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를 처음 본 날은 추운 봄이었다. 벚꽃과 목련이 수줍게 인사하는 날이었고 때 아닌 시린 눈꽃이 갑작스레 흩날린 아주 추운 봄날이었다.
그 애를 두 번째 본 날은 잔뜩 흐린 구름에 풀이 죽어 어깨가 움츠러드는 더 추운 봄날이었다. 기어이 오후 늦게 약한 비가 내렸고 나는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었다. 그 애도 우산이 없었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 애를 세 번째 본 날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투명 유리창 너머에 그 애가 있는 것을 알긴 했지만 마주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매일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려고 목적지로 가는 최단경로를 버리고 택한 길목에선 어김없이 그 애를 볼 수 있었지만 막상 다가설 용기는 나지 않았다. 말을 걸면 그다음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내게 주술을 걸어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할 초인적 힘이 그 애에게 서려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랑보다 더 뜨거운 무엇에 나는 사로잡힐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하루도 그 애를 보지 못하고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어깨를 쓰다듬어 볼 수도 팔짱을 끼어볼 수도 향기를 가까이서 느낄 수도 없었지만 내가 찾아가 멀리서나마 그 모습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언제까지 애를 태워야할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감정에 휩싸인 채로도 마냥 좋았다. 바라만 봐도 좋은 이 감정을 갖게 해준 그 애가 무척 고마웠다.
이런 게 짝사랑이겠지. 나는 가진 것이 부족하고 세상의 이목에서 멀리 떨어진 언저리에 사는 스치는 사람에 불과해서 그 애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야. 그러니 내 마음을 고백한다 해도 차일 게 분명해. 지금 내 모습은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서 그 애도 날 보기 부끄러울 거야. 봐봐. 지금도 저렇게 당당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흠모하는 눈짓을 보내도 곁눈질도 안 하잖아. 어쩜 너는 진정한 네 짝을 찾는 게 이 세상에선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 애에겐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애를 선망하는 여럿중의 하나에 불과했고 멀찍이서 훔쳐만 보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패배자로 보였을 것이다. 아니, 자신에게 다가서지도 못하는 나를 그 애는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안다 해도 외면했을 것이다. 언제나 사랑을 받는 쪽은 마음을 구걸하는 쪽의 감춰진 불안이 얼마나 유용한지 아는 법이므로.
-2010년 아주 비싼 샤넬 재킷을 보고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