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1박 2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강원도, 교통수단은 새로 생긴 ITX-마음 기차로 결정됐다. 부산 부전역에서 강원도 강릉까지는 총 5시간이 걸리는데, 하루에 총 4개 차편만 운행됐다. 인기와 비례해서 차편은 매진의 연속이었다. 한 번에 못 가면 나눠서 가기로 했다. 포항까지 가서, 5시간을 대기하다가 강릉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출발시간은 새벽 5시 30분, 최종적으로 강릉도착은 오후 4시의 일정이었다.
부산에서 서울을 갈 때는 주로 ktx를 이용한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니, 항상 서 있는 기차를 탔다. KTX속도가 평균 300km/h가 넘으니 부산에서 서울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동의 효율성은 좋으나 예전 같은 기차여행의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기차는 낭만적인 여행수단보다는 효율적인 이동수단으로만 인식되었다. 예전에는 다양했던 여러 기차들의 존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그 기차들이 현실에서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전 기억으로는 새마을 기차가 가장 빨랐다.
다음이 무궁화, 비둘기라고 기억된다. 찾아보면 정확하게 알겠지만 내 기억은 이 정도다. 이번에 타고 올라간 기차는 ITX-마음으로 최고 속도는 KTX의 딱 절반인 150km/h다. 차량도 짧아서 4칸(264석) 또는 6칸(392석)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른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하는 기차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탔다. 주로 젊은 관광객인 듯했다. 동해선을 타고 올라가면서, 생전 알지 못했던 작은 역들을 지나쳤다. 포항까지 2시간을 달린 후 우리는 잠시 시간을 가졌다. 포항역에서 쏘카를 빌려서 이가리 닻 전망대, 곤륜산 패러글라이딩장, 스페이스워크를 돌아다녔다.
새벽 기차에서는 부족한 잠을 잔 탓일 수도 있지만, 1시에 포항을 출발해서 강릉으로 달리는 기차의 풍경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새로웠다.
절정은 정동진을 지날 때였다.
눈을 돌려본 기차밖으로는 겨울바다가 철로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기차 창틀이 액자가 되어, 움직이는 너른 겨울파도 그림을 계속 그렸다. 겨울 바다가 기차 바로 옆에서 계속 이어졌다. 속도가 빨랐으면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 앞에서 미끄러지듯 천천히 서행하는 기차,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내가 비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현대는 효율이 최고 덕목이다.
그러나, 때로는 효율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가 우리 주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변함없이 곁에 있는데, 우리는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그것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한 번쯤은 천천히 눈길을 주변으로 돌려보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지도 모르니까.