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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Jan 18. 2023

내 인생에 몇 퍼센트의 믿음이 남았을까?

리플리증후군¹에 당한 사건의 전말을 나누며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만드는 게 드라마틱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까? 학창 시절에는 하루빨리 졸업하고 어른이 되고 싶었다.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기대에 하루하루 버텼다. 그렇다고 졸업해서 마냥 행복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행복보다는 슬픈 눈물, 섭섭한 눈물, 억울한 눈물을 더 많이 흘렸던 기억뿐이다.


현실 세계가 교과서에 쓴 것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잔혹할 때가 있고 무정한 세상이란 걸 깨달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히어로물이나 힐링 드라마를 보면서 ‘그래, 아직 살만해. 엄청난 영웅이 존재할 거고 착한 사람이 도와줄 거야.’라는 조금의 희망을 품고 살았다.


평생 함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연인의 외도에 상심해도, 믿었던 상사의 동기부여와 떡밥이 삶을 바꿔주지 못했어도, 죽음을 핑계로 내 감정을 이용할 사기꾼이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애에 실패해도 상대방의 문제지, 내 탓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직장에 실망해도 커뮤니티의 문제이니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도 직장도 아닌, 일상에서 연민의 감정을 이용당해 보니 정신적 타격이 심각했다. 연이은 배신과 이용을 겪었더니 삶이 송두리째 뽑혀 나간 기분이다.


이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이 더 있는 걸까?


서른 넘어 첫 동정심 유발 사기를 당하다

성인이 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기고 조금 더 신중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아무렴, 이제는 어른인데 그 정도 판단력도 없을까 봐? 부족했다. 치밀하게 작전을 세우고 거짓말로 속이고 연기를 했으니 순진하게 믿었던 내가 얼마나 바보처럼 보였을까? 관심을 받기 위해 시작했다지만, 나중에는 그 쾌락에 빠져 부계정을 만들어 사촌인 척, 부모인 척 연기하면서 본인의 메서드 연기에 흠뻑 빠져 신이 났겠지.


계정에 올린 가짜 이미지와 응급 문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슴을 졸이고 밤을 설쳤을지 모르겠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미지로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관심과 위로를 받으며 성취감에 빠졌겠지. 온라인을 통해 사랑받고 선물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이 더 있을까 싶었겠지.


거짓말의 수위가 점점 높아졌고 <VR 휴먼다큐멘터리 - 너를 만났다> 제작진에서 연락(이것도 거짓말이었을까?)이 왔다고 했다. 본인이 찍을지 말지 고민 중이라며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 어떤 이는 지지했고 어떤 이는 찍지 말라고 권유했다. 나중에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가슴 아플 것이라는 이유다. 심사숙고해 보겠다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프로그램을 안 찍는 게 아니라, 찍으면 안 되는 거라 거절했겠지) 결국 찍지도 않을 거면서 우리한테 이 얘기를 꺼냈다는 건, 본인이 얼마나 주목받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각인시킬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설정대로라면)에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았다. 롯데월드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데이트도 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 여행도 다녀오고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내년에는 책까지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걸을 수 있을 때, 아직 컨디션이 좋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함께 해주고 싶었으나 액티비티를 즐기거나 장거리 여행은 아무래도 걱정되었다. 마침 출판사에서 다이렉트 메시지로 미팅 요청(이것도 거짓말이었을까?)을 받았다 하여 우린 함께 공저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주 2편씩 카페에 글을 올렸다. 제시간에 맞춰서 임무를 완료한 작가가 있는가 하면, 하루 이틀 늦어지는 작가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화방에서 톡 쏘는 말로 그 작가를 겨냥했다. “얼른 써”라고. “왜 그렇게 굼뜨냐?”라고 강제로 완성하기를 재촉했다. 어느 순간, 우리의 호의가 그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왠지 모르게 부담만 늘었다. 그래도 그의 글을 읽으며 우린 눈시울을 붉히고 감정을 추스르고 글을 완성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살고 싶은지, 우리가 그 아이랑 지내면서 느낀 감정과 가르침(지금은 헛웃음만 나온다)을 글로 담았고, 그의 간절함이 담긴 글을 보면서 눈물도 꾹 참고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분류한 섹션을 채웠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촌 형님의 언행 불일치가 보이기 시작했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사람의 안색이 괜찮아 보일 뿐만 아니라. 종일 같이 있어도 처방 약 먹은 적이 없었다. 수상했다.


진실을 알게 된 날은 11월의 두 번째 토요일이다. 하늘은 우중충했고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올 기세였다. 몇 개월간 그 아이한테 농락당하고 동정심 유발형 사기를 파헤친 날이다.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였으면 의심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죽음을 핑계로 거짓말할 줄은 상상하지 못한 거겠지. 인제 와서 생각해도 치가 떨리고 분하다.



진실을 알고 나니 소름과 두려움만 남는다

진실을 알기 전까지, 그 아이는 아침이면 안부 문자를 보내왔다. 어젯밤에는 응급실에 갔다던 사촌 형님의 스토리에 밤새 잠을 설쳤는데, 이튿날에 깨어나고 핸드폰을 켰을 때 도착한 그의 문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도 무사했구나.


아직 떠날 때가 아닌 거라 싶었다. 아침에 받는 문자와 저녁에 퇴근하면 받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우린 점점 친해졌다. 주말이면 아는 지인의 카페에 모여 같이 수다를 떨고 공저 출판의 계획도 차츰 이뤄나갔다.


