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여름n.2 지독한 더위와 위기

# 여름 (2019)

by 전구슬

# 여름 - n.2 지독한 더위와 위기

현기증이 날만큼 무더운 여름이었다. 대구라는 분지는 이중 모의 강아지에겐 더더욱 힘들게 에워싸는 산이었다. 무더위만큼이나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급하게 매진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불편하던 때였다. 한 번은 하쿠와 산책하며 친구에게 전화로 미숙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쿠가 깨갱하며 뒤집어지는 게 아닌가. 갑자기 거칠게 숨을 쉬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무엇을 잘못 삼킨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쿠는 계속해서 죽을 듯이 낑낑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전화기를 집어던지면서조차 하쿠를 붙잡았으나 어쩔 줄을 몰랐다. 수의학 공부를 6년이나 하고도 하쿠가 아플 때, 응급 처치조차 할 수 없다니.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런 상황은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조금 뒤, 비명을 멈추었지만 어딘가 축 늘어진 것 같은 하쿠를 안고 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께서 진정제를 놓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한 결과 큰 이상은 없었으나, 혀에 벌침 같은 것이 박혀있었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내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 날아가는 벌을 잡아 삼켜버린 것 같았다(이전에도 날아가는 물체가 있으면, 종종 물어 삼키려는 행동을 보이긴 했으나 진짜로 벌을 먹을 줄은 몰랐다. 바보 하쿠...). 전화 통화에 정신이 팔려 부주의한 탓에 하쿠가 무엇을 삼키는지도 몰랐던 내가 너무 미웠다. 항상 식이조절 때문에 배고파하는 하쿠여서 항상 산책을 할 때면 이물을 주워 먹지 않도록 주의 깊게 봐야 했는데 무책임한 누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큰 수술을 겪은 하쿠가 또 장에 탈이 생겨 큰 아픔을 겪어야 할까 봐 너무 걱정이 되어 심하게 자책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하쿠는 그 이후로도 큰 이상은 없었다. 따라서 몇 가지 간단한 항염 주사를 맞고 이 해프닝은 끝이 났지만, 하쿠도 나도 너무나도 놀랐던 하루였다.

한바탕 벌침 소동을 치른 후, 집으로 돌아온 하쿠. 많이 놀랐는지 또는 약 때문인지 한참 침울한 상태로 있었다.

한 번은 흥건히 쏟은 커피를 닦느라 땅바닥에 뭉쳐놓은 휴지를 잔뜩 먹은 적도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책을 하는데 하쿠가 배변을 보면서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동네가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길래 놀라 살펴보니, 변이 흡사 등산로에 보이는 짚들처럼 뭉글뭉글하게 뭉쳐져 이상한 모양으로 생겼다. 들어서 보니 아까 그 휴지 덩어리를 먹은 것 같았다. 장 안에서 서로 뭉쳐진 휴지 덩어리들은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만큼 부피도 컸고, 소화되는 동안 수분이 흡수되어 매우 딱딱했다.


또다시 동물병원 행. 영상검사를 찍어보니 대장이 이물로 꽉 막혀있다고 했다. 계속하여 휴지 덩어리가 변으로 나오지 않게 되면 관장을 해야 했고, 최악의 경우에는 관장으로도 해결할 수 없으며 장이 막혀 괴사 될 수 있었다. 그땐 다시 한번 큰 수술을 해야 될 수도 있다고... 너무나도 비참했다. 하쿠는 안 그래도 어릴 때, 항문 자체도 없었지만 장도 부분적으로 안 좋아서 두 번이나 자르고 이어 붙이는 큰 수술을 겪었다. 또다시 수술을 하게 되면 장이 더욱 짧아질 것이고 그 때문에 최악의 경우 단장 증후군(외과적 수술로 장을 일정 길이 이상 제거했을 경우 발생하는 소화흡수 불량증)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왜 그 휴지 덩어리들을 빨리 치우지 못했을까.. 절망스러웠다.


최대한 수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일단, 휴지가 수술 없이 변으로 나올 수 있게 물을 많이 먹였고, 수시로 산책을(하쿠는 산책을 가야 배변을 보기 때문에) 갔다. 1-2시간 간격으로 계속 산책을 나가 될 수 있는 대로 변을 많이 누였다. 잠도 별로 안 자고 꼭두새벽부터 계속하여 산책을 시켰다. 하쿠는 변을 볼 때마다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병원에 갔다 온 저녁에서부터 다음날 새벽 아침까지 그렇게 반나절을 꼬박 보내고 나니 더 이상 동글동글 뭉쳐진 휴지 덩이들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걱정과 졸음 때문에 전파 간섭된 텔레비전처럼 멍하고 지지직거리는 정신으로 걷고 또 걷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힘들게 응가를 싸느라 낑낑거리던 휴지 똥 소동 후에, 다시 말괄량이로 돌아와 웃음 짓고 있는 하쿠.

이 모든 순간들이 우연한 해프닝 같을지도 모르지만 양심적으로 곰곰이 되돌아보면 공통점이 있다. 두 사건 모두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오락가락할 때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평소 내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어김없이 하쿠가 크게 또는 작게 아픈 적이 많았다. 우울한 기분에 빙자해 하쿠에게 필요한 디테일을 놓치는 건지, 하쿠도 내게 쉽게 감정이 전이되는 건지. 모든 경우를 통틀어 명확하게 하나의 원인을 찾을 순 없겠지만 죄책감이 쌓였다. 내 기분이야 친구들을 만나서 실컷 놀다 보면 풀리지만, 하쿠는 따지고 보면 그 시간마저도 홀로 견뎌야 했다. 그래서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강아지의 보호자로서 더욱 평정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두 사건 이후로 하쿠와의 산책길에는 통화도 음악도 듣지 않는다. 오로지 하쿠와의 산책길에 집중한다. 하쿠가 무엇을 주워 먹지 않는지, 하쿠 주위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일상생활에서도 땅바닥을 면밀히 살피는 습관이 들었다. 우리의 작은 실수라도 강아지에게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배운 교훈은 수많은 잡다한 고민에 일일이 신경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게 소중한 것에 집중하고 이를 잘 지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하쿠라는 생명에 책임을 지고 있는 내가 더욱 단단해져야 하는 이유다. 사실, 대학생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볼 줄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대학교 때 고민이 제일 깊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나 스스로의 마음의 문제라곤 생각하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고 방황했었다. 하쿠를 키우면서 더 이상 허상에 흔들리지 않고, 나에게 보다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은 지독한 무더위만큼이나 단단히 책임감과 성숙함을 배운 계절이었다.

하쿠야. 미안해. 누나가 정신 차리고 더 잘할게!
작쩐 회의를 시작한다!
그래도 입마개는 싫어ㅠㅠ 안 주워 먹을 테니 빼주세요 ㅠㅠ

P.S 이후 경각심을 느끼고 하쿠가 무엇을 주워 먹으려고 할 때마다 입마개를 몇 분간 씌우는 훈련을 했더니, 다음부터는 바닥에 있는 것을 주워 먹으려는 행동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대신 산책 후에 사료를 몇 알 더 주는 것으로 깨끗이 타협을 보았다.


Chapter 2 # 여름 – 에필로그

호사다마.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것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뜨거운 여름. 뒷산을 뒤덮은 푸르른 나뭇잎의 파도가 수차례 지나간 후에야,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잃지는 마! 난 언제나 네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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