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솔 Oct 14. 2022

불타는 사랑보다 잔잔한 사랑을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을 본 소감

아시아 퀴어영화 중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다. 두 주인공이 잘생긴 까닭도 있겠지만, 스토리 자체가 아름다운 한편 안타까움이 가득해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자꾸 떠오르게 되는 작품이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인 만큼 여러 번 돌려보면 그 속에 깃든 작품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3회 차 관람을 도전했는데 역시 중반부에서 스톱하게 되었다. 그 뒤 파트의 내용이 너무 쓰라리고 현실적이고 슬픈 나머지 울 것 같아 모니터를 꺼버렸다.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난다. 풋풋한 나이에 서로 호감을 갖게 되고 사랑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스토리로 이어진다. 긴가민가했던 마음은 같이 겪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츰 굳어진다. 분명 사랑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는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았다(지금도 썩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의 갈등이 깊어지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린다.


사랑이란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 묻고 싶다. 분명 사랑하는 사이인데 마음을 확인했는데 때 아닌 곳에서 걸림돌이 날아와 앞길을 막는다. 그럴 때는 누굴 탓해야 하나? 한 사람을 사랑한 죄? 아님, 나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죄? 무언가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꼭 고비를 겪어야만 하는 건지 묻고 싶다.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을 확정한 뒤로 여러 번의 연애를 경험했다. 나를 좋아해서 다가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먼저 대시했던 상대도 있다. 비주얼이 마음에 들어서 사귄 경우도 있고 같은 취미를 갖고 있어 사귄 적도 있다. 사귀었던 시간만큼은 사랑이라 생각했다. 다만, 그 사랑이 오래 가진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돌아오지 않아서, 잘해주는 걸 당연하게 받기만 해서,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여서, 어리다고 자주 칭얼거려서, 그냥 혼자 일 때가 더 편했다고 해서 우린 헤어졌다. 사회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포용도가 커졌다한들 당사자들의 연애란 결코 객관적인 요소에 영향받는 게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인격이 있다.  결을 조금씩 맞춰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 알아가는 시간, 서로 맞춰가는 시간 말이다.


다만, 그때는 소중함을 잘 알지 못했던 나이다. 깨처럼 쏟아지는 사랑을 소중하게 다루지 못했고 둘이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한 걸 아끼지 못했다. 마냥 영원할 것만 같아 흐지부지 보냈던 기회를 조금은 만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사랑은 언제 즘 찾아올까? 떠나버린 20대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때보다 더 신중하고 보드랍게 새 사람을 알아가고 싶다. 조금  오래 보면서 둘만의 청춘을 이어가고 싶다. 찬란하게 웃는 청년들의 미소는 앗아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로움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