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봄 n.2 변화의 정착

# 봄 (2019)

by 전구슬

Chapter 2 # 봄- n.2 변화의 정착


일상이라는 단어가 쓰인다는 것은 곧, 떨리던 시작도 궤도를 찾고 문득 그 삶에 녹아든다는 의미인 것 같다.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처음'이란 생소하고 어렵지만, 조금만 버텨내다 보면 방법적인 면과 심적인 면 모두 노하우를 깨치게 되는 법이다. 아님 아예 포기를 하던가. 다행히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곧 이러한 삶이 익숙해졌다. 실외 배변 시바견, 하쿠와의 반복적이고 일정한 산책은 절친한 친구와의 수다처럼 편해졌고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 어느새 우리는 전형적인 시바견의 트레이드 마크인 초록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교정을 열심히도 걸어 다녔다. 아지트를 발견했다 싶으면 둘이 나란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풍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대학생은 학교 생활 속에서 복잡한 과제들과 미숙한 사회적 관계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나가게 된다. 하지만 쿠와의 산책을 통해 모든 상황들로부터 객관적으로 멀어져서 우리만이 생각의 주체가 되는 것은 꽤나 유익한 일이었다.


또한 산책을 하다 보니, 자주 지나게 되는 단골 옷가게나 카페도 생기는 등 사회적인 영역도 넓어지게 되었다. 특히 사장님들께서 하쿠를 많이 이뻐해 주셨다. 그 외에 행인들과 동행하곤 하던 지인들까지 포함해서, 자신을 좋아한다면 누구에게든지 달려 나가 웃음 짓는 하쿠를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셨다. 덕분에 힘들었던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이 일상 속에 배로 즐거운 일들이 많아졌다.

(산책 중 잠시 쉬고 있는 하쿠의 귀여운 뒤통수)

(왼 위:사촌들이랑 산책하고 끝내 집으로 체포당해 가는 하쿠. 못내 아쉬운 듯하다./왼 아래:아침 산책하다 한컷. 동네 할머니께서 아이고 참하다~해주셨다. 하쿠는 남녀노소 인기가 많다./오른 위:빠빠 창고(강아지 용품점)에서 빠빠를 사고 집에 돌아가는 기분 좋은 하쿠/오른 아래: 공부를 방해하는 주범(?) 집중하고 있으면 심심한지 저도 책상 위를 빼꼼히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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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쿠와 하하호호 웃으면서 마냥 행복하게 지낼 수만은 없는, 현실적인 순간들도 있었다. 때때로, 미안하게도 하쿠에게 심하게 화낸 적도 있었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에는 하쿠에게 우비를 입히고 산책했는데, 하쿠는 불편하고 익숙지 않은 이 우비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하지만 산책 배변 자체가 꽤나 골치 아픈 것이어서, 우비를 싫어한다고 이를 피해 배변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배변을 하지 못하면 하쿠가 괴로워했기 때문에 배변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아침 수업이 아침 산책에 곧이어 있는 날이면, 여기저기 냄새를 맡느라 미적미적거리는 하쿠 때문에 내 마음이 불안해지곤 했다. 이럴 때면 정말, 나의 심신 또한 지쳐갔다. 평상시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려고 하지만, 하쿠도 전형적인 시바견으로 고집이 아주 세서, 폭우가 내리든 바닥이 더럽던 무조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야 하는 성질이 컸다. 따라서 비가 오는 날은 나의 한 손은 우산에, 다른 한 손은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 줄도 모르고 무조건 고집스럽게 버티는 하쿠에게 잡혀있었다. 이 모든 상황에 한 번은 화가 나서 하네스를 확 잡아당기기도 했는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처량한 표정을 짓는 하쿠를 보니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개들도 다 안다. 주인이 자기를 정말 위하는지, 아니면 자기 성질을 못 이겨 화를 터트리는지.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최소 삐지거나 심하면 앙심을 품지만, 강아지들은 그런 주인마저 믿고 따르기 때문에 꽤나 불평등한 관계이다. 따라서 양심 있는 주인은 강아지를 더욱 사랑하고 아껴 주어야 하는 수밖에 없다. 혼을 내더라도 이 친구가 잘 알아듣게, 마음의 유대를 십분 활용하여야 한다. 그게 인간과 동물 간의 도리가 아닌가 싶다. 더하자면, 특히나 배변에 민감한 하쿠는 배변 장소도 딱 마음에 들어야 했기 때문에, 장소를 찾는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도 필요했다. 솔직히 좀 귀찮았지만. 그렇게 해야 했다.

(우비 입고 뭔가 언짢은 하쿠)
(그래도 산책은 계속된다!)

이렇게나 바빴던 1학기의 도중에는 친오빠의 결혼식도 있었다. 늘 티키타카 장난만 치는 관계였지만, 사실 나는 오빠를 참 많이 좋아한다. 그런 오빠가 정말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함에 너무나도 축복했고 또 감사했다. 하지만, 결혼이란 새로운 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약간은 멀어지지 않을까, 지레짐작으로 서운하여 결혼식 때는 눈물도 약간 나더랬다. 오빠의 결혼식이 끝나고 엄마 아빠는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떠나셨다. 사실, 엄마 아빠는 하쿠를 그동안 본집에 데려오지 못하게 하셨다. 오랜 교직생활 끝에, 깔끔하신 두 분의 성격과 장래의 행복한 삶의 설계에 맞게 고심하여 선택하고 이루어낸 소중한 공간이 대책 없이 더럽혀질까 걱정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일 년 전 학교에서 추석기간이 되어, 하쿠를 돌볼 인력이 충분히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 베란다에 잠시 두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실금이 충분히 개선되지 못했던 터라 온 베란다가 분변으로 더럽혀졌고, 그 냄새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아 몇 번이고 청소를 하셨기 때문에, 걱정이 더 크셨을 것이다.


