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제주에서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오르락내리락 펼쳐져 있는 오름이나, 난데없이 펼쳐지는 목장 위에서 꿈꾸듯이 부유하는 말들과 소들. 조금만 원심력을 따라 해안으로 미끄러지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 꿈꾸듯 중심을 바라보면 보이는 한라산. 어쩌면 웃기게도 긴 시간 동안, 그 이색적인 곳에서 내가 흔적 없이 부유하거나, 침체되지 않았던 것은 언제나 한결같이 내 곁에 있는 작은 친구 덕분이다.
제주도만큼이나,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개성을 가지고 자아를 내포한 것들은 보글보글 거리는 거품들 마냥 시끄러울 따름인데, 그래서 세상은 재밌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다. 쿠의 개성(견성?)은 제주도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독립적인 섬이면서, 우리나라인 제주도처럼, 쿠의 작은 머리도 꽤나 자유분방하고 (누나가 불러도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쿠를 한 번 안아보려면 집안을 계주 경기처럼 돌아다녀야 되는..) 좋고 싫음이 뚜렷하지만 항상 눈과 귀는 가족을 향해있는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까만 두 눈을 어김없이 내비치는, 영락없는 우리의 가족 구성인 것이다. 그리고 착하기도 착하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곳저곳 품을 내어주어 보듬어주는 제주도처럼, 쿠의 작고 꾸준하고 따뜻한 숨소리는 우리에게 큰 안락함을 준다.
애석하게도 나는 쿠처럼 솔직하지 못하다. 개성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까닭은, 쿠처럼 선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의 안전한 삶에 굳이 위험요소가 되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둘째는 어차피 혼자서 해결할 고뇌와 슬픔을 굳이 표현하여 걱정을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는 것은 때로 매우 어렵다. 특히나 동물병원에서는 더더욱 경험과 데이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습관이 된 걸까. 자유로움을 꽤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하지만, 제주도를 갔다 온 이후로는 제주의 그 길, 그 바다, 그리고 그곳에 함께 있던 우리가 큰 힘이 된다.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게 하고, 그때 모은 에너지가 좀 더 나를 안정되게 한다. 제주도는 그렇게 생각할 시간을 나에게 준다. 마치 곁에 있는 것으로도 힘이 되는 하쿠처럼.
우리의 시간은 짧고 소중하다. 그만큼 소중하고 진중한 것들을 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 순간 동안 그 자신으로 지내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마치 순수하고 귀여운 하쿠가, 어느 순간 매우 교활하고 가식적인 자의 꾐에 속아, 당나귀로 변하는 피노키오처럼 변하는 건 상상만 해도 슬픈 일이다. 그 때문에 제페토는 고래의 뱃속에까지 들어갈, 그럴 슬픈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남은 생애 동안이라도, 나는 나 그대로, 쿠도 쿠 그대로 남은 시간을 함께 행복하게 잘 꾸려나가 보자고 다짐하게 한다. 한 달 동안 우릴 품어준 제주도처럼, 나는 개성 있는 그 섬에 왠지 모를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