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다. 무거운 질량이 나를 깔아뭉개고 있다. 이 무거운 질량은 점점 면적을 넓혀 나를 짓누른다. 악몽인가?
눈을 떴다. 질량의 정체는 하쿠였다. 하쿠는 지긋이 나를 내려다본다.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쿠의 점심 산책 시간이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쿠의 방광은 예상대로 커져있었다. 나 또한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의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의 불편함은 고려대상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얼른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쿠의 하네스를 채웠다. 미안해. 산책 가자.
뭔가 불만족스러우면 깔아뭉개기 전문
쿠는 산책을 나와서도 어딘가 못마땅하다. 몇 걸음 가려고 하지 않고, 소변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 누나를 쳐다보기를 반복한다. 아니 쿠 뭘 어쩌라고?! 결국, 쿠는 발걸음을 돌려서 주차공간으로 간다. 쿠에게 "빵빵"이라고 불리는 차 앞에서 나를 돌려보았다. 그제야 어젯밤 하쿠랑 한 약속이 생각났다. "쿠야. 내일은 빵빵 타고 멍멍이 친구 보러 카페 가자~!" 이 녀석, 원하는 종류의 산책을 가기 위해서 소변도 참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름 끼치게 놀랍다. 가끔씩 저 작은 두뇌는 상당히 목표지향적이고 때에 따라 매우 효율적으로 잘 굴러가는 편이다.
원하는 것이 충족되었을 때의 만족스러운 웃음
쿠가 이렇게 빵빵을 타고 카페로 가고 싶어 하는 까닭은 제주에는 반려동물 카페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현지 분은 제주 동쪽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애견 동반이 적다고 하셨지만, 한 달 살기를 하는 우리에게 이곳은 반려동물 천국이다. 카페뿐 아니라, 식당, 펜션 심지어 옷집과 상점까지 원래 살던 곳에 비하면 반려동물 동반 가게는 흐르다 못해 넘쳐나는 것 같다. 이런 제주 카페에서 하쿠는 친구들을 만난다. 한때는 제주도의 유기동물(문제는 심각하다.)이었다가 어느덧 한 카페와 책방의 주인장이 된 강아지들, 고양이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또는 자신처럼 엄마와 아빠를 따라 놀러 온 강아지들과 친구가 된다. 쿠는 순하지만 세모로 선 귀 때문에 토끼같이 소리에 예민하기도 해서 짖지 않는 친구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짖지 않으면서 자신을 좋아하는 기색을 열렬히 보이고 때론 힘겨루기와 같은 놀이도 같이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친구 사귀기가 여간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하지만 꼭 그 대상이 멍멍이가 아니더라도 좋다. 사람을 좋아하기도 해서 자신을 예뻐해 주는 행인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꼬리 흔드는 편이기도 하다(오래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때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기도 해서 누나가 부끄러울 정도로. 또한 제주 카페에서는 반려인이 반려인 또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과도 만난다. 나는 직업이 수의사이지만 집에서는 쿠의 누나이다. 그래서 그런 교류가 재미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다."동물 사랑"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이들이 주는 삶의 안정감과 행복 때로는 그 누구보다 도덕적이기까지 한 순수하고 선한 마음은 이들과 동행함에 따라 온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은 이 감정을 공유하기 힘든 것은, 남극 펭귄과 북극곰이 열대과일의 여왕이라 불리는 망고스틴의 맛을 경험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월정리 부근 카페 '씨닉'에서 만난 진순이.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반려동물 동반 카페가 너무나도 신기했다. 카페인데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있다고? 여기가 유럽인가? 카페 사장님이나 손님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귀여운 쿠가 개성 있는 공간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풍경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쿠는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스며들었고, 지금 이 글을 정리하는 내 옆에서도 어색하지가 않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반려동물이 이렇게나 많은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반려동물 동반이 불가능한 카페가 더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제주에 와서 느꼈는데, 가게 속의 쿠는 어떤 공간이든 보통 잘 어울리는 편이다. 