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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Dec 17. 2022

하얀색의 겨울과 병실, 그리고 내일

하얀색은 희망이다

겨울 하면 하얀색이 떠오른다.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어느새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며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병실, 입원하면 머물러야 하는 장소도 하얀색이다.


병실에 들어가면 왜 졸릴까? 사방이 닫혀 있어 감방 같은 느낌이라서? 그렇지만 칙칙한 분위기는 아니다. 그럼, 심심해서? 스마트폰만 있으면 온종일 할 수 있는 게 끝이 없다. 그럼, 왜 병실에 있으면 그토록 잠이 쏠려 올까? 어쩌면 꼭 겨울잠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바삐 살아온 날들을 보상하는 휴식 타임, 조용한 곳이라 뇌가 안식처로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병실에 대한 최근 기억은 작년 말에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했던 때다. 유방암 2기라 다행이지만, 항암치료 자체가 힘겨운 일이고 후유증으로 겪어야 하는 울렁거림, 탈모 스트레스는 제삼자가 위로한다고 해소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항암치료는 3주에 한 번씩 이어졌고 그때마다 엄마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코로나 시국이라 입원하기 전에 꼭 음성확인서를 보여줘야 했다. 10월부터 시작된 치료는 겨울이 다 지나갈 때까지 이어졌다. 엄마는 항암치료보다 코로나 검사가 더 무섭다고 했다.


병실은 밤이 되면 엄청 더웠다. 창가 쪽에 설치한 난방기를 밤새 틀었던 탓이다. 그리고 건조했다. 그런 날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가물가물하다. 병실에 있으면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으며 틈만 나면 잤던 기억뿐이다. 건강한 루틴을 지키려 노력했던 일상이었지만, 몸이 아파서 입원한 다음에야 건강의 중요성을 이전보다 더 절실하게 깨달은 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해 겨울은 엄마의 유방암 판정 소식을 듣고 한동안 방황했던 시기다. 평소에 잘 웃으며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던 엄마가 암이라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은 없었다. 요즘은 백세 시대라지만, 이제 60대 중반인 엄마에게 있어 백세시대는 어떤 통계에서 얻은 결론인지 참 웃기고도 슬픈 얘기일 거다.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쳤고 요즘도 꾸준히 항암 약을 먹으며 치료 중이다. 그해 겨울은 엄마랑 마음을 졸이고 기도하며 보냈던 기억뿐이다.


그때부터 내일은 하얀색이라 생각했다. 앞날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인 채 견뎌냈다. 그때의 내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하얀색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백지 같은 내일이라 생각하며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떤지 묻고 싶다. 살아가고자 견뎌낸 병실을 떠나고 요즘은 앞날을 어떻게 보낼지 차근차근 계획을 짜고 있는 엄마를 보니, 병마를 이겨내 줘서 고맙다는 생각만 든다.


올해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 서른 넘어야 이 세상에 진짜 태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10대까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 배우다 보니 바깥세상도 책 속 그대로라고 믿었다. 20대에는 배웠던 이론을 현실에 투영해 정답을 찾으려고 애썼으나 불가능했다. 같은 일이라도 수없이 많은 내적 가능성을 품고 있어 내가 택한 방식대로 해결되더라도 꼭 모든 사람이 만족한 솔루션이 아니었다. 해서 20대까지는 시행착오를 겪는 단계라 생각한다. 서른이 넘어서야 바른 일이 무엇인지 조금은 방향을 찾게 되었고, 어떤 인간관계는 시간 낭비라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40대는 어떨지 기대된다. 그때부터 진짜 청춘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다만, 그때까지 건강한 육체가 필요하겠다. 2050년에는 지구가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기대되는 한편 불안하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지 못해 멸망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더 이상 하얀색이 없을까 봐 두렵다. 나의 소중한 추억이 영영 사라지지 않게 하얀 도화지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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