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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Dec 13. 2022

이 순간은 새로운 시작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본 소감

KTX 열차에 몸을 싣고 부산역을 향해 달린다. 새 직장에서 신고식 하는 날이 마침 부산에서 워크숍 하는 날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꼭 오고 싶었던 회사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밤이 흘렀는가? 전 직장에서 6년이나 머물면서 성장한 덕분에 또 다른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다. 설렘과 흥분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동시에, 뜻밖에도 미미한 우울함이 한 스푼 곁들여진다. 무엇 때문일까?


최근에 극장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를 봤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말기암 판정을 받고 몇 달 뒤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적는 아내, 애석하게도 남편은 아내가 자업자득이라며 핀잔을 쏟아냈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못내 서운함을 느낀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가 남편과 이별하는 과정을 담담한 영상으로 담아냈지만, 슬픔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내가 남편과 같은 처지라면 어땠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고 새 삶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예전부터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고 다짐하는 밤이면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 설렘과 긴장의 연속으로 머릿속의 생각들이 마구 뒤엉키듯 복잡해졌다. 분명 좋은 일인데 흥분한 탓인지 기분이 묘했다. 그건 아마도, 모든 새로운 시작에 앞서, 기존에 유지되었던 무언가를 끊어야 하는 이별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건 좋지만, 그걸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른이 넘어서야 어떤 것에 눈이 뜨였고, 때로는 체념할 법도 배웠으며 이제는 목표와 목적의 다른 점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20대는 대체 뭘 하며 보냈는지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때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그때 조금만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방황했던 20대였고 가난했던 20대였다. 지난 일은 잊고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멈추지 않는 시간처럼 우리의 인생은 늘 새로운 시작이라 볼 수 있다. 곧 다가올 1초의 순간을 위한 시작이다.


결국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는 제목처럼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언젠가 헤어질 관계, 언젠가 사라질 순간,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소중하게 다루기를 조언한다. 지금 이 순간 자체가 새로운 시작이니까.


때로는 아득하게 먼 옛날의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 정말 별것도 아닌 것에 서러워 펑펑 울었던 게 진짜 경험했던 기억인지 조차 의심할 때가 있다. 그래, 인생은 정말 별 아니었다. 잊혀버리고 싶은 것은 어젯밤의 꿈속에 버리기로 했다. 나의 눈앞에 눈부신 미래가 있는 걸, 굳이 쓰레기를 안고 끙끙댈 필요는 없다.



[에필로그]


나는 인생 자체가 운명대로 움직이는 거라 믿는다. 나의 동의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운명이었고, 느긋하게 살다 자연사로 돌아가든 사고사로 세상을 떠나든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차가운 마인드가 아니냐고 해도 상관없다. 아픈 걸 대신 아파줄 수 없고 사고를 예방해 줄 예지력도 없다. 다만, 내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곧 떠나야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빈자리로 인해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인연이고 운명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이별도 운명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숙제다. 아파봤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길 바란다. 울어봤으니까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슬퍼 말길 바란다. 적어도 너무 오래 슬퍼 말길 바란다.


인생은 운명의 수레를 타고 달린다. 어떤 정거장에 영원히 머물지 못하고, 한번 떠난 정거장도 언젠가 다시 방문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이제 또다시 새로운 여정을 떠나야 하니 고개 돌려 손을 흔들어보자. 밝게 웃으며 뜨거운 안녕을 외치자. 운명이란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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