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내 심장이 있다. 내 차의 조수석에, 또는 차 뒷자리 나의 동승자이자 귀여움으로 무장한 생명체. 이 생명체는 반짝이는 두 눈동자와 뾰족한 귀, 황금빛 털과 새하얀 털의 배색이 아름답다. 밖에 꺼내 놓은 제2의 심장. 착하기는 얼마나 착한지, 그리고 태도가 얼마나 얌전한지 가는 곳마다 칭찬을 받아 으쓱하게 만드는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내 앙증맞은 귀염둥이. 쿠가 가진 디스크 의심 소견 때문에 우리는 이틀에 한 번 꼴로 같이 여행을 했다. 또한 쿠가 운동을 무리하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쿠와 여행할 때는 대개 실내를 활용하였고, 해변과 같이 다소 정적으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을 주로 다녔다.
"쿠야 누나랑 같이 멍멍이 보러(쿠의 귀가 쫑긋 하고 고개가 약 30도 정도 기울어진다) 상어 타고(쿠의 코에서 콧김이 뿜어져 나오면서 몸을 일으킨다) OO 갈까?"
하는 순간 쿠는 신나서 몇 번 돌다가 하네스를 차고 여행을 시작한다. 코가 까맣고, 털이 달린 이 작은 동승자는 대개 말이 없다. 그저 가끔씩 얼마나 왔나 다 왔나 머리를 빼꼼 내어보는 것 밖에는.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 초행지라 낯선 곳에 옴에 따른 약간의 두려운 마음은 지지직 거리는 라디오 소리만큼이나 주파수가 잘 안 잡히기 마련인데 (실제로 제주도는 특히 라디오가 잘 잡히지 않았다. 운전 중에 그런 소리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쿠는 존재만으로 안심이 된다. 내 옆에는 내가 사랑하는 제일 착한 생명체가 함께 하고 있다!
사실 혼자 여행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한 법이다.외로움을 잘 느끼면서도, 개인적인 시간을 꼭 필요로 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는 항상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하지만, 쿠랑 여행을 하면, 사색하는 시간을 온전히 가지면서도 혼자 깊이 수렁을 만드는 반성의 시간에 보호막이 쳐진다. 아주 믿음직스러운 친구다. 내가 지켜야 할 이 작은 천사의 무게(이 작은 천사는 실제로 꽤나 무거운 편이긴 하지만)는 내가 집중해야 할 현실적이고, 행복한 목표(건강과 순간을 즐기는 마음)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끔 손을 뻗어 잡히는 보드라운 털은,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일이 많다고 느끼게 해 준다.
목장이나 오름과 같은 곳에 데려갈 때는 바베시아와 같은 감염성 질환을 철저히 대비하자!
쿠와의 여행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몇 가지 루틴이 생겼다. 쿠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몸을 차와 평행하게 주차하고 엉덩이를 내 쪽으로 내민다. 그러면 나는 쿠의 엉덩이를 받쳐 편안하게 안기 쉬워진다. 공간에 도착하여 적응하는 시간이 지나면, 쿠는 내 옆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거나 잠을 자고,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쿠와 있다 보면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 나도 덩달아 조용해지고, 단순해진다. 또한 쿠는 여행지에서 많은 친구를 만난다. 쿠의 스스럼없는 반가운 인사를 나도 점점 닮아간다. "아이~ 너무 예쁘다 어디서 왔어" 하고 대화를 건네는 분들께 쿠를 대신해 대변인이 된다. 그런 대화에서 우리는 항상 활짝 웃고 있다. 제주도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의 여유로운 마음과 쿠의 선한 본성, 그리고 쉽게 명랑해지고 친해지는 성격은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그렇게 나는 그와의 여행에서 한없이 배우고, 나를 치유한다. 보살펴야 할 존재임에도, 그들과 동행하는 것은 일종의 수행이자 축복이다.
벚꽃과 유채꽃과 시냇물이 아름다운 예래생태공원에서.
#부모님과 여행하기- 체험하는 여행
엄마는 어린 시절 걸어서 왕복 몇 시간이 걸리는 엄마의 할머니 댁으로 심부름을 갔다. 할머니(엄마의 엄마)가 할머니께 드리라고 손에 들려준 귀중한 웨하스 한 박스를 들고서 말이다. 과자 또한 귀했던 시절, 엄마는 길을 걷다가 문득 생전 처음 보는 과자였던 웨하스의 맛이 너무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 개만 먹어야지!' 하고서는 귀퉁이를 조금 잘라 맛보았다. 그때 그 아이는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너무나 맛있었던 나머지,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혼자 논두렁 위에서 웨하스를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빈 손으로 할머니 댁에 인사드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비밀을 혼자 오랫동안 간직했다. 그 후로 40여 년도 훌쩍 넘은 지금도 엄마는 웨하스를 좋아하신다.
