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일과 삶

by 송기연

일을 하다 보면 의사결정의 순간이 온다.

완전히 자동화된 일이 아니라면, 일의 매 단계마다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일의 최종 결과물은 매 단계마다 쌓인 의사결정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특히, 창의적 발상이나 체계적 정리를 하는 일이라면 매번 유사한 일의 프로세스가 반복된다. 반복되는 프로세스에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그 패턴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의사결정의 순간과 큰 의사결정의 순간이 온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보통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높은 직위의 사람이 한다. 그래서 초기 업무 방향설정, 최종 업무 마무리 결정은 가장 경험 많은 리더의 몫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초기 디자인 방향을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초기 방향이 잘못 정해지면, 그 잘못된 지점부터 새로 일을 해야 한다. 경험 많은 디자이너는 단순히 일의 방향설정뿐만 아니라 일과 연계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프로젝트 매니저(PM)라는 직책의 무게는 가볍지 않고, 그에 합당한 권위가 주어진다. 당연히 책임도 함께 따른다. 권한만 주어지는 경우는 없다.


누군가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디자인과 같은 창의적 업무는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기 콘셉트를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완성된 결과물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게 프로젝트 매니저인 리더의 몫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똑똑한 사람들은 책임의 무게보다는 권위의 달콤함을 주로 탐한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數)라는 말이 제격이다. 디자인 의사결정은 상당수 투표로 진행된다. 투표에 참여하는 인원에는 비전문가가 다수 포함된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넣어서 책임의 굴레에서 빠져나가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이런 방식의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다. 방식은 가장 민주적이지만 수준은 무기력의 극치다. 결과에 대해서는 확실한 책임소재가 없다. 이런 방식은 일견 답답해 보일 수 있으나 의사결정자 입장에서는 가장 현명한 방식이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누군가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져 준다면 안전한 장치가 또 하나 마련되는 셈이다. 결과가 좋으면 내 덕이고, 나쁘면 남 탓인 논리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 피터의 삼촌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말이다. 스파이더맨인 피터가 우연히 얻은 슈퍼 히어로 능력을 세상을 위해 써야 한다는 당위성과 책임을 강조한 의미다. 일정 수준의 직위에 있는 사람은 권위가 있다. 즉, 힘이 있다는 말인데 이것은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리더에 가까운 직위라면 더욱 그에 맞는 행동이 요구된다.


책임지는 일과 삶.

한 인간의 인생에는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일 뿐만 아니라 삶이 그렇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순간이 왔을 때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된다. 매번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다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사람들까지 힘들어진다. 우유부단은 신중함과는 다르다. 결정의 순간이 왔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태도는 더욱 나쁘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의사선택을 빠르게 해야 한다.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크고 중요한 일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특히, 본인의 전문분야라면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오랜 경험이 단순히 경력이 아닌 연륜으로 대우받고, 그에 합당한 존경과 권위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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