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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Oct 10. 2022

내가 별이 된다면 남길 말들

코로나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코로나 시국에 인터넷에는 이런 움짤이 유행이었다. 지뢰가 터지는 누런 황폐 속을 달리는 웃픈 아이. 남들은 다 걸려도 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4월에 확진했다.


주변에 친구들이 확진되고 한 집에 사는 부모님이 확진되어도 괜찮았던 터라 초면역자라고 다행이라 생각했던 찰나 확진했다. 확진 초기에는 목이 텁텁하고 마른 정도라 안심했다. 이 정도면 참을 만 해. 내 착각이었다. 온 세상에 떠돌던 기사처럼 코로나는 얕잡아 볼 상대가 아니었다.


날이 거듭되면서 목이 말라갔고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잠을  때면 목이 찢어지듯 마른 느낌 탓에 일어나 수분을 보충했다. 백신을 맞기 전에 써둔 유서가 이번에 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게 아닌지 생각했다.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세상을 뜬 기사를 보며 나도 그런 케이스가 될 수 있으니 가족에게 유서를 남기기로 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일지 모르는 내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온다면? 계획형 인간으로서 그런 순간을 대비하기로 했다. 그게 유서였고 나의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고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족이 알았으면 하는 생각에 메모장에 유서를 적었다.


누나한테는 용기와 시간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미 지난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니 아쉬움은 잊도 내일을 기대하라고 알리고 싶었다.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나중에 다시 사회인이 되는 게 두렵겠지만, 용기내고 도전하길 바란다. 세상에는 막다른 길이 없으니까. 어떤 경우든 솟아날 구멍이 있고 조금 힘들더라도 언젠가 행복의 낙원에 도달할 거라 믿기 바란다.


소중한 친구에게 남긴 말은 본인한테 집중하길 바란다는 거였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 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이겼다고 한들 그 위로 날아다니는 놈을 보게 될 터이다. 무한한 경쟁보다 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꾸준히 걷다 보면 최고가 되어 있을 거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넌 그 자체가 빛나는 존재니까. 남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네가 잘하는 걸 꾸준히 연마하다 보면 베테랑이 될 테고 부자가 될 거니까.


끝으로 부모님께 남길 유서는 좀 길었다. 정말 코로나가 나의 생명을 앗아간다면 나의 유서를 보고 너무 슬퍼하지 말길 바랬다. 나를 키워줘서 너무 감사하지만, 제대로 효도하지 못하고 먼저 떠나게 되어 너무 미안하다는 마음을 담았다.




엄빠에게:


엄마,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 정말 고맙고 행복했어. 항상 묵묵하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빠는 젊음과 건강을 우리에게 줘서 고마워.  곁을 함께 하며 현모양처로  양육하신 엄마도 고마워.


어릴  궁핍한 동네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젊었던 엄빠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네. 지금도 좋지만 그때가  좋았던  같아.


밥은 논밭에서 수확한 걸로 지어먹고 옷은 예쁘지 않아도 따뜻했지. 마을은 작아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뭐든지 즐거웠고 신났어. 저녁이면 엄마랑 아빠가 마을회관 앞에 모인 동네 주민들과 노래 틀며 춤췄던 것도 기억해.


 세월이 어느새 흘러 아무것도 모르던 애가 어른이 되었네. 천진난만했고 장난기 많던 소년이 성숙하고 모든 처사에 신중한 서른 살이 되었네.


지구온난화로 여러 문제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젠 살아있는 동안은 하고 싶은  하면서 즐겨. 사치품을 한바탕 구매할 재력은 없어도 먹고 살만 하잖아.


내가 먼저 떠나게 되면서 보험금 빼고는 남기는  별로 없네. 테이블 위에 최근  달간 모은 복권이라도 확인해 .  사이 당첨된 복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금액이  되면 소중한 친구한테도 인당 5000  정도는 나눠줘라. 남은  매형  갚고 나서 엄마랑 아빠가 알아서 .


엄마랑 아빠한테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많이 아쉽네. 이제는 자식 말고 본인의 인생에도 관심 가지고 남은 인생 즐겨. 내가 자식으로서 충분한 효도를 하지 못하고 떠나지만,  그동안 하고 싶은  하고 먹고 싶은  먹고 보고 싶은  보고 떠나는  같아.


조금 아쉬운  있다면 내가 전생에 유럽 사람이었던  같아. 자꾸 영미권 문화와 예술에 관심 가더라. 이번 생은 그쪽 나라에서 살아보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에 걸려. 다음 생은 다시 유럽권에서 태어나야겠어.


엄마랑 아빠는 이번 인생 실컷 즐기고 아주 아주 늦게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음 생은 우리 모두 유럽권에서 만나자. 내가 엄마, 아빠의 부모가 되어 다시 만나자. 이번 생은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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