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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Dec 04. 2023

수면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일상에서 나를 독려해 주는 존재들

우울증 증세가 심각해지고 나서 마음 편하게 8시간씩 수면을 보장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이튿날 운동 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자는 내내 잠귀가 밝았다. 건강을 위해 운동한답시고 매일 이른 시간에 기상했지만, 하루 일과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무미건조했다.


게다가 운동을 힘들게 하고 나면 오후 근무 시간이 너무 졸렸다. 심리학과를 전공했던 친구나 정신건강의학과의 상담 선생님은 일단 최근 수면 상태에 대해 질문했다.


요즘 잠은 잘 주무세요?


글쎄, 잠을 잤으니 이튿날 운동할 기운이 있는 거겠지? 매일 12시 정도에는 잠을 자고 이튿날 7시 정도에 깨니까 최소 7시간 수면은 보장했으니 나쁘지 않은 거겠지?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피곤함은 늘 나를 따라다녔으니까. (그게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피곤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스마트워치를 사용 중이라면 [수면 설정]을 해봤을 것이다. 난 평일 23:30에 취침하고 이튿날 7:30 기상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와 저녁 먹고 방 치우고 빨래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금세 11시가 넘는다. 그렇다고 바로 취침하기에는 하루가 아깝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밀렸던 드라마를 보거나 숏츠에 정신이 팔린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회고해도 좋을 시간인데 말이다. 어떤 일은 잘했고 어떤 일은 앞으로 주의해야 할지 되짚어 보면 참 좋았을 텐데. 그냥 귀찮고 게을러 외면했다. 일상은 그렇게 비슷한 상황만 반복했고 삶이 지루해지다 의미마저 잃게 되었다. 그때 문득 나를 깨운 한마디가 있었다.


8시간의 수면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내가 호전되고 있는 건지, 아님 그냥 반응이 둔해져서 덜 예민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기상하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화면에 이 말이 떠 있었다. 어젯밤, 나는 자면서도 나 자신을 위해 목표 하나를 달성했다. 부질없어 보이지만, 어느 누구보다 뿌듯했다.


나를 위해 사소한 것을 이뤄낼 수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잘 지낼 수 있었다. 어쩌면 살아가는 이유가 이런 사소한 것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드라마 결말이 궁금해서, 예약한 맛집을 방문하고 싶어서, 재밌는 취미 생활을 하고 싶어서…


삶은 그렇게 조금씩 다르게 보였다. 직장 생활이든 감정생활이든 힘든 건 피차일반이지만, 나 자신에게 있어 사소하지만 꼭 완성하고 싶은 것이 있어 생명이 지속되었다. 그 결과가 휘황찬란할지 궁상맞을지 모르지만, 일단 끝까지 가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photographer: 박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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