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여름 n.1여름과 함께 정지한 순간
# 여름 (2019)
Chapter 2 # 여름 - n.0 프롤로그
유난히도
싱그러웠던
그 해 여름에 대해서
Chapter 2 # 여름-n.1 여름과 함께 정지한 듯한 순간들.
그렇게 새로운 봄이 끝났다. ‘시작, 처음’이라는 것이 끝난 것이다. 의미 부여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처음'이라는 것은 항상 어떠한 힘을 가지는 중요한 '점'이다. 그 이후는 '가치의 벡터'로 이어지는데, 방향성과 크기를 가져서 내 삶도 어떠한 선을 이루게 한다. 그런 선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향하거나 하향하는 그래프를 이룬다. 나의 삶의 궤적은 항상 처음에 부여하는 힘은 크지만, 직선으로 평탄히 곧게 이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때때로 무거운 중력과 같은 어떠한 힘(아마도 무언가 끈질기게 하지 못하는 성격?, 또는 쉽게 동요되는 마음?, 현실적으로는 체력적 한계?)에 의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계속 반복하곤 했다.
그 해의 시작은 ‘하쿠와 함께’라는 의미부여로 시작하였다. 하쿠와 함께하는 생활이 행복하고 즐거운 만큼 선 그래프는 상향하기도 했으며, 하쿠와의 동행이 학업과 병행하기에 버겁게 느껴질 때는 하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의 마음은 그가 주는 믿음과 애정 덕분에 더욱 안정이 되었고, 더욱 현실에서 느끼는 행복에 안착하게 되었다. 한 때, 힘없이 날아다니던 마음의 중력은 하쿠 덕분에 그 무게 이상으로 내 마음을 견고하게 이 지구에 단단히 붙어있게 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전체적인 ‘삶의 행복과 희망’ 그래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삶이 따뜻해지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는 큰 불안감이 있었다.
바로, 다가올 수의사 국가고시라는 나름의 중차대한 자격증 시험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수의사 국가고시는 6년간의 수의학 교육 과정을 마치고, 국가로부터 수의사 면허를 인정받는 자격증 시험이다. 합격률이 높은 시험이긴 하지만, 장애를 갖고 있는 실외 배변 견과 하루 3번의 산책을 내포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학업을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쿠와 함께한 첫 학기-수업을 들으러 간동안 하쿠는 달콤한 잠에 빠져있다.따라서 방학 동안은 다소 생활하기 편한 본집과 이따금 자취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국가고시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또한 국시 이후의 진로 문제(대학원을 가느냐 마느냐, 전공은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보아야 했다. 평소 전공으로 선택하려던 과목에 대하여 내가 진정 이를 좋아하는지 큰 회의감이 스스로 들었기 때문에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내적 갈등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본집에서의 생활은 항상 안락했다. 일단, 하쿠도 넓은 집을 좋아했고, 책임감이 깊으신 엄마 아빠의 도움이 더해져서, 하쿠를 더욱 제대로 케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아침밥을 기다렸을 하쿠를 위해 항상 일찍 일과를 시작하게 하셨다. 따라서 하쿠도 더욱 규칙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 주변의 자연환경도 건강한 생활에 도움을 보태었다. 결국 하쿠는 본집에서의 생활을 좋아하게 되어서, 가끔씩 나와 같이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면 울적해하곤 했다. 또한, 배변장애를 극복하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앙증맞은 하쿠의 모습 덕분에 엄마 아빠도 금세 이 강아지에게 정을 붙이게 되셨다. 나도 할 일이 생기면, 하쿠를 케어하는데 익숙해지신 엄마 아빠께 믿고 하쿠를 맡길 수 있었다. 역시 혼자 끙끙거리며 하쿠를 돌보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하니 더욱 편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행복은 당연히 배로 불어나 있었고.
위는 본집에서 왕자처럼 대우받는 하쿠./밑은 자취방의 좁은 공간에서의 어딘가 처량한 하쿠.그해 여름도 역시나 무더운 여름이었다. 하지만 하쿠의 이번 여름은, 답답한 입원실이 아니라, 대개 선풍기 앞에서 유유자적하며 자신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하쿠의 하루는 아침 일찍 산책을 갔다 와서, 오후 늦게 까지 그늘이나 선풍기를 찾아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다가, 햇빛자리가 사라지면 다시금 식어가는 땅과 시원해지기 시작하는 바람을 이고 산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싱그럽고 느릿느릿한 꿈같은 일상이었다. 창밖으로 푸르고 무성한 나뭇잎들만 시끄러울 뿐이었다. 어두웠던 병원생활을 끝내고 이렇게 행복한 일상을 지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무 항문증의 강아지가 이렇게나 괄목상대하여 태연히 누워있는 것을 보면, 세상일은 모를 일이라고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선풍기 앞에서 낮잠 자는 하쿠
더워서 녹아버린 하쿠
창밖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하쿠. 뜨거운 여름날.
저녁 바람이 시원할 때, 그림자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