출근 전에는 운동도 해야 하고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데 매일 아침 그의 문자에 답장해야 하는 건 부담되었다. 해서 아침에 그의 문자가 와도 읽지 않았다. 며칠째 그랬더니 아침 문자 도착 시간이 달라졌다. 신기하게도 내가 인스타그램의 최신 피드를 스크롤하고 나면 그의 안부 문자가 카톡 하고 울리는 게 아닌가.


형, 어젯밤에 잘 잤어?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고 약간 소름이 돋았다. 왜 하필 그 타이밍에 내가 깬 것을 알았을까? 문제는 인스타그램의 [활동 상태 표시]에 있었다. 습관적으로 깨어나면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던 습관이 문제였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진 않아도 수시로 나의 활동 상태를 알았다. 그 뒤로 나의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활동 상태 표시 안 함]으로 설정되어 있다.

(인스타그램 어플 – 설정 - 개인정보 보호 - 활동 상태 -에서 변경할 수 있음.)


일전의 온라인에 올린 피드 사진을 보고 사용자의 출몰지역과 일상 습관을 분석하고 스토킹 당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온라인이 편리를 가져다줌과 동시에 악용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드라마나 기사에서만 봤던 사건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귀갓길이 걱정되었다. 그의 거짓말을 밝히기로 글을 올릴 때도 해코지당할지도 모른 생각에 망설였지만, 더 큰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사건의 진실에 대해 글을 올렸다.

내 인생은 몇 퍼센트의 거짓이 섞여 있을까? (brunch.co.kr)



내가 받은 피해는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그 사건을 겪은 뒤로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일단 의심했다. 어떤 목적으로 다가오는 거지? 이 사람은 참된 사람인 걸까, 관심받기 위해 꾸민 사람인 걸까? 나한테서 얻고 싶은 게 무엇이고 내가 조심해야 할 게 무엇인가?


새로운 직장에 이직하고도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자제했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도 상대방의 과거가 의심되고 늦은 연락에도 생각이 많아진다. 어쩌다 다시 찾은 잠실 백화점, 어디선가 들리는 롯데월드 광고, 맛집으로 유명한 중국식 샤부샤부, 무엇보다 우리가 자주 모였던 카페… 그 아이랑 함께 지냈던 기억이 전부 거짓이고 악몽처럼 떠오르는 정신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드라마에 자주 나올 법한 피해 보상 중에 ”정신적 피해“보상의 청구 이유를 인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왜 정신적인 피해 보상이 있는지, 그 피해란 어떤 것인지. 신체적으로 남긴 흉터가 없지만, 평생 심적으로 남을 상처는 연관 단어나 장소만 스쳐 지나도 떠오른다.


2022년 11월 12일, 평생 잊지 못할 날로 남을 것이다. 그 아이의 진실을 밝힌 날이고, 때아닌 폭우가 쏟아져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보면서 멍 때린 날이다. 피해자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그 일을 잊어버리자고 전시회를 보면서 딴생각하게끔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그다음 주에는 미술치료를 받으면서 마음속의 분노를 표출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상실감보다 강한 마음을 굳센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그사이 반성하기는커녕 몇 안 되는 그의 편을 끝까지 속이려고 시나리오를 짜고 동정심을 이용했다는 게 완전히 들통났다. 그 아이가 활동했던 커뮤니티는 발칵 뒤집혔고 그에 따른 죗값을 치르라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생지옥이란 이런 거겠지. 가해자도 피해자도 고통의 굴레에 빠졌다. 피해자들의 분노는 극치에 달했고 가해자의 여러 차례 사과에도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당할 만큼 당했고 말을 바꿔가며 사람을 속였으니 사과문마저 시나리오의 일부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느 정도 평정심을 갖고 이 사건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미 그 충격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진 못했어도, 더 이상의 시간 낭비와 피해가 나한테는 없길 바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렇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다.




에필로그: 가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

그동안 행복했니? 그동안 즐거웠니? 그걸로 만족하고 부당한 수법으로 얻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바르게 살길 바란다. 시한부 판정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우리가 잘못 알고 정말 내일모레 하는 환자를 매몰차게 버렸던 게 아니었을지. 너에게 실망하고 인연을 끊고도 네가 진심 어린 반성을 하고 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랐다. 혹시나 타격을 받고 자살이라도 할까 봐 너의 친구에게 “관심 좀 가져 주”라고 메시지를 보내 당부했다.


한평생 둘도 없는 인연을 네가 소중히 여기지 않은 업보가 아닐까 싶다. 네가 만든 거품의 성이 와르르 무너졌으니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해 보면 어때?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재능을 기부하며 착하게 살면 좋겠다. 봉사활동을 자주 하고 자신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 너의 죄를 조금이나마 용서해주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새로운 소중한 인연이 다시 생겨나겠지.


베체트병을 치료하면서 정신과 치료도 받았으면 좋겠다. 치밀하게 거짓말을 이어가며 많은 사람을 속이고 마음 편하게 잠을 잤던 거라면, 그게 과연 올바른 짓인지 정신과 선생님의 치료를 받으며 더 이상 비뚤어지지 않길 바란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개과천선하여 선한 영향력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피해에 대한 죗값은 개개인과 하나씩 풀어나가길 바란다. 거짓말하면서 팔로워를 늘렸지만, 그때의 “시한부 아이”의 글들이 긍정적인 메시지로 위로받은 사람도 있으니 그런 방향으로 착하게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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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증후군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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