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 노트 2

by 전구슬

꿈꾸는 듯한 하루를 끝내며

힘든 날이었다.

동물병원 이란 곳은 항상 생과사를 위한 균형추를 맞추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막 수의사로서 첫걸음을 뗀 나는 쉽사리 오르지 않는 실력 때문에,

더더욱 느려지는 몸과 마음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빨리빨리 대처해야 하는 정신은 오히려 썩어가는 동태눈처럼 흐리멍덩해져 간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으니,

스스로 이겨내자고,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해내 보자고 다짐하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상념과 반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집에 가면,

이 모든 피로를 눈 녹듯 녹여주는,

너의 경쾌한 발자국 소리와 반짝이는 까만 눈이 있어,

오늘도 살아갈 맛이 난다.

이렇게 내일도 살아가야지

그렇게 조금씩 더더욱 나아져야지

덕분에 힘들었던 오늘은 지워지고,

이제는 비로소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이 자리 잡을 시간이 된다.

윙크!

목욕

휴일을 맞아 하쿠를 구석구석 목욕시켰다.

하쿠는 커다랗고 파란 바가지에 담겨 샴푸도 하고 물세례도 받았다.

드라이를 할 땐(시바견의 특성상) 털 뭉치들이 구름처럼 뭉실뭉실 날아다녔다.

한바탕 목욕 소동이 끝난 뒤에는,

신이 나서 사슴처럼 뛰어다니다가 간식으로 사료 몇 알을 받아먹고 행복해했다.

강아지나 사람이나 목욕하고 상쾌해지는 건 똑같나 보다.

때의 무게가 몇 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결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에 흐뭇해졌다.

그러고서는 피곤하다고 이불에 파묻혀 잠이 깊이도 들었다.

따지고 보면, 손도 많이 가고 생산성이란 1도 없는 친구인데,

결국 내게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무엇이 되어버렸다.

목욕이 무섭고 싫으면서도, 복작복작 거품 내는 나의 팔에 살포시 기대던 너의 무게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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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가끔씩 마땅히 그럴만한 이유로(예를 들면, 매운 마라탕을 배 터지게 먹는다던가.... 늦은 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야식을 과하게 먹는다던가...) 복통에 시달릴 때가 있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순간을 즐긴 대가는 응당히 받을 만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여 시계조차도 고통이라는 시각에 멈춘 듯 느껴질 때면 막심한 후회에 시달린다.

어떤 것과 바꾸어서라도 이 아픔을 넘겨내고 싶은 것이다.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나고서야 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내장의 통증이란 참으로 괴로운 것이구나..

그러고 나면 으레, '하쿠는 그동안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하쿠는 혼자서 얼마나 힘들게 인내의 시간을 보냈을?'.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깐의 자극이나 염증으로도 이렇게 배가 아픈데, 하쿠는 장을 자르고 이어 붙이고 소화장애까지 겪었으니,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은 너무나도 건강해진 하쿠이지만, 아주 가끔씩은 배가 아픈지 변을 물처럼 흘리고 복통을 호소할 때도 있다.

평소에 너무 정상 견과 다를 바 없이 살기에, 나 조차도 그가 조금 더 주의를 필요로 하는 강아지라고 느끼지 못하는데, 사실상 그렇지 않은 것이다.

조금 더, 주의를, 항상. 기울어야 한다.

오늘 나의 복통은 하쿠를 더 잘 이해하고 돌볼 수 있게 하려는 벌이자 교훈처럼 느껴진다.

늦은 밤이라 하쿠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나는 책상에 앉아 마저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하쿠가 낑낑거리며 아픈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배탈이 났나 하고 순간 걱정이 들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잽싸게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요 녀석! 커다란 인형에 가로막혀 불편하게 목을 기대고서는, 그 자세 그대로 선잠이 든 채 낑낑.

아마도 대략 목이 결려서 불편하다는 뜻인 듯하다.

얼른 인형을 치워 바로 누울 자리를 만들어 주었더니 다시 편안히 잠들었다.

어휴...!!^^누구 집 강아지인지... 자느라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귀찮았나 보다.

덕분에 때아닌 걱정을 또 해버렸다.

그런데 사실, 별 일 아니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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