가족과 함께 제주도의 좁고 고즈넉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 뒷좌석에서 앉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이가 드셨음에도 지치지 않고 매일 같이 자연을 몸소 체험하시는 두 분을 지켜보다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여행을 할 수 있지?' 하고서, 우리 세대와 무언가 다름을 느끼고 그 비결을 궁금해하던 차였다. 두 분의 여행을 보면 여유가 느껴진다. "오늘은 올레 몇 길을 걸어보자!" "오늘은 걸어서 여기서 여기까지 가보자!" 하시고는 쉴 새 없이 도착지까지 부지런히 걸으신다. 놀라운 것은 비단 체력뿐이 아니다. 부지런히 걸으시는 그 길 중간중간의 목적지에는 맛집이나 카페가 아니라, 높은 확률로 어김없이 "자연"이 있다. 그 자연과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경외심이나 감탄도 가져보는 여유도 있으시다. 서둘러서 빨리 이것저것 해내려다가 일을 그르치지 않는 어른의 태도 말이다.
어린 엄마가 논두렁을 걸으면서 고뇌하다가 결국 웨하스를 다 먹어 버리고, 먼길을 돌아 심부름을 갔다 온 것을 회상하며 웃었던 이야기가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부모님 세대는 예부터 먼길을 걸어서 심부름을 다니시고, 교통편이 좋지 않아 학교도 멀리 걸어서 다니셨다. 경제적 형편이 부유하지 못하고 가족의 형태도 대가족이었던 만큼 멀리 여행 갈 수 있는 일도 잘 없었을 것이다. 그 대신 부모님은 조금 느리더라도 직접 걷고, 중간중간 쉬면서 순간의 풍광을 느껴보고, 되돌아보는 데에 더 익숙하시다. 그래서 지금 누구보다도 몸소 체험하시며, 제주의 자연을 깊이 느끼신다. 엄마 아빠와 여행을 하다 보면, 오름 하나는 거뜬히 오르게 되고, 결국 한라산도 오르게 된다. 어떠한 건축물에 가도 조금 더 천천히 구경하게 되고, 꽃을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거대했던 자연이 점점 더 나에게 속내를 보여주게 되고, 더욱 친밀해진다. 그렇게 고요한 자연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시간적 여유와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된다. 바다와 오름과 산이라는 거대한 자연은 오랜 시간 동안 그곳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너무 조급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품에 있을 때라는 것을, 부모님의 여행을 통해 알았다. 매일 너무 힘들다며 툴툴거리곤 했지만, 이틀에 한 번 꼴로만 부모님을 따라다니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부모님과의 여행이 좋아졌다. 그리고 "엄마. 오늘 뭐 먹어?"라는 말은 접어두게 되고 "엄마 아빠. 내일은 어디 갈 거야?"하고 묻게 되었다.
본태박물관과 사려니숲길
소천지
거문오름에서의 나와 우도봉에서의 엄마아빠.
우도 청보리밭
산방산과 동백동산
동백동산에서 만난 어떤 건물. 한창 짓고 있던 상태였는데 예쁜 카페가 될 것 같았다. 다음에 올 때 쯤엔 예쁘게 자라(?!)있겠지?!
절물오름 휴양지와 곽지해수욕장
# 사촌들과, 친한 언니들과, 친구와 여행하기
나의 유쾌한 사촌들은 이전에 적은 것과 같이 여행의 첫 부분을 함께 해주었다. 감사하게도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사촌들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신기하다. 넷이 복작복작 여행을 하는 이박 삼일 동안 정말 쉴 새 없이 말소리가 이어졌다. 사회에서 만난 지인이나 친구가 아닌데도 마음을 터놓게 되고, 솔직하게 말하게 되는 존재와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때로는 걱정도, 격려도, 칭찬도 슬픔도 기쁨도 그 어떤 것도 자연스러워지는 대상들이 있다는 것은 참 편안한 일이다. 그리고 수가 많다 보니 우리는 여행비가 크게 들지 않고서도,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맛집에 가서 여러 가지 음식을 하나씩 시켜서 나눠먹어 보고, 약간 취향에 맞을까 의심이 되는 것은 하나를 사서 나눠 먹고 평가해 보았다. 편안한 상대들과 여행을 다닐 때 좋은 점은,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도 눈치를 보지 않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항상 이들과 함께할 때면 선택지 A에 대해서 회의를 했는데, 기본규칙은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반대!'였다. 한 번은 경주여행에서 찰보리빵을 사러 간 적이 있었는데, 또다시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몇 개를 살까 회의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주인아주머니께서 농담으로 "꼭 회의를 해야 된다 그렇죠?" 하며 웃으셨다. 그리고 "참 좋을 때다~!"하고 덧붙이셨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렇게 우리는 좋은 회의와 좋은 관광을 거쳐 아쉬운 인사를 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이 모습을 할머니가 보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쿠도 같이 놀고 싶다. 첫날 관광에 대한 기록은 2화에:)
비자림
섭지코지
확실히 맛있는 흑돼지구이와 사촌이 시도한 멜젓, 달그락 식탁
