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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기연 Jan 29. 2024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디자인적 사고'와 '디자인'을 헛갈리지 말자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한다. 그 사람들 수만큼이나 많은 디자인 파생분야가 생겨났다. 디자인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 보니, 가져다 붙이는 것마다 디자인 중 하나가 된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어색한 것을 찾기 힘들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디자인이 좋게 보면 친근해졌고, 나쁘게 보면 만만해졌다. 누구나 디자이너가 된다는 말도 누구 하나 이견을 쉽지 달지 않는다. 과연 그런가? 말은 생각을 담아낸다. 말을 그렇게 하다 보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정도로 만만한 것이라면, 굳이 애를 써가며 공부하고 연마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에서 언어의 문제가 생긴다. 개념을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디자인적 사고'다.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적 사고'다. 여기서는 아주 폭넓은 의미에서 보는 디자인이다. 즉, 뭔가 새롭게 만들어내거나 창의적인 행위를 전체 다 포괄해서 디자인이라는 단어로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해와 곡해의 소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누구나 이런 사고는 할 수 있다. 당연하다.





- 필자도 자주 음식을 만들지만 요리사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 필자도 자주 운동을 하지만 운동선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 필자도 자주 운전을 하지만 레이서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 필자도 자주 공부를 하지만 학자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 필자도 자주 노래를 부르지만 가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냥....


- 요리를 삶의 일부분에서 필요한 만큼 하는 것이다. 

- 운동을 삶의 일부분에서 필요한 만큼 하는 것이다. 

- 운전을 삶의 일부분에서 필요한 만큼 하는 것이다. 

- 공부를 삶의 일부분에서 필요한 만큼 하는 것이다. 

- 노래를 삶의 일부분에서 필요한 만큼 하는 것이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매일아침 입을 옷을 고민하고, 학교나 회사에서 주어진 공부나 일을 효율적으로 할 생각을 하고, 그게 좀 더 심화된다면 관련된 책을 읽고, 강연을 들을 수 있을 것이며, 관련 자료를 찾아서 보다 더 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요리사가, 운동선수가, 레이서가, 학자가, 가수가 되지는 않는다. 아주 낮은 확률로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직업자체를 바꾼다면 모를까.


  디자이너는 단순히 디자인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지 않는다. 디자인을 주요한 직업활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실력이나 연차를 떠나 전업디자이너를 "디자이너"라고 불러야 한다. 물론, 디자이너중에서는 디자인만 하는 사람도 극소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디자인외적 업무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삶의 대부분 경제활동은 디자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디자인에 대한 친숙함 전략이라면 이제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는 대학교육 훨씬 이전부터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대학교육을 거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보다 미래를 위해, 디자인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맥을 빠지게 하는 표현이다. 


  디자인은 아주 전문 분야다. 일반적으로 약간의 관심과 투자만으로 쉽게 될 수 없다. 그런 경계를 명확하게 결정짓는 것이 바로 심미적 표현능력이다. 그것이 보이는 디자인 대상이든 다른 대상이든 말이다. 디자인이 합리적 문제해결 방법이고, 누구나 디자인적 사고를 한다는 말은 급격한 산업화에서 디자인이 아예 논외로 될 우려에 처한 당대의 극약처방 같은 것이었다. 승부수였을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언저리에서 관련분야에 있던 사람들의 영역확장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현재 디자인은 영역의 애매함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디자인은 정량과 정성, 계획과 수행, 상상력과 태도 등 종합적 능력이 필요한 직업군이다. 어느 한 가지 영역 혹은 단순한 재치, 엉뚱함, 표현능력만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직업에 대한 낮은 가치부여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 사회적 대우는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시대, 디자인이 산업혁명시대 러다이트와 같은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각성과 노력이 필요한 동시에 자부심도 함께 필요하다. 지금이 그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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