쿠는 조용한 편이라서 가만히 앉아있기를 잘하기도 하고, 시바견이지만 카페에 가는 경우 옷을 입고 가서 털도 적게 날린다. 이제는 팁이 더 늘어서 카페를 갈 경우 쿠의 담요를 가져가기도 하고, 쿠가 못 먹어서 너무 애간장이 타는 것 같으면 작은 간식(저 알레르기 사료)을 챙기기도 한다. 그리고 나 혼자 예쁜 공간에서 일을 하는 동안 집에서 애타게 기다릴 쿠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채로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가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귀여운 쿠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유토피아에 가깝다. 아직도, 개를 가게에 들인다니!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도의 여러 가게에서 시험해본 결과 에티켓을 잘 지킨다면, 반려동물 동반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쁘고 감각적인데 바삭한 포르투칼식 에그타르트가 별미인 카페 '아줄레주'
제주에 지내면서 반려동물 동반 카페나 책방, 상점을 가는 팁이 늘어난다. 대부분 추천받은 곳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제주의 공간은 외면과 내면이 매우 훌륭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외부의 자연환경 (바다 풍경, 돌담 풍경, 한라산과 오름 등등)과 사장님의 개성으로 꾸민 내부의 환경은 매우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즉, 외부는 창을 통해 내부와 연결되고, 바다, 돌담, 꽃 등 제주스러운 무언가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의 풍미를 돋운다. 이러한 곳들이 충분히 넘쳐난다는 것은 제주의 주요한 매력포인트 중 하나이다. 자연 풍경과 독립적인 아름다운 공간들은 충분한 검색을 통해 선택하여 갈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반려 동반이 가능한가, 쿠가 편하게 앉을 만한 자리가 있는가? 뷰가 예쁜가. 공간의 개성이 있는가. 맛있는 메뉴가 있는가를 주로 테마로 검색을 하고, 모든 판단은 주관적이다. 따라서 내가 이 글에 첨부할 카페들 또한 나의 주관에서는 100점에 가깝지만, 사람에 따라 판단은 다를 일이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아! 혹시나 싶어 적는 것은, 모든 것은 내 돈 내 산! 이문구가 현대사회에서는 중요한 것 같아 첨부한다.) 또한 반려 동반이 아니더라도 예쁘고 편안한 휴식공간은 많다. 하지만 대학시절 한 교수님의 말씀처럼 "그렇다 한들 강아지들을 기르는 행복을 포기할 수 없으므로..." 나는 제주의 애견 동반 문화를 사랑한다. 또한 하쿠도 이곳에서 아직은 미숙하지만 강아지 친구들과 사귀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장병증에 대해 평생 케어를 해주어야 하고 가족을 사랑하여 이를 필요로 하는쿠는 여전히 우리 가족이 최우선이지만,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더욱 사회성이 길러지고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복합 문화공간이자 카페인 '더 리트리브'와 너무나도 순하고 착한 리트리버 친구.
이렇듯, 제주가 반려동물 동반 문화가 정착된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모습에는 이면도 존재한다. 많은 카페와 상점의 마음씨 좋은 사장님들은 유기동물을 키우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자꾸 눈에 밟히는 작고 예쁜 생명을 외면하지 못한 예쁜 마음씨 덕분이다. 제주에 유기동물이 많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문제이기도 하다. 진돗개처럼 따라올까 걱정이 드는 건지, 제주에 동물을 유기하고 가는 사례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개인과 가정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강아지의 슬픔과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것이고. 제주까지 와서 동물을 유기하는 경우는 또 무언가?! 초등학교 시절,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멀어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한 말은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되어 아직도 내 마음을 찌르고 있다. "잘해주다가 멀어지는 게 제일 나쁜 거래."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슬기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후회가 된다. 친구 사이에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도 이렇듯 마음이 쓰이는 일인데, 한 때, 그 아이의 가족이 되어 세상의 전부처럼 아껴주다가 유기하는 것은 평생 씻지 못할 죄이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유기동물의 '유기' 즉, 남길 유, 버릴 기 는 그렇게 무거운 단어이다.
제주 풀무질 독립서점과 광복이도 사연이 깊다. 너무나도 좋으신 사장님 내외분.
