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적 사고를 하는 디자인
통계는 어렵다.
죄다 숫자인 데다 어려워 보이는 수학공식들도 있다. 다양한 분석프로그램이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통계는 골치 아프고 섣불리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디자인이 통계가 필요하다니.. 지금까지 통계 없이도 디자인은 잘 진행되어 왔는데 굳이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통계를 경험해 본다면 디자인에 통계가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디자인 전공자가 논문이나 기획서, 보고서 등을 작성하면서 통계를 접해봤다면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이렇게 필요한 것을 왜 이리 외면하는지...
이제 디자인에 통계가 왜 필요한지 이유를 알아보자.
첫 째, 디자인 기획 시 전수조사를 할 수 없다.
거의 모든 통계가 활용되는 분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유다. 모수(母數)를 다 조사하고 알아볼 수 없기에 대표 샘플링을 통해서 모수를 추정한다. 여기에는 샘플링의 신뢰도, 유의 수준 등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20대 중반 여성을 위한 헤어드라이기를 디자인한다고 하자. 무슨 수로 20대 중반(중반의 개념도 모호하다)의 모든 여성을 인터뷰하거나 전수조사해서 그들의 성향이나 니즈를 알 수 있는가? 너무나 당연하다. 이렇게 당연한 논리를 지금까지는 디자이너나 클라이언트가 몇몇 소수의 인원을 통하는 직접조사나 혹은 이미 조사되어서 분석된 일반적인 통계자료에 기반하는 조사를 진행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는 사례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디자인 작업에는 조사단계가 들어간다. 그 과정을 통해 정량 데이터와 정성 데이터가 쌓인다. 조사방법이나 기간 등에 대해서는 차치하기로 하자. 아무튼, 이렇게 쌓인 데이터 역시 샘플링 데이터이다. 이 데이터가 전체 모수를 추정하는 데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지는 지가 디자인 방향이나 콘셉트 선정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런 데이터들의 탄탄한 기반 위에 디자이너의 창의성이나 클라이언트의 기술, 전략, 마케팅이 더해져서 디자인이 진행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대중이나 사용자의 심리나 니즈가 대중 트렌드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디자인을 진행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대한 좋은 디자인, 성공한 디자인이 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확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형식적인 시장조사나 소비자 니즈,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 등을 적당히 버무려서 스케치를 바로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돌아봐야 한다.
시장은 변한다. 사용자도 변한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처럼 지금 기준과 이후 기준이 바뀔 수 있다. 거기에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체계적인 기획 아니겠는가? 거기에 정량적 설득이나 신뢰를 둘 수 있는 것이 숫자로 치환되는 데이터이고, 무수히 쌓이는 데이터를 의미 있게 가공하고 해석하는 것이 통계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 시장조사 단계에서 콘셉트를 확정하기 전까지 신뢰 있는 데이터를 통한 가이드 확립이 중요하고, 그 수단으로 통계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둘째, 디자이너의 개인역량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교과서나 소위 스타디자이너들과 일반 디자이너들과의 차이를 일반 대중은 알기 어렵다.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방에 가만히 앉아서도 많은 디자인 결과물을 볼 수 있다. 그게 학생의 과제든 프로페셔널 디자이너의 결과물이든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발생한다. 결과물로만 보면 거 기거 거기라는 말이다. 크몽같은 사이트에서 제품디자인 모델링이 한 건 당 10만 원 하는 현상과도 접목된다. 날로 발전하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여기에 가속을 더한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는 뭔가 차별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량적이고 객관적 근거가 있는 디자인 제안이다. 거기에 경영마인드 등 여러 가지가 더 첨가되면 좋겠지만, 디자인에 있어서만 본다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역량에 기반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제품은 대부분 디자이너가 없어도 만들 수 있다. 초기시장이거나 이미 레드오션 같은 곳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선택이 디자인일 수는 있다. 디자이너가 굳이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베이스 위에 양념을 더하는 일이다. 그것은 프로세스의 마지막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 전 주기에 해당된다. 그전 주기동안 디자이너가 오로지 개인역량으로만 진행한다면 시장에서 실패할 확률이 늘어난다. 그 확률을 줄이는 것이 통계이다.
디자인하는 행위를 기준으로 볼 때, 사전기획 때 한 번, 중간 점검 때 한 번, 최종 평가 때 한 번이 아마 기본적으로 사용성이나 기능성, 심미성 등에 대한 자료를 받아 검증한다. 이 시기에 제대로 된 조사와 분석이 이루어지려면 통계적 마인드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마인드에서 그칠 게 아니라 기본적인 자료의 분석과 그 분석이 무엇을 의미하며, 이것을 디자인에 적절히 녹여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변별력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