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빠의 레시피 (1)

by 한약초콜릿

내게 아빠는 모든 면에서 영웅이었다. 그보다는 내가 자라면서 처한 온갖 역경을 피해갈 수 있게 해준 방패나 다름 아니었다.

한번은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로 ‘동물 만들기’가 있었다. 난 입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지 않아서 개학을 하루 앞둔 시점까지 고민만 하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늦은 저녁 퇴근해서 돌아온 아빠는 자초지종을 듣고선 다시 발길을 돌려 집밖으로 나가 비닐봉투에 무언가를 불룩하게 담아서 들어오셨다. 문방구에서 파는 거친 찰흙 두덩이었다. 지금은 컬러가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지지만 나 어릴 적엔 본연 흙색의 찰흙이 찰흙의 표본이었고 점도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었다. 그렇잖아도 손재주가 없는 내가 찰흙으로 조형물을 생산해낸다는 것은 꿈에서나 볼법한 일이었다. 애초부터 찰흙은 시도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나의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찰흙을 내 앞으로 떠밀었다. 내가 금세 또다시 울음보가 터질 것을 예상했는지 짐짓 꾸짖는 말투로 아빠는 말씀하셨다.


“해보지도 않고 물러서면 아무도 널 돕지 않아. 네가 먼저 무엇이 됐든 시도하면 아빠가 부족한 면을 메꿔줄 거야.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손을 내밀어봐.”


손을 내민다는 건 도움을 받기도 주기도 한다는 중의적인 의미였고 서로에게 의존하기보다 합동으로 일을 도모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당시엔 분하기만 했다.


아빠는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제재로 알지도 못하면서 꾸중만 하고.......


내 속이야 어떻든 아빠는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얼굴로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셨다. 그러니 무턱대고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찰흙 포장을 벗기고 보니 더욱 막막해졌다. 두부나 비누 모양 비슷한 찰흙형태는 어떻게 떼어내도 부드러운 단면을 보기 어려웠다. 공작칼을 사용해 자르거나 다듬으면 가능했지만 무엇을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낼지 뿌리도 찾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더듬는 것뿐이었다. 손에 넣고 마냥 주무르다가 둥글게 공처럼 말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아빠는 시작이 아주 좋다며 나를 추켜세웠다. 내가 한 것이라곤 그게 다였다,

그다음부터 아빠는 내가 빚은 구를 물과 공작칼을 이용해 문지르고 깎으며 익히 아는 형태로 바꾸어갔다. 귀가 길게 달리고 꼬리가 뭉툭하고 뒷발을 접어 앉은 토끼가 그것이었다. 거기에 빨간 토끼눈을 강조하려고 팔각성냥갑 표지의 빨간색 부분을 눈꼬리가 올라간 눈 모양으로 잘라 토끼 얼굴에 붙이자 생생한 토끼가 내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새 잘 말려 내일 학교에 조심해서 가져가면 될 거라며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나는 숙제를 마쳤다는 해방감과 결과물이 너무나 훌륭해서 그때의 아빠 얼굴을 눈에 담지 못했다. 그저 딸인 내가 마땅히 받는 아빠의 사랑이라고만 여겼던 것 같다.


다음날 교실에서는 단연코 나의(?) 작품이 최대의 관심 대상이었다. 담임을 비롯한 교우들의 아낌없는 칭찬과 부러움에 내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간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행복과 기쁨이 내 안에서 끝도 없이 증폭됐다.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이에게 저절로 드리워지는 빛이 나를 감싸고 밝혀지는 것과 같았다.


스타가 되려거나 스타일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결코 혼자 이룰 수 없다. 구심점이 되어 인기(人氣)를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고작 8살이었던 내가 찰나의 인기를 맛볼 수 있었던 건 아빠의 조건 없이 순수한, 나에 대한 동경덕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