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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Nov 22. 2023

우울증 처방전을 받았다

일단 가장 순한 용량이랬다

처방전을 받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이대로 약을 먹는 게 최선일까? 의문이 들었고 망설여졌다. 내가 이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지 되물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약을 언제 먹을지 고민되었다. 3종류의 알약 중에는 수면에 도움을 주는 약도 포함되었다. 의사는 취침 1~2시간 전에 약 먹기를 제안했다.


최근 들어 자는 것도 불안했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해도 되는지? 내가 먼저 자면 남자 친구가 서운해하지 않을지? 시끄러운 내 잠소리에 옆 사람을 방해하진 않을지? 항상 나보다 상대방이 먼저였다.


처방 약은 나의 수면을 보장하지 못했다. 한밤중에 몸을 뒤척여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새벽 1시쯤 되었다. 괜찮아, 더 자도 돼… 다시 잠에 들었지만, 뭔가 불안한 자세에 옆으로 눕자 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새벽 3시 반...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상태를 개선해 준 듯싶지만, 깊은 밤을 보장해 주진 못했다. 그렇게 뒤척이고 깨다 자다를 반복하며 날이 밝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리피프라졸의 흔한 부작용이 정좌부능이라는데 첫날이라 유독 심각했던 거 같다.)


처방 약 중 첫 번째 약은 잡생각을 줄이는 거라 했다. 어떤 사소한 일에 꼬투리가 잡혀 다른 감정이 떠오르고 그 감정이 떠올라 또 옛 기억과 그때의 우울감, 실망감... 무한 매칭되는 머릿속의 생각을 억제하는 약이라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깨어나니 신기하게도 어제 하루의 내가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해이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정 이입되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한다는 상황에 답답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두 번째 약이 우울감을 줄이는 약이다. 확실히 어제보다는 덜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부터 가끔 이기적으로 살아볼 계획도 꾸며봤다.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면 좀 편안해지겠지...


싶다가도 또 현실의 문제가 떠오르고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는 것에 다시 침울해졌다. 어두운 사무실, 반복하는 일상, 지지부진한 성과... 역시 원하지 않다고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것도 있다.


처방 약을 먹고 난 첫날의 상태다. 오늘 하루 더 먹어보고 몸이 이상하다고 느끼면 내일은 정신의학과에 문의해 볼 예정이다.




photographer: 박진솔

https://www.instagram.com/p/CfVRzueP8Gz/?igshid=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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