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피부를 유난스럽게 아끼기 시작했다. 자외선을 막으려고 차단제를 꼼꼼하게 발랐고, 바람이 얼굴에 직접 닿는 경우가 생기면 고개를 숙이고 절대 맞서지 않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피부에는 어떤 자극도 주지 않는 편이 가장 이롭다면서.
그렇게 피부에 열띤 공을 들이면서 숙희 피부는 날이 갈수록 건강한 빛을 더해갔다. 동기 여학생들의 부러움을 산 건 일도 아니었다. 그중 특히, 강희란 친구가 유독 지나쳤다. 숙희를 경배하기라도 하듯 피부를 칭찬하며 넋이 빠진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숙희 넌 어떤 음식을 좋아해? 어떤 브랜드 화장품 발라? 진짜? 나도 그거 쓰는데 어쩜 이런 우연이! 숙희는 잠도 많이 안 자는구나. 그런데 어떻게 이리 피부가 좋니? 주량이 소주 한 병이라고? 그런데 피부가 좋아?
강희는 숙희의 습관이나 취향을 피부건강과 직결시켰다. 본인이 따라 할 수 있는 거라면 남몰래 했을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못 먹는 술을 억지로 먹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강희는 숙희를 어떤 표본으로 삼은 것 같았다. 숙희가 하는 대로 하다보면 자신도 어느 순간 피부가 뽀얗고 환해지리란 희망과 기대를 걸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강희를 제외한 누구도 강희의 희망에 일말의 가능성도 점치지 않았다.
우선 강희는 피부색이 까무잡잡했고, 여드름을 심하게 앓았고 모공이 눈에 띄게 크고 그 수가 많았다. 숙희를 목표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난 강희를 응원했다. 본래피부색까지 하얗게 바꾸는 기적은 없을지 몰라도 여드름 자국을 지우고 모공을 감추기만 해도 훨씬 깨끗한 피부가 될 수 있었으니 아주 요원한 실현만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방학을 코앞에 둔 날, 숙희와 강희는 면접을 보러간다 했다. 취업면접이 아니라 알바면접. 학교 근처 유명 패스트푸드점 유리창에 붙은 공고를 보고 용돈벌이 겸 세상물정 경험 겸 지원하겠다했다. 내게도 권했지만 왠지 마뜩치 않아 거절했다. 그 이유를 삼일 후 강희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알게 됐다. 다음은 강희와의 긴 통화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내게 말을 꺼낸 날 바로 둘은 나란히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점장을 찾아 알바를 하고 싶다고 방문목적을 밝히고 역시 나란히 앉아 면접을 봤다.
점장은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인상 좋은 남자였고 서글서글한 눈매가 함께 일하기에는 까다로워 보이지 않아 안심됐다고 했다. 점장은 근방에 있는 학교 재학생들이어서 마음이 놓인다며 긍정적 신호를 보였다. 패스트푸드점 알바 경력은 있는지, 오래 서있어도 버틸 체력은 되는지, 시급은 얼마를 원하는지, 염두에 둔 근무분야는 있는지 차근차근 신중하게 질문을 던졌다. 숙희와 강희는 성심성의껏 답했다.
그런데 강희의 입장에선 처음부터 차별을 받는 느낌이랬다. 점장의 질문은 둘에게 동시에 하는 것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에 관심을 보이는 건 숙희의 것이라는 게 깡의 주장이다. 숙희에게선 눈을 못 떼고 답을 들을 때마다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이던 점장은 깡이 말할 땐 시선을 이력서에 주고 그 위로 볼펜을 톡톡 두드렸다. 무언가 재는 사람에게서 나올법한 동작이었다. 강희는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속상하고 분했지만 자신이 봐도 숙희가 훨씬 예쁘니 당연한 응대라고 여겼다. 강희는 그 자리를 벗어나면 숙희에게만 합격 전화가 가겠구나, 하고 체념한 상태였다.
“둘이 친한 사인가 봐요?”
점장이 숙희에게 물었다.
“그럼요. 친하니까 알바도 함께하려는 거죠.”
숙희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종종 여학생들은 친구끼리 알바하러 오기도 하는데 그럼 업주 입장에선 조금 난처한 면이 있긴 해요.”
깡은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면전에서 대놓고 넌 고용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인 처사가 아닌가도 생각했다.
“그래도 학생 인성이 바르고 인상도 좋으니까 믿어보죠. 친구 사이를 내가 갈라놓는 것도 싫고. 내일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죠?”
점장은 강희의 예견과 다른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렸다. 숙희는 물론 깡도 고용하겠다는 시원시원한 결론.
다음날 둘은 근무시간에 맞춰 패스트푸드점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점장은 둘에게 유니폼을 건네고 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악역은 싫다고 했던 어제를 까맣게 잊고 철저히 분리시켰다. 숙희는 주문과 결제를 처리하는 전면 데스크로 강희는 칸막이 안쪽 주방으로 보내졌다. 그렇게 이틀을 일하고 내게 전화로 이러한 사정을 낱낱이 밝힌 강희는 곧 몸져누울 것 같은 밭은 숨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는 그 패스트푸드 햄버거는 절대 안 먹을 거고, 알바비 받으면 피부과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