나의 제주 한 달 살이에 맞추어 친한 언니들과 제주도에서 모였다. 캄캄한 밤에 렌터카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던 세명의 여자들은 입춘이 옴에 따라 겨울잠에서 깨어 도로 위로 뛰어드는 개구리에 대해 논쟁을 했다. 언니 A는 운전자였는데, 전조등 위로 갑자기 폴짝폴짝 뛰어드는 개구리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개구리는 한 마리가 아니었고 언니 A는 길을 조심스럽게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구간마다 개구리가 뛰어들어 심장을 졸이게 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언니 B는 밤눈이 어둡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까만 물체들은 돌이나 낙엽과 같은 것들이지 개구리가 아닌 것 같았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나 C는 언니들의 논쟁을 재밌게 듣고 있었다. 한적한 도로 위에서 우리는 결국 멈추어 차에서 내렸다. 꺼먼 그림자를 가진 작은 물체에 다가가려는 찰나, "왈!' 하는 짖음이 들려왔다. 언니 B는 저 뒤의 가로수에서 한 무리의 들개들을 발견했다. 언니 B는 그 무리의 들개들 중 우두머리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결국 차에서 한걸음도 멀어지지 못하고 그대로 차를 타고 출행랑을 쳤다. 하지만 나 C는 한 무리의 들개들을 보진 못했다. 그저 저 멀리 한 마리의 개가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생명의 위험은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었고, 결국 우리는 서로를 아무도 믿지 못한 채 돌아왔고 심장 쫄깃했던 경험은 두고두고 웃음 포인트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말로만 듣던 제주도 들개들, 유기견들이 모여 서로 무리를 이루어 살아간다던 들개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포인트가 되었다. 제주도에서 군 복무를 대체하는 한 과정인 공중방역 수의사(공방수)를 하는 한 후배는 실제로 제주도에서 유기견을 위한 자연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 친구는 또한 공방수인데, 들개들이 밤이면 무리 지어 내려와 소를 잡아먹기도 해서 문제라고 했다. 이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 무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들개 무리들이 밤에 내려와 우리를 향해 경고를 보내던 그 짖음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삶의 고단함에 인간으로서 미안했다.
제주도에서 가족과 동행하는 많은 행복한 강아지들은 관리받고 사랑받는 강아지들이다. 반면 들판을 떠도는 이들을 생각하면 강아지들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하쿠를 맞아 삶에서 얻은 것이 더 많은데, 더 많은 가족이 사랑스러운 천사들을 맞아 소중히 시간을 보내고 더욱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경험을 하기를 소망해본다. 제주의 반려동물 동반 문화에서 배운 것처럼, 벽을 허무는 것은 각자의 노력과 주의가 필요하다. 때로는 반대와 선입견에 부딪힐 수 있지만, 아름다운 경험을 하는 이들은 삶에서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 세상에는 해보면 생각보다 간단하고 쉬운 문제들도 많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과 경계를 조금 낮추는 것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힘을 가진다면 우리는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결론은, 반려동물 동반 문화가 더욱 확대되었으면 하고, 유기동물과 같은 슬픈 사회문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나는 반려동물을 대하는 이들의 진심 어린 마음에 많은 것을 배웠다.
하쿠를 너무 예뻐해주신 반려인 사장님이 계시는 '여름문구사'와 '아코제주'
무밭 뷰를 볼 수 있는 가는곶세화. 사장님 내외분이 하쿠를 너무 이뻐해 주셨다. 하쿠는 기분이 좋아 자신감이 늘어났다.
강아지 용품점 겸 소품샵인 심바네 의상실. 덩치큰 심바가 귀엽고 가게 앞에 펼쳐진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
비오는 해변을 통창으로 볼 수 있는 '랜딩커피'
너는 나에게
작고 소중한
존재.
그 외에도 쿠를 데리고 가지 못한 곳도 있지만, 반려동물 동반 가능한제주동쪽 인근 카페들
<귤꽃다락>
<카페모알보알>
<아뽀밍고>
<서양차관>
<난산리다방>
등등..!!
Tip!
● 반려동물 동반 시 주의사항 (캐리어 또는 개모차 필수인지, 매너밸트를 해야하는지, 강아지가 가면 안되는 곳이 있는지, 등등 방문하고자 하는 카페에서 지켜야할 주의사항)을 숙지하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