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봄 n.1 시작과 예측 불가능한 것
# 봄 (2019)
Chapter 2 # 봄 - n.0 프롤로그
# 봄 n.1 시작과 예측 불가능한 것들.
그렇게 하쿠는 나의 자취방에 입성하였다. 비록 베란다 한 켠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먼길을 둘러왔지만, 결국 나의 공간으로 왔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처음에는 베란다 유리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항상 쓸쓸하게 혼자 지내던 공간에 이제부터는 언제든 함께할 귀여운 상대가 공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내 하쿠를 베란다 내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내 공간이 더럽혀질까 약간의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현재는 팬티를 입혀서 분변도 떨어지지 않았고, 털이 좀 빠지는 것뿐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하쿠는 베란다에서 머뭇머뭇거리던 것과는 달리 방 안으로 들어오자 좋았는지, 신나게 뛰어다녔다. 똥쟁이 강아지를 키운다고 걱정하던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는 그렇게 오손도손 참 잘 지냈다. 우리는 참 행복했다. 이렇게 해피 앤딩....?
(방안으로 입성한 하쿠. 하쿠는 집도 많다. 쿠션 집, 상자 집, 침대 집)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녀석, 무언가 저 딴에는 불편한 부분이 많았나 보다. 이번에는 실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쿠가 방 안에서는 한 번도 정상적으로 오래 생활해본 적이 없어서 인지, 아니면 좁은 방 안에서 함께 지내는 게 불편했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동거의 시작과 동시에 하쿠와 나 사이에 묘한 심리전이 시작되었다. 결국 나는 나의 침대까지 하쿠에게 내어주고 말았는데, 그러자 실내에서는 소변을 안 하던 녀석이 밤이 되어 침대만 올라가면 지도를 한바탕 그려놓는 게 아닌가? 산책을 막 갔다 온 직후에도 이 기이한 행동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도를 그려놓고는 반항이라도 하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앗. 시바견은 절대 자기의 공간에선 배변 배뇨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하쿠가 왜 이러지?"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쉬한 곳을 가리키며, 이불을 팡팡 두드리면서 아무리 하쿠를 혼내보아도 이튿날 이면 또 쉬를 해놓고, 또 그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쉬를 해놓았다. 따라서 심할 때는 이틀에 하루 걸러 이불을 싸매고 코인 세탁소에 가곤 했다. 말이 '코인' 세탁소이지 빨래에 건조까지 하려면 한 회당 만원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그날 덮고 잘 이불이 없었다. 이불 짐을 한가득 들고 코인 세탁소에 갈 때마다 내 시간이며, 돈이며 돌돌 돌아가는 세탁기 안에서 함께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쓰렸다. 휴.. 실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데! 같이 살기 시작하자마자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말괄량이가 된 하쿠. 멍하니 쳐다보던 코인 세탁소의 동그란 창. 하쿠에게 점령당한 나의 자취방)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집에 오랜 시간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볼 때보다 하쿠를 더욱 자주 살펴봐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책도 하루 세 번으로 늘렸고 산책을 하는 시간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었다. 학기의 시작과 함께 아침, 저녁, 늦은 밤 세 번에 걸쳐서 산책을 위해 돌아다녔는데 아침은 수업 전에 일어나서, 저녁은 오후 수업 후에 1시간 정도, 저녁은 간단히 인근 공원에서 마저 소변을 보는 정도로 우리의 루틴을 정하였다. 하지만 하쿠와 함께 힐링하는 생활을 꿈꾸며 새로운 학기에 도전했던 패기가 무색하게, 이내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간간이 하쿠를 보러 와야 했기에 정신력을, 체력을 모두 소진해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하쿠가 밤에 쉬야를 하면 그 부분을 피해 쪽잠을 자야 했으므로 충분히 쉴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하쿠가 팬티를 입고서는 실금으로 인한 문제는 크게 없었다는 것이다.
문득,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다. 세상에는 견디기 버거워도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엄마 아빠도 나를 키울 때 이랬을까? 하루하루 직장생활을 기본으로, 집안일에 더하여 자라나는 우리를 돌보시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 커서 보니 세상일 하나하나 쉬운 게 잘 없었는데, 더하여 소중한 것을 지키려다 보니 그 어깨에 짊어진 무게는 쉬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하루 일과를 다 마친 밤이면 괜스레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아침마다 베개 위에 올라와서 밥 달라고 조르던 하쿠)하지만, 시작을 했으니,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생길 수밖에 없기 마련이겠지 하고 마음먹었다. 처음 적응이 힘들어서였지, 하쿠도 점점 이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적응해가는 하쿠를 보며 힘이 났다. 우려와는 달리 실금으로 인한 문제는 하나도 없다는 것도 힘을 내게 해주는 포인트였다. 팬티를 갈아 입혀 줄 때 가끔 동글동글한 토끼 똥 같은 덩어리들이 따라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실금용 팬티로 전과 같이 묽은 변이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또한 그런 분변 덩어리들이 팬티 밖으로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한 이주쯤 지나니 이제 침대 또한 자기 공간이라고 느꼈는지 소변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로는 둘 다 침대 위에서 평화롭게 잠에 들 수 있었다. 잘 때마다 느껴지는 하쿠의 온기가 참 따뜻했다. 따지고 보면 하쿠를 돌보는 일련의 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나 또한 외로운 자취 생활을 끝내고, 수업이 끝나면 보고 싶어서 달려 나갈 대상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는데, 하쿠가 온 이후로 부터는 아침만 되면 하쿠가 밥 먹고 산책하자고 나를 눌러 깨우는 터라 일어나기가 쉬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의 똥쟁이가 환골탈태하여 한 지붕 아래에서 살 수 있는 이 상황 또한 기적처럼 느껴졌다. 한바탕 우당탕탕 적응기를 거치고 난 후에 우리는 다시 일상을 찾게 되었다. 소중한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