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솔 Jun 05. 2024

동성애자는 정신병 환자일까요?

커밍아웃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남학생에게 호감을 가졌었다. 좋아하지만, 선뜻 고백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알아봤다. 차별은 생각보다 살벌했고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심지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면 정신병 질환으로 취급하며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등학교 일기장을 훔쳐봤던 누나가 그랬다.


고2 때부터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학업 고민보다 나를 힘들게 했다.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이성애자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망상이었다. 좋아하는 남학생이 눈앞에서 알른거리는 이상 여학생에게 관심이 생길 리가 없었다. 그때 확신했다. 내가 이성애자도 양성애자도 아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그래, 일단 멀리 떠나자.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 줄 수 있는 곳으로. 보수적인 환경보다 오픈 마인드의 도시에 가고 싶었다. 특히 내가 다닐 대학교는 포용도가 높은 곳이길 바랐다...



X랑 다시 연락을 하게 된 뒤로 우린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점심 메뉴를 찍어 보내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공유했고 아침이든 저녁이든 안부 문자를 보냈다. 회사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인생 선배의 말투로 그를 가르치려 들었다. 어쩌면 꼰대로 여길 수도 있을 텐데, 꽤나 진중하게 받아들이고 참고하겠다고 말한다. (왠지 모르게 지난 세월을 그럭저럭 잘 보낸 거 같아 보람을 느낀다.)


문자를 보낼 때는 콩깍지가 씐 달달커플이지만, 밖에 나가면 완전 딴 판이었다. X가 지인들한테는 커밍아웃하지 않아 밖에서는 항상 조심했다. 혹시라도 길을 걷다가 지인이랑 부딪히면 난감할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 때문에 늘 아쉬웠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거리에서 떳떳하게 손을 잡고 다니거나 커플티, 커플반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 사귄 남자친구들은 하나같이 쑥스러워하며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라고 티를 내며 데이트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숨기만 하면 영영 빛을 볼 날이 없을 게 아닐까?)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쟁취하는 단체나 행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 있었던 2024 퀴어문화축제도 중요한 일환으로 LGBTQ 성소수자들의 희망찬 미래를 응원하고 우리가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나’를 드러낸 퀴어축제 행진 - 경향신문 (khan.co.kr)


무엇보다 성소수자로서 대중들의 일상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홍석천도 좋고 동성애 커플 유투버들도 좋다. 이제는 동성애자라고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알려야 한다. 나 또한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암튼 여전히 조심성이 많은 그와 달리 나에게는 커밍아웃하고도 여전히 잘 지내는 절친들이 많았다. X랑 사귄 지 얼마 안 돼서 가장 친한 친구네 카페에 들러 그를 소개했다. 내 친구랑 X는 같은 MBTI 소유자인 데다가 둘 다 숏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 그날 오후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뿐만 아니라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알 게 되면서 X는 성소수자라도 꼭 숨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였다. 그러다 나중에는 제일 친한 여자 사람 친구 두 명과 위층에 사는 여성 동료한테도 커밍아웃하게 되었다. 다만, 우리가 사귄 지 3개월 만에 헤어지고 벌어진 일이다.




에필로그:

사실 초반에 X랑 사귈지 말지 고민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예전에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중학교 때 같은 반 여자애랑 2달 정도 사귀었다. 그냥 손을 잡고 일상을 공유하며 안부 인사 나누고 선물을 주는 정도? 엑스는 나랑 다르게 여자랑 섹스까지 경험했다. 다시 말해 그가 양성애자라서 고민했었다.


나는 서로 사랑하고 결혼까지 갈 수 있는 동성애자를 만나고 싶은데, 양성애자는 나이가 들고 부모님과 사회적인 압박을 받으면 언젠가 여자랑 결혼할 거 같았다.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동성애자인데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몰래 이성과 결혼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더불어 중국에는 부모님의 재촉과 사회적인 이미지 때문에 형식혼(形婚)을 하는 커플이 꽤 많다. 게이 신랑과 레즈비언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각자 따로 생활하는 식이다.

이전 03화 사랑은 늘 도망가는 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