따라서, 하쿠는 오직 나의 자취방에만 키우고 있었다. 일부러 말을 안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핑계를 대자면 좁은 자취방이 답답하기도 하고, 본집에 가고 싶기도 하고, 하쿠도 배변장애가 많이 나아졌기 때문에 부모님이 여행을 가신 동안 주말이면 하쿠랑 몰래 본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봄이라 날씨도 좋았고, 하쿠도 좁은 자취방이 아닌 넓은 집을 좋아했다. 또한 부모님의 걱정과는 달리 본집에서도 하쿠가 똥을 진짜 거의 흘리지 않기 때문에, 몰래 즐기다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이 공간은 <오만과 편견>의 펜벌리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도심에서 떨어져 고즈넉하게 유유자적, 쳇바퀴 구르듯 굴리는 일상에서의 일탈은 달콤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듯, 하쿠의 발자국이 문제가 되었다. 청소를 한다고 했는데, 집안에 누가 봐도 개 발자국인 무엇이 찍혀있었나 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사건 덕분에, 여행에서 돌아오신 부모님은 약간의 체념과 함께, 하쿠도 이제 집 안에서 실금으로 인한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게 되었다. 오빠의 결혼으로 빈자리가 느껴져 쓸쓸할 것 같았던 집은 이내 다시 북적였다. 나와 하쿠와 엄마 아빠, 그리고 종종 오빠네 부부로 북적이는 집은 다시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따뜻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걱정은 기우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인데, 좋은 것들의 합집합이니 결과 또한 좋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상황이 달라진다 하여,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새로움에 도전하고 이겨낸 만큼, 삶이 풍부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후에 언급하겠지만, 방울이를 잃고 나는 많은 변화들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만남은 곧 미래의 확실한 헤어짐을 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연속적이고, 길고, 방울이에 대한 기억은 영속적이다. 그래서 과거의 슬픔은 망각될 수 있으며, 좋은 추억은 삶을 영원히 지탱해 준다. 따라서 현재는 또 달리 행복한 것일 수 있었다. 다시, 삶은 감사한 것이었다.

(본집에 온 첫 날 하쿠. 뭐가 그리 신나는지 밥도안먹고 돌아다녔다.)


하쿠와 학교 수업을 같이 들은 적도 있다. 하루는 점심시간을 틈타 친구와 피크닉을 하고 난 다음이었는데, 다시 하쿠를 집에 데려다 놓으려니 못내 아쉬웠다. 반려동물의 친구인 수의과 대학이라는 약간의 특수성과, 인자하시고 좋으신 교수님께서 허락해주신 덕에, 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수업 내내 신나서 교실의 모든 사람과 인사하고 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강의하시는 교수님 신발을 킁킁거리기도 하고, 연단에 앉아 우리를 둘러보기도 했다. 한 세 바퀴쯤 교실을 탐방하고, 끝내는 동기의 옷을 빼앗으려다 실패하자 소리를 질렀다.(시바견의 비명은 유별난 면이 있는데, 오죽하면 시바 스크림이라는 용어도 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결국 그 말썽쟁이 하쿠를 잡아와서 내의자 뒤에 앉혀놓고 수업을 마저 들었다. 동기들은 이런 하쿠 마저도 이쁘다 좋아라 했지만 다시는 수업에 데려오지 않아야지 생각했다. 아주 그냥 말썽꾸러기 하쿠.


하쿠와 지내면서 성적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과 특성상 외울 거리가 많았는데, 하쿠랑 노닥거리며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얘기였다. 원래는 성적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었는데, 핑계를 대자면, 중요한 것은 성적이 아닌 것 같았다. 체력도 따라주지 않았고. 여러 가지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 아이랑 지내는 삶과 주변의 환경과의 유대로도 내 삶은 충분하게 느껴졌다. 사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이런 경험도 의미가 있긴 했다. 대신 나는 그때 일과 삶, 두 가지 일을 모두 아우러 내지 못한 관계로, 전공을 써먹어야 할 지금, 허둥지둥 뒤늦게 어렵사리 공부하며 고분군투 중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어느 순간에는 해결되리라 낙천적으로 믿어본다. 아니, 해결되어야 한다. 하쿠도 장애를 이겨냈는데, 나도 해내야지. 여하튼, 하쿠와 처음 동거 동락하며 보낸 다이내믹한 1학기가 그렇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수업 듣던 날, 점심 피크닉 하던 행복한 하쿠
양말 뺏으면서 노는 장난꾸러기 하쿠. 경계심 많던 아기 시바견은 이제 없었다.

Chapter 2 # 봄 - 에필로그


너의 맑고 순수한 얼굴은 오늘도 활짝 피었다.

그래서 덕분에 나도 갑자기 피는 봄꽃처럼 피식 웃어버렸다.

Feat... 춘곤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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