학부생 때 실험실에서 만나 친해진 두 언니들이 제주도에 오셨다. 한 언니는 차분하신 편이고, 한 언니는 매우 밝으신 편이다. 기본적으로 언니들을 따라다니고 싶은 동생의 심리는 공통적으로 언니들의 삶을 동경하기 때문일 듯하다. 엄마도 항상 이모의 친구가 놀러 오시면, 같이 놀고 싶어서 이모가 노는 방 문 앞에 기웃거렸다던데, 나도 언니들과의 여행에서 잘 따라다니면서 멋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언니들이 아니면 내가 언제 이걸 먹어보겠냐!, 여기를 가보겠냐! 싶은 트렌디하고 멋있는 공간과 음식들을 구경했다. 나도 언니들처럼 센스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고서는 집에 돌아오면 매일같이 부모님께 신이 나서 '견문록'을 늘어놓았다. 또한 언니들은 항상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조언도 잘해주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화는 매우 재미가 있다. 그리고 언니들이랑 다니다 보면 편안한 나머지 마음을 놓고 맨날 얼렁뚱땅 같은 소리를 하게 되기도 한다. "언니. 이거 진짜 맛있어요. 저 진짜 신혼여행 오면 여기 다시 올 거예요" 하면 언니들은 "필자야. 남자 친구부터 만들고 그런 소리를 하자!" 하시고, "언니 저 다음에 퇴사하면 제주도 서쪽에서 한 달 살기 할까요?" 하면 "필자야. 아직 너 직장에 첫 출근도 안 했단다." 하면서 웃었다. 그런 식의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언니들과 내가 겪은 일들을 얘기하면서 서로 의견을 털어놓기도 했는데, 그런 순간 지나가는 제주도의 풍광이 언니들처럼 따스했다. 나도 사회에서 만나는 동생들에게 언니들처럼 해주어야지 싶은 순간들. 언니들과 함께 한 이박 삼일의 여행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중문색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서퍼들이 떼를 지어 거친 파도 위에서 다음 파도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와 멋지다. 나도 서핑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러자 언니들이 다음번 제주 여행 때는 한 여름에 와서 해변만 보이면 물에 들어갈 거니 준비 단단히 해놓으라고 말했다. 래시가드를 3벌을 가져가도 부족할 정도라고 해서 겁도 났지만, 동생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제주도를 간 때가 3월이라, 주변의 대부분 친구들은 이미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친구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는데, 운이 좋게도 제주도에서 공중방역 수의사(줄여서 공방수)를 하고 있는 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동쪽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제주시에서 친구를 만났다. 대학 동기인 그 친구는 다시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익숙했다. 6년 동안 얼굴을 보았던 세월이 어디 가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친구는 제주도에서 막상 살며 일을 하다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다 똑같더라 하면서도 제주도에 대해서 말을 할 때는 전문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어디가 좋다. 어디는 매우 붐빈다. 이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이런 팁도 많이 알려주고, 바다를 보면서 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차를 타고 제주를 달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신기한 것이 이렇게 먼 제주에서도, 제주 섬에서도 친구를 만날 수 있고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친구 덕분에 제주가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여기는 내 친구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섬이다! 그리고 이 또한 추억이 되겠지. 감사한 시간이었다.
친구 덕분에 제주시내- 이호태우 해변 투어 하고 우무 초코푸딩도!
"딸 데리고 다니니까 좋네. 딸 아니면 언제 이런 분위기있는 곳에 와서 수플레를 먹어보고, 언제 이런 브런치를 먹어보겠어?"
엄마 아빠가 말씀하셨다. 언니들이 떠나면서 추천해 준 한 수플레 맛집에서 먹은 브런치 세트가 상당히 마음에 드셨나 보다.
"우리 집에 가면 또 보자!"
사촌들이 제주를 떠날 때, 언제나처럼 약속한다. 든든하다. 나도 그들에게 든든한 사촌이 되어야지.
"대단하다! 장하다! 다음에는 한라산을 같이 가자!"
한라산 등반 후 언니들이 더 들뜬 것 같았다. 다시? 한라산을? 한라산을 이번 생에 다시 오를지 모르지만, 다음번 우리 여행의 테마는 자연이 주제가 될 것만도 같다.
"다음번엔 누구네 결혼식에서 또 보겠다."
친구와 인사하면서 말했다. 육지에서건 제주에서건 언제고 사람은 다시 만난다. 다음번에는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그리고 햇빛 비치는 곳에서 느긋하게 잠자는 걸 즐기던 쿠는 여행하는 데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집에서 가만히 앉아 놀러 나가지 않으면 자꾸 눈치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