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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Nov 17. 2023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왔어요

양치하다 울컥 눈물이 났다. 요즘 딱히 안 좋은 일도 없었는데 온종일 울적한 기분이다. 내가 왜 이러지? 얼른 씻고 출근해야 하는데 움직임이 굼뜨다. 아, 출근하기 싫어서 기분이 가라앉나 보다. 글쎄 왜 출근해야 하지? 왜 돈을 벌어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거의 한 달 주기로 떠올랐던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답답해지고 막막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질리고 이런 나날을 살아봐야 무슨 재미가 있나,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냥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나중의 삶에 변화가 오기를 기대하며 참고 노력하고 달라져야 하겠지만, 바라는 미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기억 속의 어린 나는 천진난만하고 쾌활한 아이였다. 좋아하는 것이 많았고 싫어하는 것은 절대 수긍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언제부터 좋아하는 것은 멀어졌고 싫어하는 것은 참는 법을 익혔다. 그냥 나만 괜찮다고 하면 귀찮은 일은 없을 거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남들이 기대하는 유망주가 되었고 애어른이 되어 있었다. 속이 깊고 남을 헤어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잇값을 하는 사람, 집안의 자랑, 믿음직한 직원, 듬직한 남자친구... 타이틀이 많아질수록 실수하면 안 될 것 같았고 남들 기대 속의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사실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그들이 봤던 모습은 나의 일부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도 유치한 짓을 하고 싶고 자랑스러운 존재라도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업무적으로 잘하는 파트가 있을 뿐, 모든 프로젝트를 홀로 커버하진 못하고 듬직해 보여도 외로움을 잘 타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항상 나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생각했다. 집안의 늦둥이 사내, 애간장 안 태우는 모범생, 타고난 언어적 감각, 성소수자... 내가 생각해도 난 참 특별하고 멋진 존재였다. 하지만, 누군가한테 데고 누군가한테 실망하고 일상에 쪼그라들고 마음을 다쳐보니까 모든 게 부질없었다.


결국 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지극히 우울한 심정에 잠겨 집중력이 떨어졌고 어떤 일을 하다가 깜빡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쉽게 지나갈 거 같지 않았다. 오후 반차를 내고 정신의학과를 예약했다.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내가 왜 이러는지, 무엇이 먼저였는지 파헤쳐 볼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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