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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Jun 08. 2024

불타는 20대와 시큰둥한 30대

나이가 들어도 풋풋한 연애가 그립다

전 직장을 떠나고 프리랜서로 지내던 시기에 글쓰기 모임을 2개나 가입해서 공저 작가로 책을 출간했다. 그중 에세이 위주로 등록한 글쓰기 모임에서 출간기념회를 열게 되어 X와 나의 절친이랑 셋이서 참석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 올린 글들도 백혈병 환자라고 사칭했던 사람과 지낼 때 썼던 글이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지내는 인생에 대해 많은 걸 느끼며 글에 녹여 넣었다.


지금 이 순간이 누군가가 간절히 바랐던 내일이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보내고 있다. 더군다나 창작하며 책을 출간하고 싶었던 내가 소중한 찐친, 남자친구랑 참석하게 되어 더욱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중요한 행사는 앞으로 동행자가 있어 든든했다.)


출간기념회에서 다른 작가님의 창작 과정, 개인사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삶이란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본인의 궤도에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우린 합정 부근의 스테이크 음식점에서 맛난 저녁을 먹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만들 영상 콘텐츠와 SNS 피드에 대해 열정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앞날을 기약했다.


토요일은 친구가 낀 데이트였다면, 일요일은 온전히 나랑 X만의 시간으로 알차게 보냈다. 우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에이피맵 리뷰> 전시를 보며 데이트했다. 작품이 많지 않았지만, 충분히 멋있고 젊은 작가들의 패기가 느껴지는 전시였다. 다만, X는 전시회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관람하는 내내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Pick 한 전시회가 그의 취향에 맞지 않았던 걸까? 괜히 신경 쓰이고 눈치 보였다.


그 뒤로 다른 전시회도 여러 번 관람했지만, X의 취향에 맞는 전시회가 별로 없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체념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둘의 취미생활에 간극이 있다는 것을. 그는 사진전 위주로 관심을 가졌지만, 관람하고 나면 꼭 이런 멘트를 한마디 붙였다.


이런 건 나도 찍겠다.
티켓 값만 비싸네.


티켓 값은 이미 지불했고 전시회도 이미 봤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따지고 싶었지만, 괜히 에너지 소모인 거 같아 함구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 있을 것이지 왜 같이 보겠다며 나섰는지 모르겠다.


평일에는 각자 일하거나 학교 가느라 바빴다. 그러다 주중 하루나 주말에 만나면 X의 자취방에서 불타는 시간을 보냈다. 다만, 성적 판타지에 대한 각자의 차이가 있고 컨디션에 따라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 X는 무심코 상대방의 기를 누르는 멘트를 자주 날린다.


형, 나이 들어서 힘들어?
난 하루에 8번도 가능한데.
XX 해주면 안 돼?
우리 그거 사 볼까?


성욕이 강한 X는 요구하는 게 많았다. 처음에는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했으나 피곤한 날이나 기분이 별로 일 때는 거절했다. 그럴 때면 X도 실망한 티를 내고 나 또한 그가 날린 비수를 맞고 마음이 상했다. 섹스를 이어갈 생각이 사라진 나는 핸드폰을 들고 게임이나 했다.


아직 성욕을 제대로 풀지 못한 X는 내가 옆에서 게임을 하든 말든 야동을 보면서 스스로 해결했다. 그때 이미 예상했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든지 꺼질 수 있다는 것을.


연애할 때 따져야 할 게 많다지만, 무엇보다 속궁합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X랑 사귀는 동안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게 응원해 주고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본인이 떠오르는 생각을 거침없이 그대로 내뱉는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배려해주지 않아 서운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이유로 헤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깊어 가고 있었다.


섹스 없이 플라토닉 관계는 가능할까?
낮에는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퇴근 후 문자 하는 건 괜찮을까?
평일에 만나기 피곤하니, 주말만 만나는 건 어떨까?


사귄 지 1달 만에 건강한 연애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절친 커플이랑 만나서 같이 보내기로 했는데, 일단 우리 둘 사이의 문제부터 어떻게 해결할지 시간을 가져봐야 할 거 같았다.




에필로그:

X는 원래 탑 역할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원래 올 역할로 연애를 여러 번 경험했지만, 바텀 경험을 별로 하지 않았다. 생애 첫 애널섹스 경험의 트라우마가 있기도 하고 바텀을 할 때 쾌락을 별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질 수술을 하고 난 뒤로는 바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수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바텀을 할 수 없게 된 거 같기도 하다.


https://m.blog.naver.com/queerdigger/22065249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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