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 튜닝의 끝은 순정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라면은 몇 종류일까 궁금했다. 인공지능 bing에 물어보니 약 400종류라고 한다. 현재도 계속 신제품이 나오고 있어서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실로 놀라운 숫자다. 라면을 예를 든 것은 디자인프로세스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하면서 비유를 들기 위해서다.
라면은 어려운 요리가 아니다. 라면을 끓이는 것은 디자인프로세스에 비할 수 있다. 400여 종류의 라면이 있지만 기본적인 프로세스는 물을 끓여서 라면을 익혀서 먹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다. 베스트셀러인 진라면이나 신라면 같은 종류의 라면은 국물이 있는 종류다. 보통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물을 약 500ml 정도 넣고 끓인 후 면과 수프를 넣어서 약 5분 간 다시 끓인다. 끝. 이게 일반적이다. 기호에 따라서 계란을 풀거나 파를 넣거나 김치를 넣을 수 있다. 다른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면을 끓이는 방법론(Methodology)은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어서 조리하는 것이다. 라면을 끓이는 방법(Method)의 일반론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물을 올리자마자 끓기 전에 수프를 넣고, 이후에 면을 넣는다. 아주 작은 단계에서 순서를 바꿨지만, 대세(Methodology)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찬물 라면 끓이기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그건 수많은 방법(Method)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계란 역시 터트리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풀어서 넣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언제 넣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 꼬들꼬들한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푹 익힌 라면을 좋아하기도 한다. 대중적인 라면에도 사람에 따라, 기호에 따라, 순서에 따라 수많은 라면 끓이는 방법이 존재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무궁무진한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 짜파게티류는 큰 틀(Methodology)에서는 동일하지만, 프로세스(Method)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컵라면이라고 하는 아주 독립적인 부류도 있다. 면에 따라 생면종류도 있으며, 맵기에 따른 부류도 있다. 수프의 종류에 따른 분류도 존재하고, 중량에 따른, 원재료의 원산지에 따른, 제조사의 종류나 규모에 따른, 유통채널에 따른, 브랜드에 따른 수많은 종류의 라면이 있고, 그 라면마다 정해진 조리법과 응용이 가능한 조리법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 인스턴트 라면을 먹기 위한 조리방법(Methodology)은 단순하다. 물을 끓이고, 라면과 수프를 넣어 일정 시간 끓여서 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론적인 디자인방법론(Methodology)과 방법(Method)의 차이다. 디자인 역시 방법론은 단순하다. 문제를 발굴하고, 조사한 후 정의하고, 이를 시각화 방식을 통해 실체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더블다이아몬드 프로세스는 디자인에만 적용되는 방법론이 아니다. 이건 모든 문제해결을 위한 프로세스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본 원리를 나타냈다는 점에서는 방법론(Methodology)이기도 하고, 단계별 대표적 활동을 예를 든 것은 방법(Method)으로 볼 수 있다. 헛갈리면 안 된다. 서비스디자인에서 먼저 공표해서 이 영역만의 프로세스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디자인 영역이 라면의 종류만큼, 아니 라면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디자인분야가 존재하지 않은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제품이 포함되고, 건축과 환경, 숱하게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고 사라질 애플리케이션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책이나 서비스 등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은 일반적일 수밖에 없다. 마우스 하나를 디자인(개발)한다고 해도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눈에 보이는 방법론에 일률적으로 끼워 맞출 수 없다.
방법론이나 프로세는 어찌 보면 편하다.
반복되는 성격의 업무에서는 초심자나 베테랑에게나 필요한 역할이 서로 다르지만 필요한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나, 프로세스를 맹신하거나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아주 곤란하다. 더욱이 방법론과 방법은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 가이드가 되는 프로세스는 어디까지나 유동적이어야 한다. 기본적인 틀을 프로세스의 성격에 맞춰서 봐야 한다. 큰 틀(Methodology)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라면을 넣는 시점을 먼저 넣을 수도, 나중에 넣을 수도 있듯이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순서나 혹은 세부사항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프로세스의 범람 속에서 큰 기준을 잃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디자인 방법론과 방법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다.
큰 의미가 없이 이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만들어내는 프로세스 때문에 누군가는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거기에 방법론과 방법(프로세스)의 개념 없이 혼용해서 쓰는 사람들 때문에 상호 간 의사소통이 힘들고 의미 없는 진입장벽이 디자인 영역에 생기기도 한다. 제 아무리 멋들어진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결국은 라면을 먹기 위한 방법론은 동일하듯이,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한 단어를 쓰고, 한정된 그룹에서만 사용하는 약자나 표현을 쓰면서 진입장벽을 치는 행위는 유치하다. 돌고 돌아 튜닝이나 멋 부림의 끝은 기본으로 회귀된다. 결국 우리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좋은 디자인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디자인도 그것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잘 알지 않은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디자인의 역할이 본선으로 가기 위한 예선통과의 파트너라고 본다.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으로 가서 클라이언트가 목적한 바를 겨룰 수 있다. 기술이나 능력을 자칫 표현에 서툴러서, 실체화하는 과정에서 경쟁에 뒤처지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 과정을 디자인이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의 역할은 예선에서도 본선에서도 거기까지다. 본선에서는 본질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승부해야 한다. 경쟁력이 약한데 디자인으로 커버하는 것은 한계도 있고 부도덕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잘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디자인에 최선을 다 했는데 시장에서 왜 성공하지 못하느냐는 말은 논리적이지 않다. 여러 가지 요인이 함께 시너지를 발휘하고 여기에 다른 비논리적인 요인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 성공을 할 수 있다. 디자인프로세스는 그중 일부를 담당하지만, 디자이너들에게는 하나의 원칙이며 가이드가 된다. 디자이너들 역시 한정된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용도로 방법론이나 프로세스를 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