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시장구분이 필요한 시기
나는 디자인의 대상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산업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문제다. 산업문제는 디자인이 해결하고자 하는 전통적 영역이었고, 사회문제는 디자인이 해결하고자 하는 새로운 영역이다. 이 두 가지 대상이 되는 문제들은 서로 공존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사회적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제품 혹은 서비스가 있을 수 있고, 행정정책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스트리트 퍼니처나 홍보자료가 있을 수 있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칼로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없음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 중에서 이른바 전통적으로 디자인이 해결해 왔던 산업문제를 보자.
이것은 제품, 포장, 시각, 환경디자인의 영역으로 풀이된다. 그 외 패션, 건축, 인테리어 등으로도 세분되어 구분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영역에 개인으로 대표되는 활동가들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재능플랫폼으로 대표되는 크몽, 탈잉, 숨고 등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개인 디자이너들이 적수로 등장했다. 한동안 이들이 수행하는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깎아내리기와 작업비에 대한 터무니없음을 기존 산업계는 토로했다. 불공정한 시장이라는 것이다. 어떤 디자인회사 대표는 공개적으로 타도 크몽을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재능플랫폼의 디자이너들은 개인이었다. 디자인 전문회사 대비 단순, 단발성 작업이 위주였던 이유에서이다. 그러다가, 이 플랫폼은 여러 개인들을 묶어 프로젝트의 크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연구개발이나 국책수주에도 플랫폼의 명의로 계약하고 이를 개인들과 나누는 방식을 개발해 냈다.
당연히, 기존 디자인계는 폭발했다.
특히, 디자인산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불공정하고, 결과물에 대한 퀄리티를 개인이 보장할 수 없으니 전체 디자인계의 품질이나 신뢰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일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견적과 결과물 정도의 수준을 원하는 고객은 차고 넘쳤다. 이른바 시장이 원했다. 딱 그 정도의 목적 수준에서 디자인 시장이 생성되었다. 결국, 기존 디자인 산업계는 재능플랫폼의 디자인보다 자신들을 선택해야 하는 명분을 찾아야 했다. 혹은, 새로운 시장을 분화하거나 결정을 해야 했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가세한다.
나날이 혀를 내두르게 하는 신기술이 발표되고, 손쉽고 간단하게 디자인을 수행해 낸다. 이건 디자인 교육이나 경험이 그다지 필요 없는 수준이다. 말 그대로 협공이다. 짧고 비교적 간단한 디자인 작업에는 젊고 숙달된 아트워킹 실력을 겸비한 플랫폼 디자이너들이 저인망으로 모든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기존 디자인 산업계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SWOT분석 중 외부환경에 대한 분석은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할 뿐이다. 디자인계는 기존 조형능력을 베이스로 하는 표현스킬이 디자인 능력으로 치환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름의 진입장벽이었으나 현재는 여러 외부 요인으로 인해 이 시장이 백 퍼센트 오픈되었다. 누구나, 그야말로 누구나 전통적 영역에서 다루던 디자인 결과물을 작성할 수 있고,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래서, 디자인계가 새롭게 눈을 돌린 대상은 사회적 문제다. 이것은 실로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다. 지난 2013년부터 서비스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시험이 시행되고 검증되었으면, 또 실패했다. 살아남은 개념들을 모으고 정비하는 시기가 왔지만 이것 역시 언제 인공지능에 지배당할지 모른다.
디자인 산업계를 거대한 적들이 둘러싸고 있다.
장기에서는 왕을 잃지 않는다면 그 피해가 얼마가 되더라도 끝까지 항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위기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인계를 둘러싼 수많은 악재 속에서도 오히려 디자인이 가진 원래 목적이나 근본적 가치를 다시 돌아보고,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을 다시 찾아내고 분리해야 한다. 자칫 이런 마지막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채 10년이 되지 않아, 디자인 산업계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수많은 비전문가들에 의해 장악될 것이다.
어떤 분야가 다시 살아나서 디자인의 새로운 쓸모가 될 것인가 고심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