠져 체제에 대한 불복과 의심이 커진 뒤에 가능했다.
통제와 감시를 당연시했던 그가 지배층의 심장부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온갖 거짓말을 발견할 수 있다.
1984를 통해 위에서 열거한 개인, 단체, 이념이 속삭이는 거짓말을 한 권의 소설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일지 모른다.
하지만 거짓과 위선에 녹아든 인생을 살고 있다면 아무리 사실 근거를 들이밀어도 그것이 거짓말로 보인다.
비록 속고 있어도 현재 누리는 삶에 만족하면 거짓말에 속는 편이 편안한 법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